2019,August 21,Wednesday

문신, 편견 또는 문화

 

복면가왕이라는 한국의 음악쇼프로가 있다. 등장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정체를 숨긴 채 노래를 부르면 패널들과 방청객이 가면 속 인물이 누구인지 노래하는 목소리만을 듣고 개인기를 보며 추측해보는 쇼프로그램이다. 미국에까지 수출되어 히트를 쳤다는 토종 프로그램이기도 한데 가면을 씀으로써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깬다는 아이디어가 빛을 본 장수프로이다. 등장 인물들은 가면으로 인해 오히려 진짜 자신을 내어 보이는데 과감해진다. 반대로 관객들은 다른 배경 정보가 없으므로 오직 가면 뒤의 사람이 가진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가면을 벗고 얼굴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설마, 저 사람이었단 말이야? 하며 우리가 평소 그 사람에게 어떤 편견을 가져왔는지 재미와 더불어 무릎을 치게 된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과 섞여 생활하면서 깨어지는 편견은 복면가왕을 보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듯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문신이다.
우리는, 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도리 지을 독자가 있을지 모르니 나는, 이라고 하자.
나는 문신에 대한 편견이 있다. 문신하면 어깨가 넓고 머리를 짧게 깎은 무서운 아저씨들이 먼저 떠오르는 탓이다. 당연히 문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 문신은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의미로 여겨지는가 보다. 문신을 한 사람들을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그렇고, 머리 짧은 아저씨만이 아닌 평범한 여성들에게까지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어느 교민 잡지에서 한국과 다른 베트남 문화 중의 하나로 문신을 꼽은 것을 보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닌가 보다.
문신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들은 문신에서 영원성을 말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애칭을 몸에 새긴다.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할리우드의 유명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그들은 화려한 연애담은 몸에 새기는 연인의 이름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런데 헤어지면 어찌하나? 지우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영원하기를 원하는 것은 바램으로서만 간직하면 좋을 일이다. 혼자만 새겨 넣는 것이 아니라 커플링하듯이 커플 문신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 같은 도안이나 그림을 상대의 같은 부위에 새겨 하나임을 자랑한다. 유명한 연예계 이슈메이커인 영국 배우 러셀브랜드와 미국 팝가수 케이티페리는 결혼하면서 ‘흐름에 따르라’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를 서로의 오른팔 안쪽에 새겼는데 2년도 되지 않아 파경을 맞은 후 이 문신을 지우느라 고생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것이 내가 문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문신은 영원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문신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아니다. 인정하는 문신도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나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할 때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특히 여성들이 몸에 난 흉터나 자국을 예쁜 꽃이나 새모양의 문신으로 감춰 자신감을 찾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런 문신이 선사시대 동굴벽화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문신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 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런 면에서 문신은 예술의 기원 이전에 발생한 예술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논쟁의 여지는 있다. 동굴벽화의 그것을 문신이라고 단정지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본래 ‘문신, 타투(Tattoo)’라는 단어는 타히티어, 통가제도어, 사모아어인 ‛Tatau’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문신을 영어로 ‘타투’라고 부르는 것이 이 이유이다. ‘1%를 위한 상식백과’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설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의 기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여기에 따르면 모두가 동의할 만한 가장 오래된 문신은 알프스 티롤에 있는 빙하가 녹으면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남성의 몸에 있던 문신이다. 그는 약 5천년 이상을 냉동 상태로 있었기에 ‘아이스맨(ice man)’이라 불린다. 그의 허리와 오른쪽 발목에는 줄무늬가, 다른 한쪽 무릎 뒤에는 십자가 모양의 문신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하지만 시기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문신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베트남 사람들의 문신 역사도 그만큼 길까?
깜짝 놀랄 일이지만 그렇다. 문신을 베트남어로 ‘쌈민(Xăm mình)’이라고 하는데 기록이 기원전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 정도라면 문신은 그들에게 문화일 수밖에 없겠다.
이 문신의 기원은 ‘영남척괴열전(嶺南摭怪列傳)’에 실린 건국신화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본인의 졸저인 ‘서공잡기(西貢雜記)’에서 베트남인의 문신의 기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재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베트남 최초의 고대국가인 반랑국의 훙왕(Hùng Vương) 때에 백성들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았는데 때때로 이무기가 나타나 이들을 공격해 해를 입혔다. 그래서 왕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였더니 왕이 말하였다.
“산지에서 사는 백성들(베트남 사람)은 물에 사는 족속과 다르다. 이무기는 자기 족속은 좋아하지만 다른 부류들은 싫어해 너희를 공격하는 것이다.”
왕은 백성들을 보호할 방책으로 사람을 시켜 백성들의 몸에 먹으로 용왕의 모습과 물속에 사는 괴물들의 형상을 새기게 하였다. 이후로부터 백성들은 강에서 일할 때에도 이무기에게 물리거나 해를 입지 않게 되었다. 베트남 사람의 문신하는 풍속은 이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있어 문신의 필요성은 외세 침략기에 더욱 높아졌다. 쩐(Trần) 왕조 시절 원나라가 침공했을 때 군사들은 모두 몸에 ‘삿탓(Sát Thát)’이라는 두 글자를 문신으로 새기고 전장에 나섰다고 한다. 이는 ‘殺掉’이라고 쓸 수 있는데, 몽골족인 타타르족을 죽이자는 뜻이었다. 그러니 베트남 사람들에게 문신은 신성한 결의라는 상징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에 와서 문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베트남에도 일부 있지만 이런 기원과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젊은 남녀들이 문신을 했다고 해서 적어도 나처럼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개인적인 편견이든, 아니면 문화라 할지라도 몸에 기하학적 문양이나 꽃이나 동물을 그려 넣기 위해 피부 밑에 색소를 넣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또 무슨 이유로 그랬을까? 상심을 달래기 위해? 단호한 결의를 위하여? 아니면 참을 수 없는 예술적 표현 의지였을까? 그게 아니면 자기를 내세우기 위한 장난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모든 것의 시작은 우연이거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계기가 된 때도 있으니까. 어쨌거나 문신은 가장 오래된 형태의 예술적 행위이고 상징인 것만은 편견을 벗고 인정해야 하겠다. 특별히 베트남에서는 문화라 해도 될 만큼 말이다. /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 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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