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25,Friday

관계 맺음

맹자는 無羞惡之心 非人(무수오지심 비인)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부끄러움은 관계 맺음으로 생겨납니다. 나와 무관한 사람이 모인 지하철에서의
행동이 무례한 것은 그 동행자들이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탓입니다.
부끄러움은 지속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다 관계 속에서 생이 시작됩니다. 태생 자체가 관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지요. 한 생명체가 태어나려면 반드시 생물학적 타인인 이성과의 관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조물주에 의해 탄생된 우리 인간 역시 아담의 갈비뼈를 빼서 이브를 만들 때부터 < 관계>라는 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신이 아담의 갈비뼈가 아니라 나뭇가지를 꺾어 이브를 만들었다면 인간의 관계도 그리 긴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긴 시간 동안 어미의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무려 10여 년의 긴세월을 어미로부터 보호를 받아야만 겨우 하나의 생명체로 자생이 가능해지는 약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관계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숙명적 관계가 바로 부모와의 관계가 되겠죠. 우리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감정들 – 사랑을 시작으로 감사, 분노, 미움, 증오, 슬픔, 기쁨, 연민, 회한, 박애, 경멸, 질투, 갈등 등, 우리 인간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감정들은 모두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들 입니다.

그러니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따라 자신이 주로 경험하는 감정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것을 보면 인간은 확실히 관계 속에서 사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 얘기인가 봅니다.

그런데 그 관계라는 개념이 좀 묘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지만, 사실 대부분의 관계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맺어집니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부모로부터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된 인격체로서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맺는 관계도 엄밀하게 따지면 부모로부터 부여된 태생적 시간과 지역적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특정 인물을 아무런 제약없이 스스로 선정하여 자의적 선택에 의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예전 유명 배우인 오드리 햅번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 와서 이미 세상을 하직한 그녀와 관계 맺음이 불가능하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관계를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운명을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에서만 한정해 인용하기는 하지만, 그 범위를 조금만 넓혀보면 우리는 모두 공동 운명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셈입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로 베트남이라는 이국에서 2014년 봄을 함께 맞이하고 있는 베트남 교민들은 이렇게 모두 동일한 국적과 같은 시공간이라는 공동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 특별한 인연을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더욱 귀하게 보여질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에 충분한 운명적 요건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신문지상에서 지하철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인간에 대한 기사들이 나옵니다. 지하철에 강아지를 데리고 탄 여자가 강아지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다던가, 다리를 쩍 벌이고 자는 인간이나, 야동을 소리를 죽이지도 않고 보는 인간 등,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수치를 모르는 군상들을 가끔 마주합니다. 이런 인간들은 왜 그런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할까요? 과연 그들은 수치심이라고는 애초부터 심어지지 않은 별종들일까요?

맹자는 無羞惡之心 非人(무수오지심 비인) 즉,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부끄러움은 관계 맺음으로 생겨납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로 가득 찬, 나와는 무관한 군상들이 모인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고작 10여 분 정도를 같이 할 뿐 앞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감정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부끄러움은 지속적인 관계를 전제로 생겨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이라는 교민사회를 보면 사실 지하철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베트남에 한시적인 삶을 살다가 돌아가면 다시 인연이 생길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부끄러움에 대한 고려가 없는 행동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사귄 일상의 친구들도 일단 이 곳을 떠나게 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과거의 인물로 뇌리 속에 사라져 버리곤 합니다. 이 곳 베트남이라는 교민사회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 다른 과거를 갖고 다양한 목적으로 들어온 곳이라 서로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구석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짐작을 합니다. 그래서 비록 같은 베트남이라는 지역과 2014년이라는 시간의 공동 운명의 틀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과거의 행적을 서로 모른다는 점에서 신뢰 있는 관계 맺기가 참으로 어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관계 맺기가 어려운 곳이라면 역설적으로 이곳에서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지내는 친구를 새롭게 만났다면 그야말로 대박입니다. 비록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지만 베트남 교민이라는 특정한 운명의 틀을 공유했다는 공감대로 그런 부족함을 메우고 마치 죽마고우처럼 지낼 수 있는 친구를 새롭게 만났다는 것이 대박이 아닌가요?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사항은 친구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장수하고 싶으시면 이곳에서 만난 귀한 친구들의 가치를 재인식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교민 대부분들은 만약 한국에 계신다면 죽마고우와 같은 친구를 새롭게 만들 시간을, 이미 지내신 분들이 대다수 일 것으로 짐작 합니다. 그러니 그 연세에 자신의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만한 친구를 새롭게 만났다는 것은 기념 파티를 벌여도 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그 인연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아마도 IQ의 숫자에 비례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흐르는 대로 쓰다 보니 베트남에 무려 20년을 살아오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 인간은 20년 동안 과연 어떤 관계 맺음을 갖고 살아왔는지. 지금까지 비록 남에게 해가 되거나 신세를 지는 의존적 삶을 살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자위는 하지만 태생적으로 까칠한 성격에 사람들의 접근을 반가워하지 않은 이 인간은 과연 얼마나 많은 친구들 덕분에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미 뒤늦은 후회를 하는 인간은 접어두더라도 교민 여러분 모두 시공간을 공유하는 흔하지 않은 공동운명의 틀 안에서 만난 귀한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시간을 잠시 가지신다면 제가 이 글을 쓰느라고 소모한 시간의 보상을 이미 충분히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작성자 : 한 영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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