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0,Saturday

변화를 원하는가? 한계치를 넘어라!

요즘 개인적으로 체증이 엄청나게 늘어나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납니다. 한동안 마치 목숨 걸고 하는 것 같던 골프를 한 5년 전부터 거의 손을 놓고 일 년에 서너번 연례 라운딩을 하는 것으로 유일한 운동을 삼고 있으니 체중이 느는 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계단을 다닐 때는 무릎에서 작은 비명소리가 경고음으로 들립니다.
체중을 빼야 한다는 것이 이제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과 같이 절박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처음이겠습니까? 환갑을 넘기는 생을 살면서 수 차례 맞은 익숙한 위기 상황입니다. 운동을 해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루면 이젠 죽는다는 각오로 해야 하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심심하고 하기 싫은 것이 혼자 하는 운동 아닙니까? 그래서 혼자 하는 심심함도 덜고 운동하는 법도 정식으로 배우자 하는 마음에 개인 트레이너를 써서 몇 달 운동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여자 트레이너가 출석률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로 몸매가 완벽한 여성 트레이너에게 지도를 받았지만 제 몸매는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한 두어 달 만에 그만두기로 작정을 하고 트레이너에게 운동 효과가 별로 없는 듯하여 다른 방법을 택해야겠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 강사가 잠시 생각을 하고 나온 말이 제 뒤통수를 강타합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언제 당신이 힘들도록 운동을 한 적이 있는가? 운동을 해도 견딜 수 있을 만큼만 하지 않았는가? 그 정도로는 절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를 구하려면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야 한다” 며 저의 안일한 자세를 책망합니다.
너무 지당하고 맞는 얘기입니다. 변명거리가 없는 진실입니다. 운동을 너무 적당히 했죠. 그러니 효과가 날 리가 없습니다. 적어도 땀이 떨어질 정도로 자신의 한계치를 극복하는 경험으로 변화를 구해야 하는데 저는 그저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운동을 했으니 변화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베트남어를 배운다고 개인 선생님을 두고 학습을 했는데 별로 진도가 안 나갑니다. 베트남어가 어려운 탓인가요?
몇 달 후 선생님에게 물었죠. “베트남어가 어렵긴 한가봐요. 실력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자, 그 선생님이 하는 말이 앞의 운동 트레이너가 한 말과 동일합니다.
아주 정확히 “미스터 한이 언제 심각하게 베트남어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까?”

맞습니다. 베트남어를 공부한다고는 했지만, 별다른 성의가 없었죠. 회사에서는 영어로 업무를 보고 일상생활에 쓰이는 간단한 베트남어는 그런대로 소화를 하고있으니 마땅히 베트남어를 익혀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는 환경이고, 그러다 보니 베트남 공부는 그저 편한 자세로 하고 맙니다. 한 번도 베트남어를 공부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 적이 없었으니 진도가 나갈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들으니 이번에는 그 말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변화나 발전이 있으려면 그저 편안함에서 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절감 했습니다. 뭔가 변화를 이루기 위하여는, 불편함, 그것도 가능하면 스스로 견딜 수 없는 한계치를 넘는 불편함을 극복해야만 목적이 이루어 진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닫습니다. 운동, 공부, 생활 자세나 습관 모두 마찬가지로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면 그 반대급부로 오는 다양한 형태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인내의 한계를 자주 넘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니, 제 삶에서는 한계치를 경험할 정도로 매달려 본 분야가 별로 없는 듯 보입니다. 모든 일을 마주할 때 그저 편한 만큼만 집중하고 말았죠. 제가 하는 잡기나 운동, 언어 학습 등 모두 적당히 하고 적당한 수준에 머무르는 것을 용인한 까닭에 지금의 그저 그런 실력의 인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딱 한 가지, 사업에서는 좀 심각하게 한계치를 넘나들었던 듯한데, 역시 먹고 사는 일보다 긴박한 일은 없는 탓입니다. 젊은 시절 오퍼상을 차린 때를 회상해보면 그때는 일이 전부였죠. 24시간이 모자란다는 말을 절감하면서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아무 곳에나 들이대며 도전을 한 듯합니다. 일에 매진 한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이 칭찬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큼 한계치를 허물며 노력한 덕분에, 남들이 다 일에 손을 놓는 나이에도 아직 현역으로 뛰는 행운을 누립니다.
이렇게, 제가 유일하게 한계치를 넘나들며 매진했던 사업, 그 사업이란 언제나 변화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아예 변화가 상존하는 곳입니다. 사업가에게 변화는 선택이 아닙니다. 시대가 멈추지 않고 바뀌는 것이 진리이니, 그 시대를 따라야 하는 사업도 늘 변화해야 한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사업은 항상 변화하지만 눈에 띄는 대대적 변화는 사업이 안정되었을 때, 자금에 여유가 있을 때가 적기입니다.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자금 조달이 가능한 시기이기 때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업이 잘 되는 상황에서는 변화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변화에 따르는 수 많은 추가 작업에 대한 부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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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도 사업가는 그런 불편함, 부담을 피할 수 있는 운명이 아닙니다. 사업가라는 이름은 ‘entrepreneur’라는 프랑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위험을 감수하는 자” 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업은 어떤 것이나 위험을 감수하며 이익을 얻는 것이니, 사업을 주도하는 자는 역시 위험에 스스로 뛰어드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사업가에게 가장 큰 위험은 아이러니 하게도 안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정의 시기에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기피가 일반화됩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눌러앉으면 사업가의 역할도 사라지고 또 회사는 곧 망합니다. 회사의 안정은 결국 회사를 망하게 합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어느 회사나 망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변화를 가져올 시기는 바로 사업이 안정되어 있는 시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업주는 더 고민이 깊어집니다.
몇개월 전에도 이런 류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직원들에게 간접적으로 하는 말이었죠. 그런 덕분에 회사는 조금씩 내부적으로 변화를 공감하는 추세가 나타나기는 합니다 만, 아직 절박함이 덜한지 진도가 느긋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변화를 추구하는 도중 만나는 걸림돌에 실망을 하며 변화의 의지를 꺾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장애의 등장은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을 장애인 까닭입니다. 그리고 최종의 성취가 나타나는 시기에는 가장 넘기 힘든 장애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장애를 넘는 과정이 힘들면 힘들수록 성취의 결과가 크고, 또 변화가 거의 성취되고 있다는 확증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글은 요즘 회사가 추구하는 변화의 모습이 잘 잡히지 않자, 은근히 포기를 충동질하는 나 자신의 뇌를 되잡기 위해 쓴 글이기도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 장점 중에 하나가 자신을 스스로 가르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혼란한 사고로 글을 시작하더라도 일단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리도 되고 그런 정리를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가 오기도 합니다.

지금 뭔가 고민을 하는 게 있으신가요? 먼저 자신의 고민을 솔직히 글에 털어 놓아보세요. 운이 작용한다면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또 한 수, 글에게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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