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정의란 무엇인가?

2009년 발간되어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하버드 대학 Michel Sandel 교수의 책 제목이다. 책의 시작 부분에서 들어진 사례는 이러하다.
적진에 투입된 미 소수의 특수부대원(SEAL 팀)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규모와 위치를 살피는 정찰이었다. 그러나 투입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양 떼를 몰고 다니던 양치기소년과 그의 개에게 은거지를 발각당하고 만다. 이때 부대원들은 갈등에 휩싸인다. 임무달성을 위해서는 양치기 소년을 죽여 위치를 발각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대원과 아무리 임무라 해도 무고한 민간인을 그것도 어린 소년을 죽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측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인다. 결국 미군을 봤다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후 양치기 소년을 풀어준 SEAL팀은 불과 몇시간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적군에 포위당하게 되고 치열한 교전 끝에 기적적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1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전사하고 만다. 훗날 마크 윌버그 주연의 론 서바이버(Lone Survivor)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는 이 실화가 이 책의 맨 앞에 등장하여 무엇이 정의인가? 라는 화두를 던짐으로 인해 꽤 많은 날을 고민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임무가 우선인 만큼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소년을 죽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 무고한 민간인을 무턱대고 죽이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만약 그 소년이 나라면, 내 아들이라면, 그 죽음을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정의는 무엇인가? 라는 화두에 몰입하게 된다.
시간을 되돌려 2004년 대한민국으로 가본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보수성이 강한 언론과 검찰, 심지어는 공직자들 사이에서조차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교부 관료들의 회의 자리에서 상급 간부가 대놓고 정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을 본 한 38세의 젊은 외교공무원(고시 27기)은 투서를 작성하여 청와대에 보냈고 그 결과 핵심 고위 간부를 포함 외교부 장관의 경질로 이어진 이른바 “대통령 폄하 발언 투서 사건”으로 이름 불려지게 되었다. 당시 주동자로 알려졌던 이 젊은 공무원은 이후 보수정권시절 한직을 전전하며 소위 “찍힘”을 당하다가 결국 공무원의 길을 떠나 삼성전자 대외협력실 상무로 입사하여 외교관으로써 다져진 감각과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었을 능숙한 5개 국어 실력에 삼성이라는 세계 초일류의 기업문화를 더하여 나름 가시적인 성과를 더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2018년 5월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정책의 핵심 교두보이자 어느새 대한민국 수출 랭킹 3위까지 올라온 베트남 대사로, 그것도 기수문화가 강하고 지극히 보수적이라는 외교부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이 사람을 특임전권대사로 임명한다. 그가 바로 김도현 주베트남 한국 대사이다.

4월 23일 점심, 미딩의 한식당에서 김도현 대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전 충청지역의 고위 공무원들이 TJB방송이 기획/방영하는 1:1 매칭 프로그램 촬영차 하노이를 방문하였는데 마침 하노이 충청향우회 주관 정기모임을 함께하게 되었고 대전이 고향인 김도현 대사도 참석하였기에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최근 김대사를 둘러싸고 이례적이다 싶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기에 질문은 참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대답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잠시 정리해본다. 외교부의 감사는 3월 18일부터 22일까지였고 한국일보가 김도현대사의 본국 소환령을 기사화한 것이 4월 20일이니 정례적인 일반감사라고 보기에는 그 결과의 무게와 속도가 이례적으로 엄중하고 빨랐다. 대사의 본청 소환이라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중징계를 예고하는 것이기에 그 사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 대사의 대답은 베트남 현지 업체로부터 관행으로 제공받은 몇 가지 특혜가 김영란법 위반이고 소위 갑질로 표현되는 공관 직원에 대한 의사전달과정이 감사결과가 내놓은 표면적 이유라지만 본질은 한마디로 “제가 찍힌 겁니다” 였다. 그리고 “법률적 검토를 마쳤고 소환에 의해 귀국하게 되면 당당히 소명하여 승리하고 돌아올 것이다.” 라고 단호히 얘기하였다. 명망 있는 변호사들이 분석하였다는 법률검토서를 받아 읽어본 기자의 눈에도 분명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김영란 법 위반이라는 사안 자체가 다소 경미해 보일뿐더러 베트남 현지의 관행과 일국의 대사라는 무게로 볼 때 오히려 편파적인 감사, 즉 표적감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찍힐 만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라는 질문은 잠시 보류해본다. 다소 격앙되어 있는 대사의 의견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할 것 같았다. 부임 후 1년이 채 안 된 김대사의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돌출행동, 외교적 결례, 친 기업가적인 활발한 활동, 격의 없는 (그러나 외교관답지 않은) 소탈한 행동…. 특히 ‘김정남 암살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 라는 발언의 진원지로 지목되어 활발한 외교활동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추진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으며 가뜩이나 자국인 여성이 연루되어 곤혹스러운 베트남 정부까지 불편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 누구나 김정남의 암살은 북한이 배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사 입을 통해 그런 단정이 내려지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에 불쑥 나타났다든지 하는 몇몇 돌출행동 또한 평범하지는 않게 보인다.

그러한 것들이 소위 “찍힘” 의 원인일까? 그러면 불과 1년 전 아그레망을 받고 부임한 일국의 대사를 소환하는 것은 당사국인 베트남의 양해를 구한 것인가? 베트남 현지 기업으로부터 관례상 제공받은 몇몇 특혜가 빌미가 되어 대한민국의 대사가 소환된다고 했을 때 베트남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러다 나쁜 결과로 이어져 대사가 경질되면 혹시 다음에 오는 대사는 그냥 방에만 콕 박혀 있으려 할 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3월 22일 오후 3시 참빛타워 하노이 한인회 사무실에서는 “김도현 베트남 특임대사 소환에 대한 교민 성명서 발표 및 기자회견”의 제목으로 베트남 한인단체(하노이 한인회, 하노이코참, 하노이 KBIZ, 한베가족협회)의 입장 발표 및 기자회견이 있었다. 18만 교민을 대표한다며 발표한 성명서와 김도현 대사 구명활동의 일환으로 청와대 민원 소청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또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벌써부터 하노이 4대 단체장이 어떻게 (호치민, 다낭을 포함한) 18만 베트남 교민의 대표자이냐는 각론에서부터 그 성명서에 나는 동의한 적 없다,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다 등등 의 말꼬리 물기까지 이어지는 교민사회를 보면서 씁쓸함이 든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씁쓸함의 기억이 또 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회담이 잘 성사되어 평화로 가는 길이 열렸으면 하는 마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하노이 한인회가 사회주의 국가인 이곳 베트남에서 그것도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엄중한 시기에 교민들을 거리 응원하자고 불러모아 당연히 허가되지 않을 집회를 추진하고 예산을 들여 태극기를 준비해 놓았다가 정작 북미정상회담의 주체는 대한민국이 아님을 뒤늦게 인지하고 한반도기를 또 구입하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씁쓸함이다.
교민잡지로서 그리고 하노이 교민사회의 일원으로서 한인회의 자금집행활동이 궁금하여 한인회사무국에 요청했던 [2018년 회계결산자료와 올해 예산안]은 곧 보내주겠다는 담당자의 시원한 대답과 달리 아직도 연락이 없다. 우리는 행동의 본질을 규정함으로써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에 익숙하다. 이를테면 화장실을 가는 것은 볼일을 보기 위해서 라고 규정한다. 익숙하게 먼저 속옷을 내리고 그 다음 볼일을 본다. 그러나 본질에 집착하거나 또는 본질 만을 우선시하여 그 순서를 달리한다면 황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이해 당사자 모두에게 다른 빛깔일 것이다. 김도현 대사 본인과 이 모든 상황과 파장을 예상하고도(그랬으리라 믿는다, 예상 못 했다는 말은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다) 대사를 소환하려는 대한민국 정부나 안타깝게 바라보는 하노이 교민사회나 아울러 당사국인 베트남 정부, 나아가 내부고발자가 있지 않겠냐는 느닷없는 오해를 뒤집어쓴 열심히 일하던 공관 직원들까지 저마다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정의란 무엇일까?
아무쪼록 남다른 사명감과 탁월하고 왕성한 활동력으로 베트남 교민사회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김도현 대사가 모든 소명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보다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속히 돌아오시기를 바란다. 궤변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정의에 가깝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파장을 예상하고 내린 대한민국 정부의 결정이 외교부 내의 해묵은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고 김대사의 혐의가 소명되어 그저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이제 그 부끄러움은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의 몫이고 더욱이 베트남의 사는 우리 교민에게는 적지 않은 상처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 또한 지우기 어렵다.

이 기 훈

user image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Copy Protected by Chetan's WP-Copyprot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