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September 16,Monday

일리아스 호메로스

 

‘일리아스’는 전쟁 이야기다. 정확하게는 기원전 1,300년 전 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에 관한 서사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상상할 수 없는 오래 전 이야기가 이제껏 구전되고 활자화 되어 이어져 온 이유 중 하나로 많은 학자들은 ‘전쟁’에 방점을 찍는다. 일리아스는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야기이자 가장 오래 된 전쟁 이야기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고 종족의 멸화를 면하기 위해 상대를 살육해야 하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을 규정한다. 먼데 갈 것 없이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한국전쟁은 빼놓을 수 없다. 그 난리에 살고 죽는 것은 중요했고 여전히 그 중요함이 내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전쟁으로부터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절대 객관성, 무전제성을 유지할 수 없다. 이곳 베트남 사정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시간을 만유인력으로 당겨 3,30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무수한 인간의 역사를 역행하며 지나친다. 시간여행을 한다. 일리아스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조금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일리온’은 트로이(오늘날 터키의 ‘트루바’, 차낙칼레) 지역의 옛이름이다. 일리아는 일리온 사람들이라는 말이고 일리아스는 ‘일리온 사람들 이야기’쯤 되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 즉, 일리온 전쟁은 당시 국제적 정황 상 그리스 지역과 페르시아 지역의 첫 번째 대규모 충돌이다. 지리적으로는 흑해지역 주변의 기름진 땅을 수호하려는 자와 이오니아 지역의 해상 패권을 장악하려는 세력들 간의 전쟁이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대규모 해적 약탈자들의 싸움이다. 지정학적으로 트로이는 이오니아해와 흑해를 사이의 마르마라해로 진입하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흑해로 곧장 질러 들어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것이다. 그곳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대륙 지배의 운명이 갈린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금의 그리스 지역)는 척박하다. 강수량이 적어 작물이 자라기 힘든 땅이다. 자연스레 눈 앞에 보이는 바다로 시선을 돌렸고 그들의 관심사는 바다를 통해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는 일이 되었다. 바다의 활동반경이 점점 넓어지는 가운데 흑해 연안의 풍요로움을 보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 곳으로 가는 관문은 프리아모스 (일리아의 왕)에 의해 굳게 잠겨 있었다. 마침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연합군은 일리아를 접수하기 위해 배 1천척을 띄웠다. 전쟁의 서막이다. 마침 내 세울 명분도 충분했으니 일리아의 왕자, 파리스가 아테네 메넬라오스 왕의 부인 헬레나를 납치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공주를 구한다는 이유로 일리온 전쟁은 시작된다. 파리스와 헬레나의 관계는 오늘날까지도 불륜이냐 로맨스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헬레나는 그렇게도 예뻤다고 전해진다.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재는 단위를 ‘헬렌’으로 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1헬렌은 배 한 척을 띄울 수 있는 아름다움, 같은. 글을 다시 데려온다. 그리스 반도의 미케네 문명이 부흥했던 시기는 기원전 15~13 세기경이다. 강력했던 해상 장악력이 집약되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왔으나 대규모 자원이 소모됐고 갱생의 힘이 약해져 전쟁 이후 이 문명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기원전 8세기, 그러니까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집필한 시기에 맞추어 그리스 문화는 다시 한번 부흥한다.

‘일리아스’로 들어가자. 10년간 지속된 ‘일리온 전쟁’ 이야기다. 9년간은 진전 없는 공성전攻城戰을 거듭한다. ‘일리아스’는 10년 전쟁의 마지막 1년을 집중 조명한다. 호메로스는 책에서 지난 9년의 전쟁을 몇 줄로 요약하고 연합군의 좌장 격인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불화 역시 여성이 발단이다. 남자들이란. 아킬레우스는 전리품(으로서의 여성) 배정에 부당함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며 전쟁 보이콧을 선언한다. 이유는 이렇다. 아킬레우스가 삐진 연유는 이러하다. 아폴론을 제사 지내는 일리온 사제의 딸이 아가멤논의 전리품으로 가게 됐다. 사제는 제물을 들고 딸을 돌려 주기를 간청했지만 아가멤논은 모멸 차게 거절한다. 이에 사제는 신神 아폴론에게 도움을 청했고 아폴론은 자신의 사제를 위해 아카이오족(그리스 연합군)에게 역병을 돌게 했다.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가멤논은 어쩔 수 없이 사제의 딸을 돌려주었으나 그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이었던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왔던 것. 핵심 전력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이탈하면서 그리스 연합군은 타격을 입고 바다 끝으로 밀린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빌려 입고 출전하게 된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보고 일리아 군사들이 도망갈 거라는 예상을 깨고 파트로클로스는 적장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다. 오랜 친구의 죽음에 격분한 아킬레우스는 전장戰場 복귀를 선언하고 밀렸던 전세는 역전한다. 아킬레우스의 활약에 일리아는 사면초가에 빠진다. 전세는 이미 기울어졌으나 마지막으로 적장 헥토르는 용기를 내어 아킬레우스와 일전을 치른다. 이 싸움에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고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위해 시신을 말에 끌고 다니며 잔인하게 훼손한다. 보다 못한 일리아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죽을 각오로 적장인 아킬레우스를 조용히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기간, 12일 동안 휴전을 약속하고 프리아모스는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아와 장례를 치른다. 일리아스는 여기까지다.

이야기는 구전의 형태로 전해지던 것을 호메로스가 집대성했다.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우연과 필연을 적절히 녹여내고 절정을 부각시키기 위해 절정 이전의 전후 설명이나 상황의 전개의 속도 조절 등 혀를 내 두를 정도다. 3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의 이야기에 가슴이 떨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유다. 호메로스는 그래서 인류 이야기꾼의 가장 윗자리다. 저자 호메로스는 베일에 싸여 있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작 “역사” (이 책 또한 멀지 않은 날 지면에 소개할 예정이다) 에서 호메로스가 BC 900년 전 사람이라 소개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BC 1,200년대의 사람, 그리고 최근 학자들은 기원전 800년 사람이라 주장한다. 생몰 연대가 모두 추정으로만 전하고 있을 뿐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가 지어낸 작품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만큼 인류에 큰 영향을 준 서사시는 아직 없다. 성경과 코란, 불경과 힌두경전 등 종교 경전 다음으로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손꼽는다. 지금도 헐리우드에서는 호메로스의 이야기들이 블록버스터의 소재로 삼고 있으니 아마도 인류가 존속하는 한 그의 영향은 계속 되리라 예견한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인류의 성감대를 죄다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모험, 여행, 사랑, 우정 등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가감 없는 인간 군상들을 모두 보여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양의 사기열전에 비견하기도 한다.

트로이 전쟁 10년 이야기가 일리아스라면 트로이 전쟁 후 10년 이야기가 오디세이아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오디세우스가 전쟁 이후 트로이에서 고향 이타카 섬으로 가기까지 10년간의 여정이다. 그래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세트로 읽어야 한다. 다음 호에서 소개한다.

사족) 독일 고고학자 슐리만은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일리아스가 실제 한다고 믿었던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에서 트로이 전쟁을 읽고 책 속의 삽화가 땅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라는 믿음은 그를 고고학의 길로 이끌었다. 무너진 성터의 실제를 확신하고 트로이로 향했다. 자신을 믿어 주지 않는 아내와 이혼을 감행하면서. 마침내 1871년, 사재를 털어 트로이를 샅샅이 뒤진 끝에 슐리만은 실제 하는 일리아스를 3,100여년 만에 드러내 보인다.

 


장재용 작가, 산악인, 경영혁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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