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May 23,Thursday

씽글클럽

누가 먼저 얘기하려나 눈치를 보고 있으려니 주변이 조용하다. 아마도 내가 짐을 져야 할 것 같아 이번 호의 글에 담기로 했다. ‘씽글클럽’이라는 모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간행물이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몇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역량있는 편집진, 유통망, 고정 독자의 확보와 같은, 하지만 사업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정기 간행물, 정간지에는 먼저 존재의 이유, 곧 철학이 있어야 한다. 철학은 매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고유의 콘텐츠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차별성을 가지고 독자를 끈다. 마지막은 사회적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감은 매체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다. 물론 이렇게 해야 잘 된다는 것이 검증된 바는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사이공에서 생활을 해보니 알게 모르게 교민지의 정보로 도움을 받는다. 나는 이 곳에서 교민들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격주로 또는 월마다 책을 꾸려 나가는 분들을 존경한다. 한 때 부탁에 못 이겨 월간지 발행을 대행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 노고를 십 분 이해한다. 그 분들에게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이 기회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런, 글이 옆으로 샜다.

앞서 거론한 세 가지 조건 중에서 정간지 고유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외부인의 조력을 받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이다.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지식과 재능의 발휘는 콘텐츠를 풍성하게 한다. 정간지의 철학이 뿌리라 할 때 콘텐츠는 많은 가지에 비유할 만하다. 가지가 많으면 잎이 무성한 법이다. 그런 나무에 새가 날아와 쉬고 열매도 많이 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그것을 사회와 더불어 공유하는 것, 아마도 모두가 동의하는 건강한 정간지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교민지가 외부의 필진을 섭외하기 위해 애를 쓰고 나름의 차별화된 콘텐츠 프레임을 갖추고자 노력한다. 씬짜오베트남도 이에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씬짜오베트남이 발행된 횟수가 이번 호로 통권 397호이니 어림잡아도 십 육 년을 넘겼다. 그동안 교민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기고를 통해 내용의 풍성함에 기여해 왔다. 내가 엿보니 씬짜오베트남에서 글을 청하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붙어 있다. 그 하나가 베트남에 거주하시는 분이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어떤 영역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교민의 관점에서 실제적인 공감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리라. 전문성이라 함은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비록 생활의 단편이라 할지라도 근거가 있는 공유 가능한 내용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함께 베트남에 살면서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고, 다름과 같음을 발견하는 속에서 부대끼는 일상과 알아 둘 만한 지식을 나누는 모습, 이것이 지금까지 지켜온 작은 원칙과 그림이겠다. 그러나 하나의 형식을 이루지는 못했는데 이제 이런 원칙에 동의하며 씬짜오베트남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이들의 모임이 정식으로 탄생했다. 우리는 이 모임을 일컬어 ‘씽글클럽’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씽글’이란 싱글(Single)이 아니다. 첫 음절은 씬짜오의 ‘씬(Xin)’, 남부 발음에 가까운 ‘씽’에서 왔다. 거기에 글 쓰는 이들이라는 모임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 ‘글’이라는 단어를 음절로 더했다. ‘씽글’이란 단어가 탄생한 것이다. 기왕에 자유로운 발상이 필요한 곳이니 회(會) 보다는 클럽이 제 격이다. 회는 느낌 상 격식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클럽이라면 자유로움이 더해질 것 같다. 그러니 약간의 횡설수설이 있어도 클럽에서는 용서받을 것이란 근거 없는 희망도 첨가되었다. 그래서 베트남어와 한글, 그리고 자유스러움의 색깔을 덧입혀 탄생한 조어가 씽글클럽이다.
글에는 책임이 따른다. 말은 지나 간다. 그런데 글을 그렇지 않다. 남는다. 그리고 전파된다. 이게 펜을 무섭게 만드는 이유이다. 물론 최근에는 말조심이 숙제로 떠올랐다. 일만 벌어지면 과거에 무슨 말을 했었는지 다 까발겨지고 분석된다. 녹음도 하니 더구나 말 많이 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면 정말 조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글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글의 책임에 대해 더욱 두려운 마음으로 얘기해야 한다. 글은 다듬을 시간을 부여받는다. 그 시간이 글을 쓰는 우리에게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주어진 시간이다. 씽글클럽의 기고자들은 그런 분들임을 보증한다.
내가 씬짜오베트남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문재(文才)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락한 것은 이런 글 쓰는 일에 대한 씬짜오베트남 편집진의 생각이 너무 좋아서였다. 씬짜오베트남 만의 글을 쓰기를 원했고, 이로써 다양한 영역의 관심으로 교민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를 원했으며, 교민지로서의 품격을 원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앞서 글을 쓰시던 선배들이 이러한 원칙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결국 철학이고, 콘텐츠이고, 사회적 책임의식이 된다. 그런데 덜컥 수락해 놓고 종종 후회를 금치 못하고 있다. 두 주마다 써야 한다니! 내게 있어 쉬운 결단은 종종 후회를 남긴다.

‘좋겠다’는 말은 좋은 기대를 품는 말이다. 그래서 이 흔한 표현을 들어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씽글클럽이 자신의 글에 책임을 갖는 기고자들의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씽글클럽이 교민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씬짜오베트남의 바램에 기여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씬짜오베트남과 씽글클럽이 더불어 오래도록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했으면 아주, 아주 좋겠다.
씬짜오베트남에 글을 올리기로 약속한 기간이 일년이다. 스물 네 번의 글 쓰는 기회의 반환점을 돌면서 마침 가진 소망을 풀어내 보았다. 아울러 이런 내 기대는 씬짜오베트남 한주필님이나 편집진과 상의해 본 바가 없이 한 것이니 개인적인 견해라고 정리하자. 부디 다른 의견이 있어도 너른 마음으로 받아 주시길 바라 마지않는다. 그래서 원래 외부 기고자들의 글에는 이런 사족이 붙기 마련이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에 씽글클럽에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신가? 두드려라. 문은 열려 있다. 쉬운 결단은 종종 후회를 남기지만 예기치 않은 보람도 선물한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 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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