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December 4,Friday

어느 이방인의 베트남 적응기

본 지에서는 한국과 달리 사시사철 30도를 웃도는 상하의 나라에서 생활하는 우리 교민들의 다양한 정서를 오롯이 담아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의 글들을 모아서 게재해드립니다. 글의 형식은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시나 산문 혹은 기행문 등 베트남과 관련된 모든 글을 대상으로 합니다. 채택되신 분께는 교민사회 홈쇼핑 1위 소라쇼핑에서 소정의 선물을 마음에 담아 보내 드립니다.

글 : 이상민

드(미국 드라마)를 다운로드 받는데 이틀, 망가진 에어컨을 고치는데 닷새, 신호등보다 차와 오토바이를 봐야 하는 것을 깨닫는 데 한 달, 일억 동이 오백만 원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두어 달… 나는 지금 베트남에 살고 있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속 앨리스가 토끼 굴을 지나 도착한 이상한 나라에서 회중시계를 든 하얀 토끼와 트럼프 병사들, 그리고 무자비한 하트 여왕을 처음 봤을 때 느꼈을 괴상함과 황당함, 혹은 두려움처럼 나 역시 비행기 게이트를 거쳐 도착한 이 나라의 첫인상이 꽤나 강렬했다.
숨을 찌르는 지독한 무더위와 공기와 한몸이 된 것 같은 비릿한 냄새, 내 귀에는 ‘앵앵’ 대는 소리로만 들리는 베트남어로 아무데나 주저앉아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던 사람들… 도착과 동시에 겪어야 하는 낯선 기후와 문화적 이질감,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과연 내가 잘살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초행길에 들어서면 누구나 길을 헤매다가 결국 지도를 펼치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나 역시 이곳에서 지도와 행인을 찾기 전 길을 헤매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대충 부른 약속 시간을 믿고 마시던 커피를 버려둔채 집으로 돌아와 멈춰버린 에어컨과 부지런히 달리는 초침을 번갈아 보며 오지 않을 ‘워커’를 기다렸고, 초당 68kb의 애간장 녹이는 속도로 다운로드 되던 미드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남은 18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또 가족과 함께한 즐거운 쇼핑을 30분이나 지체되는 계산으로 망친데 대해 애꿎은 개와 소를 들먹이며 분노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것쯤 쿨하게 넘기지만 그 순간엔 이 이상한 나라의 모든 것이 불편했다. 그러나 보다 먼저 이곳에 삶을 꾸린 선배들은 그런 건 고민거리도 아니라며 십수 년의 모진 고생담을 군대 이야기처럼 앞 다퉈 쏟아낸다. 김 형이 한 번, 이 형이 한 번, 아.. 정 형도 한 번. 마지막으로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냐는 경외를 담은 내 눈빛에 선배들은 ‘좀 더 살아봐’라는 진부한 진리를 조언으로 던져줬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 했던가.
시간과 함께 가는 삶은 많은 부분에 변화를 가져왔다.
일 처리하듯 쪽쪽 빨아 재빨리 먹고 일어나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얼음이 녹는 양을 고려해 수위를 조절하며 마시고, 먹자마자 식기를 가져가버리는 것에 ‘나가라는 거냐’며 발끈하던 내가 이제는 다 먹은 식기를 치워 달라며 직원을 부른다. 무엇보다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블록을 쌓으며 함께 노는 시간이 고된 노동이 아닌 즐거움이 됐고 남과 하는 것이던 대화는 아내와의 허심탄회한 속풀이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됐다.
또 아무런 목적 없는 이웃들과의 치맥(치킨과 맥주)이 즐겁고 그들과의 소소한 담소가 소중해졌다. 춥지 않아 좋고, 책 읽을 시간이 많아 좋고, 배달이 편해 좋고, 청소 빨래 설거지 안 해서 좋고…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상한 나라에서는 천둥벌거숭이 마냥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던 앨리스가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과연 앨리스를 보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 역시 스스로 이방인인 줄 모르는 이방인이었다. 내 삶의 기준에 급급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주변을 탓하며 뜨거운 야외 벤치에서의 담배 한 대로 마음을 다스리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기 위해 찬물 샤워를 하기도 했다. 한때는 TV 광고에서 조차 ‘빠름~ 빠름~’ 하며 미친 모바일 속도전을 펼치고, 널따란 쇼파에 누워 리모컨의 버튼 몇 번으로 상품을 주문하던 한국을 떠나 뭘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며 그냥 적당히 포기하고 살자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흘려들었던 선배들의 말처럼 좀 더 살아보니 살게 되고 살게 되니 보이는 것들이 생겨났다. 내가 하지 않아서 좋은 것들이 있고 함께 해서 즐거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내가 느끼던 느림과 불편함이 앗아간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딱히 빼앗긴 것을 찾기 힘들다는 의외의 사실도 나를 편안케 했다. 오히려 무엇을 포기하거나 빼앗긴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사라졌던 소중한 것을 얻는 중이었다.

그런 깨달음으로 나의 적응이 시작됐고 지금은 매일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어쩌면 앨리스도 이상한 나라에서 계속 살아갔다면 처음에 느낀 괴상함과 황당함 쯤은 금세 평범함과 일상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처럼…

그래, 나는 지금 베트남에 살고 있다.
그리고 천둥벌거숭이였던 이방인은 느림과 불편함이 가져다 준 행복에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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