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December 1,Tuesday

미소를 잃은 아이들

“최고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미소를 가르치는 일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한 말이랍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미소가 떠난 아이를 상상하는 것조차 너무 끔찍한 일입니다. 자연스런 미소가 피어나는 아이의 얼굴에서 우리는 천국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한국, 참 문제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 교육이 너무 잘못되어가는 것 같아 영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국에 갔을 때 길에서 가끔 만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미소가 있던가요? 저는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보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모든것이 귀찮고 하찮아 보이는 시크한 표정을 만납니다. 이제 고작
열서너 살 밖에 안돼 보이는 중학교 학생들이 지친 모습으로 밤늦게 학교나 학원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어쩌자는 거야” 하는 비
명이 뼈마디 마디마다 쏟아져나옵니다. 누가 우리 어린 학생들에게 건강한 미소를 앗아갔습니까?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감히 스스로 생각해봤습니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서라도 아이들 교육을 시켜야만 하는 한국의 간절한 교육열, 그 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스스로를 비하하는 아이들, 5천만의 모든 국민이 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자신이 원하는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하여는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야 합니다.

대학 진학 희망자가 차고 넘치니 우열을 가려야죠. 주관적으로 학생들의 개성이나 학습 효과를 평가하는 교사들을 불신하는 학부모들의 감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은 것이 바로 4지 선다형 평가 시험입니다. 비록 25%의 행운이 깃들어 있지만 적어도 똑같은 조건이라는 환경이므로 불평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그렇게 완전한 평가가 된다고 믿으십니까?
1965년 중학교 입시에서 엿을 만들 때 디아스타제 대신 무즙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항의로 정답이 두 개로 바뀌면서 한바탕 나라가 뒤집어지더니만 그 후에도 몇 번 유사한 항의 소동이 이어져, 그 부작용으로 1969년부터 아예 중학교 입시가 사라지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파동을 보면 4지 선다형 문제라고 의구심 없는 평가가 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일깨워줍니다.

얼마 전 호찌민의 모 국제학교를 다니며 세계의 유수대학에 입학한 학생을 인터뷰하며 국제학교에 와서 느낀 차이점을 물었습니다. 그 학생이 한가지 예를 보여줬지요.

인도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한 후 학생들의 이해를 측정하기 위한 역사 시험의 문제가 이렇게 나왔답니다.

문제: 지금 당신은 인도에 여행을 왔다.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편지 내용에는 인도에 관한 관습 5가지와 관광명소 5가지 이상이 각각 들어 있어야 한다.

너무 멋진 문제 아닌가요?
이런 시험 문제는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가요?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들과 “다음의 보기 4가지 중 인도의 관습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라는 4지선다형 문제를 풀던 학생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또 어느 부류가 진짜 공부를 하는 것일까요? 또 사회에 나와서 어떻게 달라질까요?

혹자는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 구도를 거쳐 자란 한국인이라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고 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런가요?
별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맞는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까지입니다.

같은 제품을 들고 남들과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동안은 우리 교육의 치열한 경쟁구조가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다릅니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며 상위그룹으로 올라가면 점차로 남들이 지나간 길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즉, 정답이 들어있는 4지 선다형이 아니라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주관식 문제들이 출제된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단순 경쟁력이 아닌 창조적 경쟁력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요즘 들어 우리의 경제 성장이 둔해진 것도 나라가 이미 상위그룹으로 올라갔는데 우리가 아직은 창조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는 삼성도 같은 제품으로의 경쟁에서는 절대로 지지 않지만,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그렇게 좋은 성과를 보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혁신적 기업과는 다른, 제조 전문기업으로 구분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 인류 최고의 과학적인 문자로 인정받는 한글을 만들어낸 창조적 한민족 아니던가요? 우리에게 엄청난 창의력이 잠재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바꿔야 합니다. 주입식 수업으로 정답을 찾아내는 요령을 익혀 상대적 경쟁에서 이기는 학생들보다 개인의 적성과 개성을 살리는 학습으로 창의력이 넘치는 미래의 한국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시기를 놓치게 되면 우리는 남들이 닦아놓지 않은 길에 올라서면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고 헤매는 의존적 국민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해도 우리의 교육정책이 단시일에 그렇게 바뀌리라고 상상하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이미 늦은 것 같다고요? 세상에 어떤 것도 늦어서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Never too late!)

기성세대는 이미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세상을 쉽게 살 수는 있지만 꼭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에게 자신의 길을 찾도록 조금은 풀어주세요.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좀 주세요.
넓은 초원에 풀어놓고 키운 소의 고기는 좀 질긴 탓에 높은 가격을 받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소 자신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믿지 않습니까?

자녀들에게 잠시 참고서 속에 담겨있는 머리를 들고 책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라고 권유하세요. 찬란한 태양아래서 환한 미소로 세상과 대화를 나누도록 길을 열어주세요. 그런 약간의 자유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또 자신이 누군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싫어하고 못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세상의 거울을 통해 자신모습을 찾고 또,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어봐야 합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 자아를 조금이라도 찾은 사람들은 적어도 사회와 부모 등 타인이 욕망하는 삶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어둔 사람들보다는 훨씬 창조적이고 자의적인 삶을 삽니다. 또, 그렇게 살아야 평생을 남 밑에서 다람쥐 채 바퀴 돌듯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팔팔한 나이에 밀려나 조기 백수로 지낼 것을 고민하는 기성세대의 우둔함을 답습하지 않게 됩니다.

비록 계절도 못 느끼는 베트남이지만 봄은 봄이네요. 새봄에는 우리도 새로운 사건,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 마음 껏 소리치며 자신을 찾아가는 방임의 여행을 한번 해치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는게 재미없어 사라진 미소를 되돌리기 위하여 말입니다.

작성자 : 한 영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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