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September 23,Monday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

해외 생활은 늘 지독한 외로움과 함께 한다. 다른 언어로 인해 입은 다물어진다. 말을 하지 못해 혼자가 되고 혼자여서 외롭다. 그래서인지 유일한 대화 상대가 나 자신일 때가 많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옳다. 아마도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하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알아가게 되니 말이다. 첫 번째의 생물학적 탄생과 두 번째의 상징적 탄생은 동일한 인간에게 나타나지만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르다. 말하자면 인간은 어머니가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날에 단 한 차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탄생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변신이야기’는 2천년 전, 바로 이 문제를 놓고 평생 골머리를 앓았던 오비디우스라는 로마 남자의 결론이자 역사적 ‘변신’에 성공한 신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대 로마시대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BC 43~AC 17)는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치 주의 ‘술모’에서 부유한 기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옥타비아누스라고도 불리던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공화정의 첫 황제다. 이전에도 로마라는 국가는 존재하였으나 제국의 면모를 갖추기 전이었으며 카이사르와 술라에 의한 독재로 통치되던 나라였다. 로마제국의 모습을 구축한 이는 아우구스투스다.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예수가 살던 시대의 통치자다. 이 시기의 전후하여 악티움 해전이 있었고 변방에서는 빈번한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황위를 둘러싼 내전도 계속 되지만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로마는 세계를 자신의 일부로 복속시켜 나간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하던 때였으니 오비디우스는 이 시대를 통과하며 살았다.
오비디우스는 얼마 간 아테네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세계의 중심은 페르시아에서 로마, 그리스로 이양되는 시기였다. 당시 지식의 중심이었던 아테네. 한번 자유를 만끽한 이 젊은 시인은 다시 로마로 돌아가 관리가 됐지만 그 삶은 지루했고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이후 자기 삶의 방향을 ‘전업 시인’으로 정한다. 그의 시작(詩作) 중에 연애에 대한 기교를 시적 형태로 엮은 ‘사랑의 기술’(Ars Amatoria)이 풍속을 문란케 하는 책이라 하여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노여움을 샀고 추방 명령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시 쓰는 일을 중단하고 ‘변신 이야기’ 집필에 몰두하게 되니, 인류는 큰 선물을 얻게 된다.
변신이야기, Metamorphoses는 변화를 의미하는 meta, 무언가가 더해진 형태, form을 뜻하는 morphe로 만들어진 합성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생물학적 탄생에 더한 상징적 제2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른바 환골탈태의 거룩한 변신이 메타모포시스다. 한 나라의 왕자였던 싯다르타가 출가해 7년간의 고행과 수행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메타모포시스요, 예수가 44일간 사막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는 이미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변화가 바로 메타모포시스다. 많고 많은 메타모포시스 중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산에 사는 ‘메아리’는 이렇게 생겨났다.

유피테르(그리스 신화의 이름은 ‘제우스’)의 애정 행각을 쫓으려 헤라는 에코 요정에게 제우스의 행적을 묻게 되는데 에코의 수다로 그만 유노(그리스 신화의 이름은 ‘헤라’)는 유피테르를 놓쳐버린다. 화가 난 유노는 에코에 형벌을 내린다.

‘나를 속인 그 혓바닥, 그냥 둘 줄 아느냐? 앞으로 너는 한마디씩밖에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것도 남의 말을 되받아, 내가 그렇게 만든다.’

그런데 어느 날, 동무들과 헤어져 인적 없는 숲 속으로 혼자 들어온 나르키소스를 보고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에코를 외면한다. 에코는 나날이 수척해지면서 온몸에 주름살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이렇게 여위어가다가 에코의 아름답던 몸은 그만 한줌의 재로 변하여 바람에 날려가고 말았다. 이때부터 에코의 모습은 숲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에코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에코의 목소리만은 살아 있으니 당연하다.” (‘변신이야기’, 민음사, 이윤기 옮김, p. 129~133)

변신이야기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사랑과 애욕(愛慾)의 이야기가 많다. 젊은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이요, 인간을 미치도록 사랑한 신의 이야기, 불멸의 신을 짝사랑하다가 끝내 이루지 못한 인간의 이야기, 동성애, 자기애, 아버지와 딸 간의 또는 오누이 간의 사랑 등 사회적으로 용인된 또는 금기시된 모든 형태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오비디우스는 인간 심리의 다양한 측면을 탐색한다. 오비디우스의 세계에서 꽃과 나무, 새, 돌, 메아리 등 자연계의 사물과 자연현상에는 모두 사랑, 증오, 질투, 분노, 복수심 등 어떤 사연이 간직되어 있다. 그 애틋한 사연의 결과로 인간은 어찌할 수 없이 그런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생물학적 ‘인간류’에서 상징적 ‘인간’으로 비로소 다시 탄생하게 된다. 변신이야기를 읽고 나면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다시 태어난 적이 있었는가? 그것은 언제였는가? 나를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준 상징은 무엇인가? 내 생물학적 탄생과 인간적인 재탄생을 가르는 사건은 무엇인가? 다시 태어난 적이 없다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해외에 있다면 좋은 기회다. 이곳에 있으며 다른 언어에 입을 다물고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대화하며 나만의 ‘변신이야기’를 써보자. 베트남, 다시 태어나기 좋은 곳이다.

장재용

작가, 산악인, 꿈꾸는 월급쟁이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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