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브라보마이 라이프

해 저문 어느 오후 집으로 향한 걸음 뒤엔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 날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리 나쁜 것 만도 아니었어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
힘든 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 보면
하지만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것이 길이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는 건축가이다. 이름 있는 중견 건축설계 전문기업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4년의 재임기간 동안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고 몸을 상해 가며 열심히 일을 했다. 그는 회사를 사랑했고 그 회사를 든든히 만들어 가기 위해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람 마음처럼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런 그가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게 된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성과가 나빠서도 아니었다. 그의 명예와 자존심은 상처가 나 버렸다. 내가 잘못 살아 왔을까. 무엇 때문에 그 힘든 길을 걸어왔던가. 그의 마음에는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의 다른 제안을 마다하고 사직을 택했다.
나쁜 일은 한번에 밀려온다. 그에게도 그랬다. 마치 그만 두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가까스로 담아 놓았던 제방의 물이 터지듯 그렇게 밀려왔다. 자신의 건강 문제가 그랬고, 가족의 일이 뒤를 이었다. 가까이하던 직장의 후배들 사이에도 섭섭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베트남으로 나를 찾아왔다.
주일을 겸해 함께 예배도 드리고, 저녁 시간에는 담소와 맥주도 함께 나눴다. 사실 그는 나와 특별한 관계라 할 만했다. 내가 지금의 회사에 몸 담게 된 데에는 그의 영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러니 베트남에서 이름을 번듯이 올리고 활동할 터를 닦는 일에 그가 역할을 해 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었던지 간에 그는 내게 감사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내게 해 준 정도의 큰 일을 도울 수는 없었지만 힘든 마음으로 찾아준 그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랬던 그가 잠시의 혼란을 거쳐 자신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런지 벌써 4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는 독립하여 자신의 건축설계회사를 설립했다. 대여섯으로 시작한 회사가 규모가 늘어났고 그럴듯한 실적들을 쌓아 가고 있다. 큰 회사의 대표이사 시절 동안 손에서 놓은 연필을 다시 잡고 트레이싱지에 선을 그으며 건축 디자인에 몰입했다. 그는 직접 설계한 건물에 입주하여 경영인이 아닌 건축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어려움을 겪었다. 아니, 겪었을 것이다. 사실 여러 사람들이 현재의 그가 잘나간다며 성공을 말했지만 8백 명이 넘는 대형 설계조직을 지휘하던 사람이 작은 아틀리에를 시작하면서 겪는 불편과 곤란, 그리고 시행착오는 한두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서울에 출장 차 들른 김에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2층 회의실로 올라오라고 했다. 회의실의 원목으로 된 두터운 문을 여니 그가 있었다. 등을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채.
그랬다. 그는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둘러보니 회의실에는 큰 주방이 있고 온갖 조리도구와 냉장실, 냉동고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바쁜 손놀림으로 야채를 다듬었다.
“매주 두 번은 내가 직원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날이야.”
오늘은 비빔국수가 메뉴라고 한다. 그는 빠르고 익숙한 칼질로 당근과 오이, 그리고 나는 이름도 모르는 야채들을 채 썰고, 다시 자리를 옮겨 면을 준비했다. 조리대 위에는 양념장들이 만들어져 놓여 있었다. 향이 좋았다. 문득 요리를 좋아한다는 오래전 그의 말이 기억났다.
“직원들 좋으라고만 하는 건 아니야. 이렇게 요리를 하고 있으면 내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아.”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내려와 부산하게 자리를 하고 음식을 나누었다. 나도, 그리고 그도 그 사이에 끼어 앉아 함께 점심을 했다. 오뎅국물이 너무 맛있다. 설마 다시다 국물 맛은 아니겠지?
식사를 마치고 그와 함께 1층의 커피숍으로 내려갔다. 그는 북카페를 하고 싶어했는데 그 건물 1층에 꿈을 이루었다. 커피숍 전체에 일반 도서는 물론 출장지에서 산 책들과 기념품들이 사연을 담은 메모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한 켠에는 북클럽 회원들의 활동을 홍보하는 코너도 설치되어 있었다.
“북클럽? 시간이 지나니까 저런 활동들이 생기네? 나는 그저 자리만 내 줄 뿐인데.”
차를 나누는 그의 얼굴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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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는 단지 자리만 제공할 뿐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열매가 맺을까. 그 꽃이 내는 향기는 단지 그의 것만이 아니고 열매가 주는 포만은 함께 누릴 수 있는 그것이 된다.
한때 우리에게 닥친 일들로 인해 상심하고 후회도 있었지만, 하지만 다시 일어나 걷는 이의 발걸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석양도 없는 저녁에 내일 하루도 흐릴 것이라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오늘 겪은 힘든 일들로 어깨가 처질 수도 있지만, 그러나 세상은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는 것이 세상이다. 우리 앞에 길이 없는 듯이 보일지라도 걷는 우리의 걸음이 길이라 생각하고 걷는 것이 세상을 사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길이 없는 그 길에서 자신의 꿈을 좇아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는 참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글을 시작하며 봄여름가을겨울이 2002년 발표한 곡,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가사를 일부 옮겨 적었다. 그를 보며 이 노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만이 아닌 많은 다른 ‘그들’을 위한 축가가 되기를 바란다.
자기의 인생의 길을 만들며 걸어 가는, 걸어가는 그 걸음으로 길을 만드는 수많은 그들을 위하여. 브라보 마이 라이프.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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