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October 21,Monday

사기열전 _ 사성 사마천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전환기였다. 최초의 통일 왕국 진이 무너지고 한이 세워졌으나 내우외환은 끊이지 않았다. 한은 전통적인 법치 국가를 표방했다. 한 비자의 법가 사상은 한의 사상적 줄기를 형성한다.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뒤로하고 법률에 의한 국가 통치를 위해 한 무제(7대 황제)는 자신이 직접 선발한 인재를 등용하여 자신만의 관료 집단을 만든다. 당시 이 새로운 집단은 상황에 따른 개인적 판단이 중시된 예전의 통치방식 대신 엄격한 법률을 적용한다. 사마천은 이 시대의 관료였다. 하, 은, 주, 춘추전국, 진까지 이어오던 전통적 통치 방식과 한의 통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정치, 사상, 사회적 변화의 전환기에 사마천은 그의 역작 ‘사기(太史公書)’를 쓴다.

사마천은 10살 무렵 고문古文을 깨치고 10대 초부터 강남, 강북의 여러 지방을 두루 편력한 뒤 산동과 하남을 거쳐 수도 장안에 들어가 관리로 임명된다. 이후 황제의 명으로 사천 지방에서 운남의 곤명까지 여행을 하는 등 중국 각지를 돌며 특히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많은 곳을 여행하는데 이러한 경험이 ‘사기’ 편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음은 물론이겠다. 그는 결코 문헌자료만 파고드는 책상물림의 역사가가 아니었다. 여행은 사람에게 무엇일까? 왜 대가의 삶에는 여행이 빠지지 않는가? 헤로도토스, 투기디데스 등의 서양의 역사가들이 길고 먼 여행에서 역사 서술의 영감을 얻었듯 사마천 역시 중국 역사의 주무대가 되었던 지역을 오랜 기간 동안 여행했다고 전해진다.
그에게는 치욕의 개인사가 있다. 기원전 99년 장군 이릉(李陵)이 흉노에 투항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마천은 이릉의 입장을 변호하다 투옥된다. 이듬해 궁형, 즉 생식기를 잘라내는 형벌을 받았다.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역사가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굳건히 하며 편찬 작업에 전념하는데 그 원동력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그의 편지 글이 있어 소개한다.

‘저는 천하의 산실된 구문(舊聞)을 수집하여 행해진 일을 대략 상고하고 그 처음과 끝을 정리하여 성패흥망의 원리를 살펴 모두 130편을 저술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초고를 다 쓰기도 전에 이런 화를 당했는데, 나의 작업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안타까이 여긴 까닭에 극형을 당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명산(名山)에 보관하였다가 내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하여 촌락과 도시에 유통되게 한다면 이전에 받은 치욕에 대한 질책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만 번 주륙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지혜로운 이에겐 말할 수 있지만 속인에겐 말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 ‘임안에게 보낸 편지’(報任安書) 중에서-

그에게 있어 치욕은 위대함으로 가는 연료였다. 인간이 무언가를 이룰 때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성과를 내는 적은 보지 못했다. 항상 있어왔던 결핍, 그 결핍을 어떻게 관리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위대함의 분수령을 이룬다. 결핍이 위대함으로 가게 하는 길, 사마천에게서 다시 배운다.
문명의 발전을 기폭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사기에서 받은 감동은 하나다. 군주가 인재를 그토록 열망하는 시대적 유산에 대한 부러움, 감동. 편견과 조건, 제약이 따르지 않는, 국경을 초월한 인재 영입 전쟁, 춘추 전국 시대를 관통하는 것은 통일 국가를 위한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사상을 펼치려는 군주의 인재 전쟁이었다. 백성이 잘 사는 나라, 백성의 뜻을 잘 알고 받드는 군주, 부국강병의 개념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영혼의 민주주의를 향한 그들의 노력이 눈물 겹다.
수많은 인재들이 세상에 나오고 그리고 사라지지만 인재들의 역동적인 지략과 혀를 내두르는 통찰을 빠짐없이 기술한 것은 이 책의 백미다. 나는 또 다른 사람에게 주목한다. 그런 인재를 영입할 때, 항상 자신의 자세를 낮추며 그들을 취하려는 군주들이다. 이 책에서는 유독 군주가 말하는 관용어가 많은데 나를 감동시킨 관용어가 있다.

‘내가 아무개만 못하오’

이것은 자신감에 넘친 모습이다. 이런 군주라면 훌륭하다. 이러한 사람이 통치하는 국가는 근사하지 않을 수 없다. 사기열전은 흠이 없다. 통사적으로 시대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잗다란 사실로 흠집 낼 마음은 없다. 수 백 년이 지난 뒤 고려의 김부식과 일연이 참고 삼아 역사를 편찬할 만큼 이미 그때 오랜 고전의 반열에 올랐던 저서다. 사마천의 결핍, 궁형이라는 치욕적 형벌에도 간행했던 것을 다시 상기할 때, ‘사기’ 는 한 개인의 피가 뒤섞인 책이라기 보다는 시대가 만들어낸 역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사기’ 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시대는 그릇의 물이 넘치기 직전의 터질듯한 장력을 견딘 듯하다.
사기에 나오는 인간 군상들에게서 신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흥미롭다. 그들의 세계가 그리스 신들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킬레우스 연상시키는 한신과 오디세우스를 연상시키는 양저 등 서로 번갈아 보며 연상시키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배가된다. ‘사기열전’을 서양의 신화적 인물과 대비하여 그 해석과 비교를 음미하며 읽는 맛은 뽕 맛과 같다. 부분의 연결이 거듭되며 결국 정점에 이르러 같아지는 모습이라고 하면 맞을까. 사기열전은 동양의 옛 이야기로만 그칠 게 아니다. 그 안에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해석과 상징을 찾아 나서면 새로운 고전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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