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October 21,Monday

추석 을 보내며

베트남도 추석을 지내기는 하지만 휴무일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명절 같은 느낌은 확실히 덜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절이라 하면 길고 지루한 이동이 먼저 연상된다. 그러나 그 고단함의 끝에는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던 부모 형제와 친지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있다. 반가운 인사로 함께 모이는 자리마다 풍성한 대화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 추석에는 이 모든 요소들이 다 들어있다. 그리고 연휴이다. 명절이 명절 다우려면 일단 쉬는 날이 많아야 한다. 이런 조건으로 본다면 베트남에서 맞는 추석은 도무지 명절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달력의 빨간 날이 아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금년의 추석은 자체 휴일로 하기로 한 것이다.

트남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추석이 있다. 그러나 같은 듯 다르다. 먼저 추석이라는 이름이 같다. 베트남에서는 추석을 ‘쭝투(Trung Thu)’, 영어로는 ‘Mid-Autumn Moon Festival’이라고 한다. 쭝투는 한자어 ‘중추(仲秋)’에서 온 말이다. 중국인들도 추석을 ‘중추’ 또는 ‘월석(月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우리말로 ‘한가위’, 다르게는 ‘가배(嘉俳)’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 한다. 추석(秋夕)이라는 명칭은 중추와 월석이 합해져서 축약된 표현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중추절이라는 동일한 명칭으로 절기를 지내는 것은 중국, 우리나라 그리고 베트남이 같다.
이 날은 음력 8월 보름이다. 베트남도 마찬가지이다. 음력으로 기념되는 몇 안되는 절기의 하나이다. 그러나 어떻게 유래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우리의 경우에는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명절이라고는 하지만 더 오랜 기원 또는 중국의 영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베트남에서도 고대 중국에서 유래된 문화라 하기도 하고 베트남의 전통 농업문화가 추석의 기반이 되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사람들도 고대로부터 이 날을 즐겨왔고, 선녀 항응아(Hằng Nga) 설화 등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전통이 되어 이어져 왔음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추석은 가을 중의 가을, 풍성한 수확의 때에 맞는 절기이다. 여름을 거쳐 무르익은 곡식과 과일을 거두는 때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겁다. 오죽 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해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래서 이 때는 가족과 친지가 함께 모여 그 해의 수확을 감사하고, 모인 일가 친지가 음식과 정을 나눈다.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며 농사일의 고단함을 벗어나 즐거운 놀이로 함께 즐기는 민족의 명절이다, 산업사회로 들어선 이후 농촌사회가 변화하여 추석의 본래 의미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추석은 귀성 전쟁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듯 전쟁을 치르듯이 고향을 향하는 강렬한 향수와 같은 속성이 있는 것이 우리의 추석이다.
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같은 명절 느낌이 없기도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수확의 개념이 우리와 다른 점도 추석에 대한 느낌이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도 가을에 추수를 마치면 그 해에 풍족하게 내려 준 신과 조상께 감사하고 음식을 나눈다. ‘쭝투를 지낸다’는 표현이 베트남어로는 ‘ăn Tết Trung Thu’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런 느낌이 더욱 잘 전달되어 온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쭝투를 먹는다’는 뜻이 되니 말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가득 찬 달 아래서 함께 어울려 먹는 것이니 베트남의 중추절도 온 가족이 모여 풍요를 즐기는 절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풍성한 땅의 소산물들로 인해 수확의 기쁨이 덜한 것처럼 보인다. 그보다는 오랜 노동으로 돌보지 못한 가족, 특별히 어린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것이 추석의 핵심인 것 같다. 실제로 추석을 일컫는 말에 어린이날을 의미하는 ‘뗏티에우니(Tết thiếu nhi)’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먹는 추석 얘기에 송편이 빠질 수 없듯이 베트남에서는 월병(月餠)이 빠질 수 없다. 추석이 되면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나 외부에 감사를 표할 때 대부분 월병을 준비한다. 월병을 우리말로 풀어 하면 보름달 빵인데 베트남어로는 ‘바인뗏쭝투(Bánh Tết Trung Thu)’라 한다. ‘바인뗏쭝투’는 ‘바인쭝투(Bánh Trung Thu)’라고 줄여 부르는데 추석이 되면 이 빵을 예쁘게 포장된 상자에 담아 아이들과 친지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최고 인기이다. 바인쭝투는 둥근 모양이나 사각형으로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기에 바인쭝투 세트에는 사각형과 원형의 빵이 적절히 배열되게 된다. 또 황금색 바인쭝투는 태양을, 흰색 바인쭝투는 달을 뜻하며 빵 속에 노란 계란을 두어 보름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알고 먹으면 재미가 더한 것인 바인쭝투이다. 바인쭝투는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맛도 다양하다. 물론 어떤 빵은 우리가 먹기에 익숙하지 않은 맛도 있다. 그런데도 자꾸 먹다 보면 손이 가는 것이 바인쭝투이다.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직원들에게 바인쭝투를 선물하고 외부로부터 선물 받은 바인쭝투는 풀어 직원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선물 중에 한국 포도가 있었다. 직원들은 한국에서 수입된 포도라고 욕심을 내며 송이째 자기 자리로 들고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하나둘씩 눈치를 보며 포도송이를 반납하는 것이었다. 물어보니 시기만하고 맛이 없다고 한다. 우리 입맛에는 좋은데 왜 그럴까 하여 살펴보니 포도를 껍질 째로 먹고 있던 거였다. 한국 포도는 껍질을 벗겨 먹는 반면 베트남 포도는 껍질 째로 먹는데다가 베트남 포도가 한국산에 비해 단맛이 더 강하다 보니 입에 익숙치 않았던 것이다. 직원들이 맛나 하는 바인쭝투의 맛에 우리 주재원들이 거북해 하는 것이나 직원들이 한국 포도를 시다고 밀어 두는 것을 보면 같은 듯해도 참 다른 것이 많구나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이건 베트남 사람이건 한 해의 풍요를 감사하며 커다란 보름달을 기다리는 마음은 동일할 것이다. 그러니 쭝투이든 추석이든 가족이 함께 음식을 나누고 둥근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라고 비록 하루일지라도 쉬도록 한 것은 참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혼자 흐뭇해하며 맞은 추석, 그런데 웬걸. 추석 오후부터 큰 비가 늦도록 쏟아졌으니. 보름달 볼 기대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까 보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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