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January 28,Tuesday

Metropolis Ho Chi Minh city-메트로폴리스 호찌민시티

가끔씩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출근시간도 아니고 퇴근시간도 아닌 때인데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이들은 또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회사가 있는 위치가 디엔비엔푸 거리이다 보니 반드시 거쳐야 하는 로터리가 있다. 이 로터리는 보티사우, 바탕하이, 리찐탕, 깍망탕땀, 응우옌트엉히엔, 응우옌푹응우옌 거리가 만나는 곳이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이 로터리를 통과하지만 아직도 이 곳에 들어서면 발에 힘이 들어 간다. 운전기사를 대신해 허공의 브레이크를 밟느라 다리가 아프다. 물론 진짜 브레이크 페달은 운전기사가 밟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갑자기 끼어드는 오토바이에 깜짝, 깜짝, 깜짝 놀라기를 최소한 세 번은 해야 로터리를 빠져나온다. 그렇게 사람이 많다. 모두 전투하는 것 같다. 차도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모두 전진, 전진하며 치고 들어온다. 사람이 너무 많다.
호찌민 시의 인구가 공식적으로는 860만 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천 만명이 넘는 도시이다. 이런 도시를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라고 한다. 영어로 하니 폼 나 보이지만 그냥 ‘대도시’라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공업화와 더불어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급격한 도시화 현상이 일어났다. 메트로폴리스는 이 과정에서 어느 지역의 중심도시와 인근 중소 규모의 도시가 결합함으로써 형성된 대형 도시를 말한다. 이 도시들은 국가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되며 도시 간 국제적인 교류의 장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많이 들어 본 뉴욕, LA, 런던, 파리, 상 파울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쿄, 베이징 같은 도시들이 이런 메트로폴리스이다. 서울도 메트로폴리스이다. 메트로폴리스의 인구 기준에 대한 정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대략 수백 만 명에서 천 만명에 이른다. 그러니 호찌민시는 이미 대도시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 위의 단계를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라고 한다. 메갈로폴리스는 이런 도시들이 연결된 거대도시 집중지역이다. 그러니 메갈로폴리스는 실제 도시가 아니라 ‘도시권역’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옳겠다.

‘고질라’라는 영화가 있다. 원래 원작에는 고대 생명체인 거대 괴수인 고질라가 수폭실험으로 서식지가 파괴되자 육지로 상륙하여 도시를 파괴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고질라는 자체로 걸어 다니는 핵에너지이다. 이 괴수는 과학을 맹신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이며 통제를 벗어난 과학기술에 대해 자연이 어떻게 재앙으로 되돌려주는가를 상징한다. 쓸데없는 상상일지 모르지만 나는 메트로폴리스가 고질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탄생시켰지만 결국은 제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소외의 코드를 품고 있다. 강한 것은 경배되지만 동시에 소외된다.
현대 도시 디자인의 중요한 경향 중의 하나가 근대주의, 즉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에는 발생 단계부터 구별되고 강하고 그리고 소외되는 속성이 있다. 19세기 이전의 전통적인 도시 및 건축 양식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태동한 근대건축운동은 다양한 계보를 갖고 있지만 주류의 경향은 과거의 비판과 단절이다. 근대건축과 도시는 자체로 완결되며 강력한 언어의 매우 지배적인 건축사조이다. 그러니 가히 고질라와 같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얼마전 ‘괴수들의 왕 고질라’라는 새로운 영화를 보았다. 고질라가 다른 거대 괴수 모두를 지배하는 스토리이다. 이 영화를 예를 들어 설명을 쉽게 하자면 고질라는 메트로폴리스이고 고질라 중심으로 그에게 속해 경배하는 모스라, 라돈, 뉴모토 같은 괴수들의 연합은 메갈로폴리스가 된다. 이런, 상상이 너무 앞서 갔는지도 모르겠다.

메트로폴리스는 그러므로 팽창해 버린 도시이다. 태생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151개의 도시가 있는데 여기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베트남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더욱 심각하다. 베트남에는 2014년말 기준으로 774개의 도시가 있는데 도시 인구의 50% 이상이 상위 16개 도시에 집중하여 거주하고 있다. 거기에는 두 개의 특별 도시가 지정되어 있는데 특별히 인구가 집중하여 살고 있다. 하노이시와 호찌민시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당연히 살아야 할 장소가 부족해진다. 주거비가 상승하고 땅값이 오른다. 높은 땅값에 많은 인구를 살도록 해야 하니 건물이 높아진다. 아파트도 초고층, 업무시설도 초고층이다. 인구가 많아지니 길도 더 필요하다. 그러나 길을 아무데나 낼 수는 없으니 늘어나는 인구 이동에 몸살을 알아야 한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전철을 건설하고 버스노선을 늘리지만 소득이 높아질수록 개인의 도로 점유율도 높아지니 도로는 계속해서 부족할 수밖에 없다. 환경의 문제는 인프라만큼, 또는 그것보다 심각하다.
인프라는 그나마 인위적인 개선이 가능하지만 공해와 쓰레기로 인한 생태환경의 오염, 물 부족과 같은 문제들의 해결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된다. 불편을 넘어 인간의 삶 자체에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것은 교육과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이 두가지가 대도시로 사람을 모이게 하는 ‘끌개(attractor)’와 같다. 그들은 꿈을 가지고 메트로폴리스로 향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그들은 곧 사회문제의 주인공들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꿈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슬럼(slum)이 형성된다. 삶이 거칠어 진다.
메트로폴리스는 멋지고 웅장하고 밤이면 말할 수 없이 화려하다. 이 도시의 밤을 보라. 81층에 이르는 높은 조명의 탑 랜드마크 타워는 메트로폴리스 호찌민시티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있다. 그러나 도시를 밝히는 타워는 사람들을 현혹하는 미혹의 등과 같다.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은 조명의 치장이고 다른 건물의 스카이라운지에서 보는 저 멀리의 장식이다. 그 초고층 건축의 조명은 인간의 거주가치를 판매가치로 바꾸어 버렸다. 스카이라운지에서 내려다보는 도시가 아닌 거리에서 실제적인 눈높이가 되어서 겪어야 하는 대도시의 일상이란 힘겨운 것이다.

얼마전 붕따우에 지인들과 함께 다녀왔다. 다들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중 장기 출장으로 베트남에 온 일행이 있었는데 한 톤 더 높여 경탄한다. 꽃 많네. 아름답네. 깨끗하네. 호찌민시보다도 더 좋네. 미안하지만 그건 당연한 이야기이다. 붕따우는 메트로폴리스가 아니니까. 제발 그래서 붕따우가 지금 같기만 하면 좋겠다는 서글픈 기대가 들었다. 개발이라는, 발전이라는 미명으로 감당할 수 없는 덩치가 되어 재앙의 신이 된 고질라 같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미삼아 덧붙이자면, 예전에 우리나라에 미도파(美都波) 백화점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 미도파가 메트로폴리스를 한자어로 음차한 것이다. 아마 지금이었다면 메트로폴리스 백화점이라고 불렸겠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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