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27,Sunday

‘신곡 (La Comedia)’ – 단테

두란테 델리 알리기에리 (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 생의 굴곡을 반영이라도 하듯 긴 이름을 가졌다. 단테는 1265년, 13세기 중반 북부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13세기의 유럽, 그 중에서도 피렌체는 인류가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던 흥미진진한 곳이었다. 봉건제도가 서서히 그 명을 다해가고 있었고 새로운 계급, 또 다른 힘이 사회를 움직이려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십자군 전쟁 등 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에서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사랑을 동시에 느끼던 시기였다. 과학과 미술 기법이 발달하고 고전에 대한 재해석이 봇물 같이 터져 나오던 때였으니 이웃나라 프랑스에서는 세기의 건축물 노트르담 대성당(1163~1250)을 완성하며 고딕 양식의 절정을 구가했고 미술에서는 피렌체의 조토 디 본도네가 명암과 단축법의 혁신을 이루며 후대 마사초와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로 이어지는 ‘콰트로첸토’의 서막을 장식하던 때였다. 당시 유럽의 분위기, 특히 피렌체 특유의 자유의 공기는 그 어떤 시기보다 맑았다. 르네상스 시대라 불리던 때, 단테는 이 시기를 살며 ‘신곡’을 썼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나누어 지고 각각 33개의 ‘곡’(曲, canto)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에 서곡을 합쳐 모두 100곡으로 구성된 서사시다. 하나의 ‘곡’은 150행 내외로 전체 1만 4,233행에 달한다. 오늘날은 신곡이란 제목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이 세 편을 가리키는 제목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comedia, 희극)였다고 한다.

“절망으로 시작되어 희망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붙였다고 단테는 설명한 바 있다. 책은 지옥과 연옥을 오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저승의 안내자는 베르길리우스(단테가 정신적 스승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며 BC 70년~BC19년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로마 건국의 시 ‘아이네이스’를 썼고 에피쿠로스 철학을 배우며 고대 그리스 철학을 자신의 문학에 접목 시킨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단테는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다)고 천국의 안내자는 베아트리체(단테 나이 10세에 9세였던 베아트리체를 본 후 첫 눈에 반하게 된다. 결혼으로 이어질 순 없었지만 만남은 우연으로 계속되었고 단테는 그녀를 위한 사랑의 시를 끊임없이 쓴다. 17세의 젊은 나이로 베아트리체가 삶을 마감하자 그녀를 위해 썼던 사랑의 시를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으로 묶어 낸다) 의 안내로 천국에 이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신곡이 위대한 이유는 인류에게 천국과 지옥을 가늠할 수 있는 행운을 주기 때문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경우 신곡은 종교적 신앙에 기대어 있지만 다종다양한 인간들의 삶과 생애를 조명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되묻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다. 전쟁과 역병으로 인간의 존재 가치가 땅에 떨어진 시기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위대한 질문에 천착하며 현실이 아닌 죽음 이후의 삶을 쫓아가며 지금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반추하기’를 시도한 인류의 첫 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신곡은 모든 문학의 절정’이라 말했다. 철학자 강유원은 죽기 직전 읽고 싶은 책으로 신곡을 꼽으며 말한다. “죽을 날짜를 받아두었다고 해보자. 뭘 읽어서 지식을 쌓는 것도 무의미한 지경이다. 무심의 이 시기에 딱 한 권 잡으라면 나는 단테의 ‘신곡’을 쥐겠다. 소설은 스토리를 따라가야 하니 처음부터 읽어야 하고 시집은 너무 얇아 금방 뒷장에 다다라 다른 걸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제법 두툼하고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무방하며 유장한 통찰까지 담긴 책을 잡겠다는 의도다.”
단테의 신곡에 담긴 위대함은 또 있다. 단테는 ‘이탈리아어를 고전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한 최초의 인물’이다. 이른 바 천 년을, 아니 그 이전의 로마제국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을 지배해온 언어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우리는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을 오로지 단테가 해냈다. 한 민족의 언어는 그것을 자각적으로 사용하여 사랑의 언어, 역사의 언어, 종교의 언어, 철학의 언어, 이 모든 것을 담은 서사시를 창조한 시인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대자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단테는 새들의 짹짹거림에 지나지 않던 소리를 신곡을 통해 언어로 재창조 해낸 것이다. 그래서 르네상스는 단테에 의해 시작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람들은 단테를 가리켜 ‘최후의 중세인 최초의 근대인’이라 한다.
신곡의 문장들은 아름답다. 수사 가득한 문장이지만 작가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하다. 그 첫 문장도 유명해서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로 시작하는 이 문장을 수많은 작가들이 인용했다. 문학비평가 ‘김현’의 책은 제목까지 아예 ‘반 고비 나그네길’이다. 아름다운 문장 중에 신곡의 천국편에 나를 사로잡은 문장이 있으니 ‘마르시아스’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다. 마르시아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인물이다. 그는 피리의 대가인데 인간 세상에선 더 이상 겨룰 자를 찾지 못하자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 도전한다. 그 결과는 참담하여 신에 도전하여 패배한 불경의 죄로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껍질이 벗겨지는 벌을 받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엽기적 형벌을 받는 마르시아스의 얼굴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테는 신곡 속에서 이 때의 장면을 이렇게 노래하며 부러워했다.

“아폴론이여,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마르시아스를
그 사지의 덮개 속에서 벗겨냈을 때처럼
그대의 영감을 내게 불어 넣어 주소서”

신적 영역에 다다를 수 없지만 신과 겨루어 본 경험은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통쾌함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하는 자유를 준다. 그토록 바랐던 헬리오스의 태양마차를 단 한번 몰고 난 뒤 죽은 파에톤처럼, 신적 영감을 받으며 쓰는 동안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작가처럼, 오르는 건 고통이지만 히말라야를 오르는 동안 자유를 느끼는 등반가처럼, 단 한 순간 자유로워지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시도를 나는 좋아한다.
마침내 모든 현실에 승리하고 자유의 맛을 알게 되는 그 ‘영감’을 나는 신곡에서 읽었다.

장재용 | 작가, 산악인, 꿈꾸는 월급쟁이|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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