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December 14,Saturday

디오게네스 (Diogenēs)

베트남 도심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토바이가 이미 인도를 점령했을뿐더러 먼지와 오물이 넘쳐나는 길을 곧 만나게 되니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런 거리에 아랑곳없이 노상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가족을 본 건 1년 전의 일이다. 두, 세 살로 보이는 아이가 엄마 곁에 늘 붙어있다. 온종일 뛰어노느라 새까매진 큰아이의 발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까맸던 것 같다. 아이들의 아빠는 본 적이 없다. 늘 그곳에 같은 시간, 같은 장면처럼 가로수 나무 밑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그들은 있었다. 먹을 것을 어디서 구해오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구걸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건 지난주부터다. 그들이 있을 땐 애써 모른 체하고 지나치기 바빴지만 그들 가족이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면서부터 그들을 걱정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그런 걱정들도 잠시,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잊히는 것도 금세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거리의 그 가족은 항상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은 늘 웃었고 엄마는 한가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걱정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혀를 차거나 수군거리며 지나쳤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가로수 밑둥에 오줌을 쌌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마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것처럼 더러운 길의 삶에 의연한 것처럼 보였다. 내 보기에 그랬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그들은 고달팠을 수도 있고 자괴에 빠져 지냈을 수도 있다. 알 수는 없다. 아이들은 밝았고 엄마의 표정은 온화했으므로 스스로 만족하며 지내는 것 같았다. 대조적으로, 지나는 사람들 표정이나 그들을 보는 내 회사 동료들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해 보면 오히려 그들이 더 불행해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 가족은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상의 시선이 가소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나는 디오게네스를 떠올렸다.

기원전 5세기 중반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동시대 사람이었고 추앙받던 수많은 철학자에게 핀잔을 주고 어설픈 헛소리들이라며 호통친 사람이다. 인간도 개처럼 살아가기를 외치며 욕심 없는 삶, 지금에 만족하는 삶,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추구했다. 거리를 집 삼아 자고 먹고 마시며 섹스까지 거리에서 거침없이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철학을 일컫는 말조차 견유주의 (犬儒 : 개처럼) 다. 그의 진면목은 세계를 제패한 황제 알렉산더를 만나는 장면이다. 백미다.

그리스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를 치러 가던 중에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를 방문한다.
“내가 알렉산더 왕이다”
디오게네스는 황제의 자기소개에 주눅 들지 않고 이렇게 받아 친다.
“나는 디오게네스, 개요”
병사를 대동한 알렉산더는 곧바로 디오게네스를 위협한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은가?”
아마도 스스로를 개라며 얼굴을 치켜든 디오게네스가 못마땅했을 법도 하다. 황제의 위협에 디오게네스가 물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오, 나쁜 사람이오?”
스스로를 악한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터, 알렉산더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좋은 사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거요?”
디오게네스의 답에 한 방 먹은 알렉산더는 분위기를 반대로 가져간다. 그를 부드럽게 회유한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들어주겠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자부한 알렉산더의 물음에 디오게네스가 답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햇볕, 그것뿐이오.”
그러자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를 떠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중에서, 필자 각색)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가 부럽지 않았다. 황제는 거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가 가진 것 중에 디오게네스가 원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소유’를 바라보는 가치가 다른 것이다. 황제는 권력, 재물, 명예 모두를 가졌지만 디오게네스가 원하는 단 한 줄기 햇볕이었다. 황제는 그것을 줄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다. 디오게네스는 제국의 황제에게 사실상 ‘햇볕 가리지 말고 꺼져’라고 말했던 것이다. 디오게네스의 삶의 가치와 황제(세상)의 가치는 달랐다. 황제에게 중요한 것은 디오게네스에겐 하찮았고 디오게네스에게 소중한 건 황제에겐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디오게네스를 사모했던 니체는 말한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가치를 전도시켰던 디오게네스와 호찌민 노상에서 숙식하던 그 가족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일뿐더러 그들이 볼 땐 쓸데없는 것들일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없이 사는 거지 취급을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생각을 밀고 나가면, 세상과 그 가족 사이를 인문학적 진공상태가 관통한다면 견유주의에 이르지 않겠는가. 개들이 아무것도 없이 잘 살 수 있는 건 세상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핍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필연적으로 결핍을 양산한다. 인간은 결핍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핍을 제거했던 견유주의자, 더 이상 구걸하지 않는 거지, 디오게네스는 그래서 인간의 가장 완성된 모습인지 모른다. 더 많이 가지려 폭주(暴走)하는 우리들이 그 가족을 지나칠 때 혀를 찰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했어야 옳았다.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 고전은 “그리스 철학자 열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Diogenēs Lāertios, 생몰연대 미상, 3세기 전반 경 인물로 추정) 다. 저자와 일화 속 인물이 동명이인이므로 알렉산더 일화 속의 디오게네스를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리스 철학자 열전”에 따르면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10권의 저서가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저서들은 없다]

장재용
작가, 산악인, 꿈꾸는 월급쟁이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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