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December 14,Saturday

경계를 사는 사람들

요즘 한국 정치에 관한 어떤 통계라도 보면 찬성이든 반대이든 주도하는 쪽이 없다. 통계하는 사람들이 꼭 인용하는 표준편차 감안하면 반반이라는 얘기이다. 언제부터 인지 우리 사회는 이렇게 절반으로 나뉘었다. 그러다 보니 중간 자리가 없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냥 좌측과 우측이 맞닿아 있어서 좌 아니면 우이고 우 아니면 좌이다. 그래도 전에는 좌 건너 약간의 점이지대가 있었고, 우 건너 흐리흐릿한 회색지대도 있었는데 지금은 죄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러니 나 같이 여기도 저기도 아니어서 색깔이 불분명한 정치적 경계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 불안하고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서 말이라도 뻥끗 잘못하면 그런 줄 몰랐는데 하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몰려 가니 말이다. 이런 시절에는 좌, 우를 잘 살펴야 한다. 우측의 스트레이트를 피해도 좌측에서 어퍼컷이 올라올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사이공에서 오토바이와 차량을 피하며 길을 건널 때처럼 말이다. 나 같이 경계를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단한 시절이다.

원래 경계인은 심리학에서 시작된 용어이다. 쿠르트 레빈(Kurt Lewin)이라는 독일계 미국의 심리학자가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본디 독일인인데 나치즘에 반대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가 말한 경계인이란 복수의 이질적 집단에 동시에 속하거나 어떤 집단에도 명확하게 속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박문각에서 펴낸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경계인이란, 오랫동안 소속됐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금방 버릴 수 없고, 새로운 집단에도 충분히 적응되지 않아서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2003년 송두율 교수 사건은 이 용어를 세간에 회자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학자였던 송두율 교수는 저서 ‘경계인의 사색’에서 자신을 ‘경계의 이 쪽에도, 저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 경계인’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 용어는 송교수 사건 이전에도 쓰인 적이 있다. 작가 최인훈씨가 1960년 발표한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을 경계인으로 묘사하면서 표현한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어딘가에 속해서 살기를 원한다. 다른 이와 어울려 사회를 이루는 것이 사람의 기본적인 속성인 것처럼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그러니 어디에도 확실하게 속해 있지 못한 경계인이란 용어는 다분히 불안하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계인들이 머무는 동네의 색깔은 회색으로 불린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회색으로 묘사된다. 회색지대, 회색인간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런 색깔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나 상태는 내 편 네 편을 이분적으로 가르는데 익숙한 한국 사람들의 조직문화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그런데 해외에 나와서 살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경향이 생기게 된다.
사이공에 사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베트남에 들어온지 이십년을 훌쩍 넘겼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소식을 수시로 접하고 있고 한 해에도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그런 그가 문득 자신의 시계가 멈춰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시간은 한국을 떠나왔던 그 때, 그리고 베트남에 도착했던 이십년 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은 그가 한국을 떠나온 이후로 고국의 변화에도 속하지 못했고 지금 부단히 일어나고 있는 베트남의 변화에도 속하지 못했음을 알았던 순간에 왔다. 돌아보니 그의 정체성은 한국의 시간에도, 베트남의 변화에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멈춰 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그 사람 하나이기만 할까.
해외에 나와서 사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경계인이 된다. 베트남에 살지만 베트남인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 한국인인지만 교민 또는 재외국인이라는 이름으로 본국과 구분된다. 경계인은 경계로 선 양측의 영향에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한국으로 시집간 베트남 처자가 어찌어찌 잘못되었다는 기사가 나올 때, 특히나 그것이 사망사건으로 번졌을 때,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이 그 이유이다. 우리가 사는 곳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계를 산다는 것은 이처럼 고단하다.
해외에서 얼마를 살았건 사람들은 종국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아무리 베트남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말년에는 고국으로 들어가리라는 꿈을 잃지 않는다. 수구초심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눕는다는데 사람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도 경계인으로서의 삶이 고단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파견된 주재원들도 일종의 경계인이다. 어떤 대기업의 주재원들은 갖은 혜택과 지원을 받고 있어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이 다했을 때 이미 흘러간 시간만큼 한국의 본사와 멀어져 있음을 실감해야 한다. 그래서 장기 주재하다 본사 귀사 명령을 받았을 때 퇴직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은 스스로가 경계인이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쉬운 결심이 아니다.

베트남에서 산 햇수가 늘어가니 내게도 정체성의 소속을 돌아보는 계기가 찾아왔다. 그럴 때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의미 있는 결정인지, 아니면 지금껏 개척해 놓은 이 곳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옳은 것이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타고나길 우유부단한 나는 한 해를 지내도록 결정을 못하고 있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경계 위에 살면 어떨까. 경계에 서면 양쪽을 볼 수도 있겠지만 또 어느 것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니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은 경계인들이 가져야 할 귀한 덕목이다. 그리고 때때로 본의 아니게 양 쪽으로부터 비난 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그것을 잘 견디려면 맷집도 있어야 한다. 내가 여전히 고민 속에 있는 것은 아직 그런 내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로와 긴장감을 느끼며 살아야 할 수 밖에.
바라기로는 나와 같이 이 땅에서 경계를 사는 사람들로써 비록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어떤 점에서 두 세계에 모두 속해 있는 이로써의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속하지 않는 이는 낯설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양측에 둔 두 세계를 낯설게 여기고 그 차이 안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아마 나의,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잘 모르는 미래의, 근거 없는 기대를 품어 본다. /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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