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January 19,Sunday

사랑, 일 그리고 놀이

올해가 경자년(庚子年) 쥐띠해라 하네요. 그것도 子가 의미하는 색이 흰색이라 흰 쥐띠 해라고 합니다. 경자년에 일어난 사건은 가장 가까운 60년 전에 4.19 사건이 있었군요. 그것으로 인해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다음 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계기를 만들었죠.
암튼 이렇게 세월은 꾸준히 쉬지도 않고 갑니다. 하긴 세월만 가겠습니까? 우리 인간들도 꾸준히 달려갑니다. 신이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에게 유일하게 약속한 부조리한 진실, 죽음을 향해 말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새해가 될 때마다 느끼는 것이긴 한데 이런 시간의 매듭을 만든 것은 진짜 신의 한수인 듯합니다. 만약 이런 매듭이 없이 그저 계속해서 연결된 시간속에 살고 있다면, 아마 인간은 정신적 피로감으로 신이 약속한 그 죽음을 스스로 수행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년을 단위로 맺어지는 시간의 매듭은 우리에게 기대와 설렘을 안겨줍니다. 지난 해의 시간, 그것이 기쁨의 시간이든, 슬픔의 시간이든 간에 일단 지워질 수 없는 생의 추억으로 봉합하고 다시 새롭게 뜨는 해와 함께 새로운 시간의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이렇게 시간의 매듭, 세월의 굴곡점이 생겨나는 날들이 다가오면, 내 삶은 무엇인가, 나는 내 삶의 어디쯤 가고 있는가, 이 삶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 살만한 가치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등 대학 시절, 못하는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어줍잖게 떠들어대던, 가볍지 않은 철학적 문제가 슬며시 떠오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시인 서정주 선생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고 하지만, 저는 고백하건데 나의 어린시절을 응원한 유일한 친구는 컴플렉스였습니다. 어린시절 사고로 초등학교 입학을 반 학년 이상 생략한 채로 들어간 덕분에 모든 게 지진아로 시작된 제 어린인생에 그나마 함께 있어 준 것은 컴플렉스였죠. 그 친구 아직도 있습니다. 어린시절 친구는 쉽게 잊혀지지 않네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빠진 것은 공부가 아니라 놀이었죠. 놀 때만큼은 지진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지겹게 붙어다니던 친구도 떨쳐낼 수 있었으니까요. 온 동네 구슬의 반은 내 주머니에 있었고, 방 한구석에 네모지게 접은딱지는 산을 만들 만 했었죠. 들과 산으로 하루도 성할 날이 없도록 나다니면 사고를 쳐대니 부모님의 눈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넷째 아들녀석 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렇게 온 사방을 엄청 많이 돌아다닌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세상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일어난 이런 저런 사고로 남들보다 학교는 늦었지만, 독립은 빨리해서 늦게 다닌 시간을 보상하고 오히려 동년배보다 이른 나이에 자기 사업을 시작하여 시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공부대신 놀이에 몰입한 것이 삶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 셈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제가 어린 시절 남보다 뒤지지 않고 유일하게 잘 할 수 있었던 그 놀이라는 요소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놀이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3대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 일, 그리고 놀이입니다.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 생산적이고 유쾌한 일, 그리고 기쁨을 가져다 주는 다양한 취미와 오락으로 대변되는 놀이가 있다면 우리는 삶이 주는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은 제가 한 소리는 아니고 [마틴 셀리그만]이라는 임상심리학자가 한 얘기입니다. 그 말에 동의하며 제 스스로 풀이를 해 보고자 합니다.
유아기 시절, 우리의 삶을 차지하는 요소는 사랑 한 가지입니다. 부모님의 사랑 하나면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젖을 놓고 이유식을 할 때가 되면 또 다른 요소, 놀이가 추가됩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은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살며 자신의 호기심을 채워줄 놀이만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시절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다 성년이 되어 자신의 가족이 생기기 시작하며 이제 일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세가지 요소가 삶을 균형있게 채워주면 가장 행복한 시기를 맞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이라는 요소, 이 요소에 대한 가치관이 사람을 분류하기 시작합니다. 일에 대한 가치관이 사회의 영역에서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한국인에게 일이라는 요소는 그 무게가 너무나 막중하여 사랑도 놀이도 삼켜버릴 만한 무게로 다가섭니다. 그 덕분에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경제적 궁핍에 빠지지 않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잘 살아갑니다.
한국인들의 일에 대한 가치는 놀이마저 일로 승화시킵니다. 그저 단순한 오락이고 놀이였던 컴퓨터 게임을 최고의 IT 산업의 하나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입니다. 이런 한국인의 일에 대한 집착은 요즘같은 4차산업의 시대에서는 2차 제조산업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의 약점을 지우고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세상에서 누구보다 빼어난 활약상을 보여주게 합니다.

그러면 왜 유난히 한국인은 골프를 잘하기도 하고 또 집착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도 보입니다. 한국의 여성 프로들이 공을 잘 치는 것은 골프를 여성에게 쉽게 기회가 돌아오지않는 귀한 일로 보기 때문이고, 아마추어들이 골프에 몰입하는 것은 어쩌면 일에 편향된 무게중심을 바로 잡고자 놀이에 무게를 옮겨가는 무의식의 보상 행위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의 행복한 삶이란 앞에서 말한 삶의 세가지 요소, 사랑, 일 그리고 놀이가 균형을 이룬 삶 입니다. 저같이 어려서부터 그저 놀이에만 빠진 친구들은 결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보기는 힘들죠. 그런 아이에게는 공부라는, 학생에게 주어진 일이 제외되고 그에 따라 부모님이나 주변의 사랑을 받을 기회를 스스로 날려보냈으니 결코 행복할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이 세가지 요소의 균형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소의 균형을 찾는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세가지 요소는 항상 출렁거립니다. 언제나 같은 무게로 다가와 균형을 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피가 끓는 젊은 시절에는 사랑이 최우선 과제로 등장 할 것이고,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면 일이 선두에 나서게 되겠죠. 그리고 이제 은퇴를 하면 일이라는 요소가 사라지며 억지 미소만이 남습니다.
젊은 시간에 무너진 균형은 바로 잡을 기회가 있지만, 나이가 들어 은퇴로 무너진 균형은 바로 잡을 기회가 사라집니다. 그때가 되면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은퇴로 일이 빠진 자리에 뭔가를 채워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놀이고, 그 놀이에 적합한 운동 중에 하나가 바로 골프라는 것입니다. 골프로 일이 빠진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이미 재정적인 여유와 함께 필드에서 시간을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얘기가 되니 말입니다.
골프가 나이 든 시니어에게 좋은 점은 백만가지도 넘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장점을 하나 꼽자면, 게임을 하는 상대와 대화를 나눈다는 점입니다. 요즘 나이든 늙은이와 누가 4-5 시간을 대화를 나누려고 하나요? 그것도 게임을 하면서 말입니다. 어느 운동도 그렇게 못합니다. 그러나 골프는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골프는 게임을 하는 상대와 같은 목표를 갖고 갑니다. 필드에서 정한 목표를 상대와 함께 공략하는 것이 골프라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골프에서는 게임의 상대를 적이라 하지 않고 동반자라고 부릅니다.
이만하면 골프는, 나름대로 열심히 가꾸고 만든 나의 삶에 초대할만한 품위를 갖춘 놀이가 아닌가요?

지난 연말 호찌민 시니어 골프 연말 대회가 열렸습니다. 태광산업에서 건설한 정산 골프장에서 열린 시니어들의 골프대회가 성황리에 열려 수많은 놀이꾼들이 즐겁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대회를 주관하느라 고생하신 류재목 회장과 특히 사무국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주신 심일용 사무국장에서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베트남의 한인 골퍼 여러분, 늘 평안하시고 올해도 더욱 힘찬 드라이버로 한국 놀이꾼의 진수를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에녹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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