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August 12,Wednesday

골프장에서의 첫 만남

나이들어 하는 골프에서는 정말 동반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새삼 느낍니다. 최근 우연히 낯모르는 젊은 친구가 함께 팀이 되어 라운드를 돌았는데, 그날은 아주 길고 긴 날이 된 기억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더 이상 젊음이라는 단어가 적용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긴 세월을 보낸 인간이 골프를 친다는 것은, 어쩌면 골프보다 친구를 만나는 것에 무게가 더 실릴 수도 있습니다.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동반자와 담소를 나누며 자연 속을 거닐다 보면, 세상 시름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처음보는 동반자와 라운드를 하게 되는 날에는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생깁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냥 찻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골프장에서 4-5시간을 의무적으로 함께 해야 하는 만남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서로 이해할 만한 원만한 성향의 골퍼라면 새로운 만남을 기뻐 할 일이지만, 다행스럽지 않게 골프를 대하는 성향도 다르고 터놓고 대화를 나눌 정도의 동년배가 아니라면 그날의 라운드는 18홀이 36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골프가 어떤 운동인가요?
한번의 라운드로 상대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알 수 있는 운동이 아니던가요?
어떤 재벌의 총수는 새로운 임원을 선택 할 때는 함께 골프 라운드를 한 후에 결정한다고 할 정도로, 사람을 파악하는데 골프 라운드를 필적할 만한 방법도 없습니다.
이렇게 민낯으로 해야 하는 운동을 의도하지 않은, 낯모르는 사람과 함께 하며, 그 사람의 면모를 알게 되는 것은 썩 내키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차나 한 잔하며 만나면, 적당히 편한 미소를 나누는 관계가 될 일인데, 예기치 못한 골프 라운드로 시작하여 원치않은 정보까지 다 알아버리고, 또 자신의 성향도 상대에게 다 드러내 보이고 마는 상황은 결코 긍정적인 관계 맺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골프에서는 만나고 싶은 동반자와 만나지 않는 것이 편할 수 있는 동반자의 유형이 존재합니다. 그러고 보면 여간 까다로운 운동이 아닙니다. 뭐, 말 하는 필자가 더 까다로울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기피하고싶은 골퍼
인터넷을 뒤져보면, 기피하고 싶은 골퍼라는 여론 조사 자료를 통해 흔히 볼 수 있는 데,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지역에 따라 그 유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골퍼에게는, 룰을 어기는 골퍼가 일 순위 기피 인물인 반면, 외국에 사는 골퍼에게는, 슬로우 플레이어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각자 기피하는 골퍼의 성향이 자신의 환경이나 성향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골프에 대한 관념, 가치관도 한국과 이곳 베트남은 많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의 골프는 그 가치가 지나치게 높습니다. 그 예로 골프 약속은 마누라가 죽어도 지킨다는 정도의 말이 회자 될 정도로 골프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일처럼 무겁게 취급합니다. 그런 곳에서 골프를 배웠는데, 이곳에 오니 사정이 다릅니다. 골프약속이 좀 늦어도 좋고, 급한 일이 생겨 안 나타나도 양해가 될 정도로 가볍게 취급됩니다. 좀 편한 숨을 쉴 만하여 좋았습니다.
이런 느슨한 골프 환경에서 기피 골퍼의 기준 역시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골프룰을 가볍게 생각하는 일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기피골퍼로까지 비화될 정도는 아닌 모양입니다. 하긴 골프 약속도 느슨한데 골프룰을 타이트하게 적용하는 것도 형평에 맞지 않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그저 남들에게 피해만 안 주면 그만인데, 가장 피해를 주는 골퍼가 바로 슬로우 플레이어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슬로우 플레이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늦장 골퍼가 가장 문제의 기피 인물입니다. 스스로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각각의 유형에 따라 기피골퍼도 다르고, 함께 하고 싶은 골퍼 역시 다릅니다.
필자의 경우, 라운드를 함께 하고 싶은 골퍼로 어떤 특정한 골퍼의 유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유사한 골프관에 서로 이해가 가능할 정도의 차이와 친분이 있는 골퍼라는 여유로운 기준을 갖고 동반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피하고 싶은 골퍼의 유형을 굳이 들자면, 사전 정보가 없는 낯선 골퍼, 그리고 캐디가 싫어하는 골퍼를 꼽습니다.

사전 정보가 없는 골퍼는 라운드 내내 신경이 쓰여서 부담스럽고, 일반적으로 캐디가 싫어하는 골퍼는 정도 이상의 인내력이 요구되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캐디는 약자입니다. 하지만 필드에서 유일한 내 편이기도 합니다. 약자인 자기편이 기피하고픈 인물이라면 아마도 약자를 보호하는 인품을 지니지는 않은 인물일 것 입니다.

구체적으로, 모든 캐디가 기피하는 골퍼의 유형을 보면, 누군들 좋아할 리 없는 분노 조절장애자도 있지만, 이구동성으로 꼽는 일 순위는 자신의 실수를 캐디에게 전가하는 골퍼입니다. 샷 도중 움직였다, 라인을 잘못 보았다, 해저드를 왜 알려주지 않았나 등등 모든 샷 미스에 대하여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타입이 골퍼를 만나면, 캐디 뿐만아니라 모든 동반자가 라운드 내내 불안한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혹시 내가 뭐 잘못하지는 않았나 싶어 불안합니다. 그리고 그런 불안은 근육의 경직을 부릅니다. 결코 좋은 게임이 나오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런 골퍼를 초면에 만난다면, 그날은 유명한 영화제목처럼 The longest day가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샷은 자신의 책임이어야 합니다. 설사 누군가 샷을 방해 했다해도 그것은 피하고 극복하는 것 역시 자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골프장에서의 습관이나 버릇이 사회에 나서면 돌연 사라진다고 기대하기 어렵다면, 이것은 중대한 문제가 됩니다. 사회에서도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번 정도 스스로를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필드에서의 내 모습이 캐디나 동반자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하며 말입니다.

이렇게, 골프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인성마저 알게되는 무서운 운동입니다. 그래서 동반자 선정이 더욱 중요한 운동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위험한 취미를 즐기고 있는 셈입니다. ^^ 글. 에녹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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