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백년의 고독

서가 때론 독(毒)이 될 때가 있다. 습관적으로 지나치게 읽다 보면 세상을 너무 관념적으로 바라보게 되어 자칫 현실감이 뒤떨어지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책을 좀처럼 읽지 않는 경우인데, 어쩌다 삶이 공허해서 또는 스스로 무기력하다고 느껴질 때 우연히 펼쳐 든 책 한 권이 생활의 크나큰자극이 될 때가 있다. 만일 여러분이 후자에 해당한다면 < 백년의 고독>을 한 번 읽어보시라. 스페인어권에서 < 돈키호테>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렸고, 198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이유 말고라도 권태로운 우리 삶 속에 야자수처럼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존의 서구문학들, 유럽 및 미국 문학을 즐겨 읽었더라면 저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콜롬비아 출신 작가가 남아메리카를 배경으로 쓴 이 그로테스크한 줄거리들은 소설에 대한 당신의 고정관념에 도끼질을 해 댈 것이다.

줄거리는 7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통해 인간사회의 축소판을 그려놓았다.배경이 되는 < 마꼰도>는 원래 사촌지간인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가 근친상간으로 인해 돼지 꼬리가 달린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과 살인 때문에 고향을 떠나 늪지대를 새롭게 개척한 원시적 마을이다.
창세기적 지상낙원 같은 이곳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시들과 외부인들을 끊임없이 접촉함으로써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창녀가 나타나고, 정부 관리가 등장하고, 바나나 생산업체가 밀려오고, 철도가 부설되고, 마을사람들은 이념전쟁에 휩쓸리고, 파업 사태로 대학살이 진행된다. 4년간의 폭우와 10년의 가뭄이 이어진 뒤 그 마을은 다시 폐허가 되고, 후손들의 반복되는 근친상간으로 부엔디아 가문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가 23년 동안 생각하고 18개월에 걸쳐 집필한 이 작품은 1967년 아르헨티나에서 최초 출판되었을 때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들면서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소설이란 인간의 상상력을 담아내는 총체적 장르임을 여실히 보여 준 것이다.

체코 출신 밀란 쿤데라는 “책꽂이에 마르케스의 < 백년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당시 소설의 종말을 거론하던 서구 작가들의 주장에 반기를 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을 필자또한 초반에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현기증이 날 정도의 빠른 스토리 진행과 익숙하지 않은 라틴계 사람들 이름이 매우 혼돈스러워 책 앞면에 그려놓은 부엔디아 가문의 가계도를 수십 번 펼쳐 보는 수고를 거듭했다. 하지만 근 한달 동안 나는 저 미지의 남미세계를 탐험할 수 있었고,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세상의 끝을 느껴 보곤 했다. 일부에선 서구 자본주의에 수탈 대상이 된 남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하지만, 본질은 백 년 동안 한 가문의 구성원들이 겪는 끊임없는 고독 그리고 성(性)을 통해 고독을 해소함과 동시에 고독을 더욱 심화시키는 그칠 줄 모르는 핏줄의 끈질김에 있다.

인류역사의 죄악은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한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멈추고 그치는 일일 것이다. 그치지 못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경우가 적잖고 멈추지 못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선 멈추고 그치는데 대한 초조함과 불안감을 떨쳐야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네 삶은 고독 그 자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삶의 여정이란 함께 가든 혼자 가든 결국에는 자아를 찾아가는 고독한 길이기 때문이다.

작성자 : 박동중 – 영남대 영문과 졸업/조흥은행 안국동 근무, 現 창작활동 및 백산비나 근무중 (frog09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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