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9,Friday

코로나 이후

요즘은 무슨 글을 쓰나 서두가 전부 코로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긴 세상이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에 발목이 잡혀 꼼짝을 못하는데 글을 쓰는 머리라고 따로 놀겠습니까?

아무튼, 이런 환난을 겪으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동안 배우고 경험했던 세상은 사라지고 또 다른 세상이 등장합니다. 앞으로 어찌 세상이 변할지 짐작이 안가니 그동안 헛살았나 싶어 당황을 넘어 허무합니다. 뭔가 모를 세상에 대한 반감에 명치 끝이 뜨거워집니다.

4월 첫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 노모가 백수( 99세) 를 맞았는데 이번 사태로 베트남에서 몸을 사리느라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노모를 모시고 있는 막내 동생 집에서 그 집 식구들만 모여 간소하게 모친의 백수를 치르는 것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밀려옵니다. 한국의 아들딸이나 가족들마저 참석하지 못한 모친의 백수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평생의 한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간간히 이어지는 비행기를 잡아 그 밤, 한국행에 몸을 실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내린 인천공항, 평소에 그렇게 붐비던 공항이 서늘합니다. 새로 생긴 통로에 마스크를 쓴 엄중한 모습의 봉사요원들이 애써 친절함을 유지하며 들어오는 입국자들을 일일이 안내합니다. 체열을 재고 건강검진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14일 간 자가 격리 통고서를 받아 들고서야 공항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무려 4개월 만에 돌아온 고국의 환영이 간단치 않습니다.
한국은 아직 춥네요. 오랜 만에 맛보는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여름나라에 묻혀 지내던 늘어진 심신을 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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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계절은 봄을 치닫는데도 아직 몽니를 부리듯 떠나지 않은 겨울 기운으로 덮인 인천대교, 그 위를 무표정한 승용차들이 지친 듯, 체념한 듯, 그저 무심하게 앞 범퍼를 따라갑니다.

아파트 단지 내 벚꽃은 여전히 환한 미소를 보여주지만 그 기운이 예전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은 앞길 몰라 헤매는 인간의 심사 탓인가 봅니다.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는 철들지 못한 심사를 아랑곳 않은 채, 눈 같은 분홍색 꽃잎을 뿌려대며 꽃 길을 만들어줍니다. 봄 처녀의 치마가 저리도 곱던 연 분홍색이던가요. 알뜰한 사랑의 맹세로 보내야 할 봄날이 바이러스에 맥없이 넘어집니다. 새 생명을 약속하는 봄기운과 죽음의 그늘을 드리운 바이러스, 이게 어울리는 조합입니까?

외출이 금지된 탓에 노모를 방문하지도 못하고 화상통화만으로 일차 인사를 나누고 보름 후 다시 찾아뵙기를 약속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격리생활, 쉴새없이 문자가 날라 옵니다. 모두 이 근처 지역에 발견된 새로운 확진자의 정보와 격리 기간 동안 지켜야 할 행동양식에 대한 안내 겸 은근한 경고가 담긴 문자들입니다. 다음 날 날아온 문자에는 입국 후, 집 근처 보건소에서 받았던 검진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는 통고입니다. 처음으로 긍정적인 소식을 받은 셈입니다. 덕분에 가슴 깊은 곳의 불덩이는 그제야 숨 고르기에 들어갑니다.

팬데믹, pandemic, 한자로는 범유행( 汎流行)이라고 씁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진 전염병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를 배웠습니다. 이 바이러스로 인한 지구촌의 변화는 지금으로는 정확한 예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날 것이라고 합니다. 하긴, 그 엄청나다는 단어마저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만큼의 상황도 아닙니다. 예전에 엄청나다는 느낌이 앞으로는 그저 흔한 일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단어가 의미하는 무게마저 달라질 정도로 변화될 세상은 이제 우리가 예단하고 준비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겠죠. 그래서 그냥 지켜보려합니다.

총선 결과가 또 뺨을 때려 댑니다.
세상이 흐르는 대로 살지 말고 내가 의도한 대로 살기를 원했는데, 만만치 않은 세상은 낡은 인간의 몸부림에 관심조차 주지 않습니다. 세상 일이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런 일을 만나는 것이 일생에 몇 번이나 있겠습니까?
대부분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의도와 달리 전개되는 세상사로 인해 겪는 실패와 그에 따른 실망.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 작은 희망을 찾아 쌓아가는 지루한 일상이 바로 우리의 삶의 모습이지요.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의 주인공의 한 분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도 사업은 아마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었지만 자식농사와 골프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며 골프야말로 그런 우리의 삶의 민낯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운동인가 봅니다. 골프는 자신이 치면서 결과를 모른다는 점에서, 자신이 살면서 그 결과를 모르는 우리의 인생과 참 많은 점에서 유사합니다. 그렇게 필드에서, 인생을 꾸리듯이 골프를 사랑하는 골퍼들이 베트남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베트남의 사회적 거리 유지가 연장되어 코스를 못 나가는 동료들의 푸념으로 채팅방이 허무로 채워집니다. 더구나 이제는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밀려들 것이 불 보듯이 뻔하니, 그 흐름을 초월하지 못한 많은 교민들이 하나 둘 베트남에서 자취를 감추겠지요. 따라서 가뜩이나 흔치 않던 골프 동반자가 더욱 희귀해질 것입니다.

뭐 좋은 점도 있겠죠, 골퍼의 절대 수요가 줄어드는 대신, 골프 코스는 한가해 진다는 것. 그러나, 아무리 한가하고 멋진 코스도 맘이 통하는 동반자가 없으면 사막에서의 라운딩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멋진 동반자만 있다면 나쁜 코스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가 봅니다.
이제, 베트남에서는 서로 웃음을 나누고, 세상사를 공유하며 코스에서 함께 하루를 보낼 좋은 동반자를 구한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 엄중한 상황에 너무 한가한 소리가 될 수도 있지만, 베트남에 남아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사정도 그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요.

최근 코로나 사태에서 보인 베트남의 일방적 대처에 실망하는 분위기에 더불어 친구들마저 하나 둘 사라진다면 베트남 생활이 더 건조해질 수 있겠다는 우려도 생겨납니다.
이제 이렇게, 바로 코앞에 불거질 상황도 예측하기 어려운 난세에 접어들었으니 그저 현재에 충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만남으로 기대되는 상업적 득실 여부는 그만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 있는 이웃, 친구들과 서로의 정을 나누며 지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용한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선가 구르던 문장 하나가 생각납니다.
“배려를 잊으면 사랑이 사라지고, 나눔을 멈추면 우정이 끝난다.” 한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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