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July 13,Monday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

일연은 고려 말기의 스님이다. 그가 태어난 해는 몽골 대제국이 건설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천자의 나라, 중국 송나라는 몽골을 오랑캐라 부르면 멸시했으나 결국 원나라에 복속된다. ‘천자의 나라’가 ‘오랑캐’에게 복속되는 장면을 목도하던 때 일연은 살고 있었다. 이내 몽골은 한반도로 내려와 국가를 위태롭게 했으니 그야말로 천지가 뒤바뀌고 바다가 엎어지는 시대적 전환기였다. 안으로는 고려 최씨 무인 정권이 들어섰고 불교가 국교로 인정되던 때다. 유교적 고리타분함으로 쓰러져간 중국을 더 이상 ‘천자의 나라’로 우러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대등한 힘의 외교가 동아시아에 펼쳐지던 때였다. 이러한 때 일연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내용인 즉, 단군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땅의 처음과 왕의 역사가 아닌 민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말 그대로 遺事였다.

역사가 대중들의 이야기가 될 때 문학이 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이야기 책이다. 그래서 저자 일연스님은 자신의 책을 ‘역사(史)’라 부르지 않고, ‘사건(事)’이라 불렀다. 이 수 많은 사건들 중에서 나는 욱면이라는 부잣집 계집종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욱면은 귀진이라는 관리의 집 여종인데,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매일 지성으로 염불을 외었다. 주인이 보니 종의 주제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라 여겨 매번 곡식 두 섬을 주고 저녁까지 다 찧으라고 했다. 욱면은 초저녁까지 열심히 다 찧어 놓은 후, 밤이 제법 깊은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절에 가서 염불을 외웠다.

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가락을 뚫어 노끈으로 말뚝에 매어 졸음에 몸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정성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욱면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예불하라’는 하늘의 외침이 들렸다. 승려들이 놀라 그녀를 법당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욱면이 불당의 대들보를 뚫고 솟구쳐 올라 날아가더니 부처의 몸으로 변했다. 나와는 아무 관련 없는 미천한 한 여종의 황당한 성불기(成佛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너는 한 번이라도 욱면처럼 하루를 지성으로 살아 보았느냐?” 그러자 이 황당한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욱면의 정성을 갖지 않으면 삶은 도약하지 않는다.

계집종 욱면이 종이 되어 매일 주인이 시키는 잡일이나 하고, 쌀 두 섬을 빻아야 하는 고된 일과에 묻혀버렸다면 그녀의 일생은 불만과 탄식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위대한 전환이 다가왔다. 문득 불도를 닦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밤에 미타사 절 마당에서 염불을 외울 때와 마찬가지로 낮에 일을 할 때도 저녁에 나락을 빻을 때도 그녀는 수도자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구도의 마음으로 일과 삶에 접근할 수 있다.

중세 수도원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계율이 있다. 모든 일을 할 때, 기도 할 때와 같이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뜰의 낙엽 쓸 때도 빵을 만들 때도 눈 내리는 겨울 내내 먹을 소시지를 만들 때나 포도주를 만들 때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것이 곧 수도의 대상이 되게 하라는 계율은 동서양, 종교를 떠나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편인 것이다.

또 하나, 삼국유사의 ‘신주’(神呪)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뼈는 제 굴로 들어와 새끼 다섯을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하다 깊이 탄식하였다. 문득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이름을 혜통이라 하였다”

혜통은 후에 밀교의 승려가 되었다. 지금은 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만 그 때는 주로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혜통도 중국으로 스승을 찾아 유학을 떠났는데, 그때 중국의 최고 고수는 무외삼장이라는 인물이었다. 사람이 거만했는지 ‘오랑캐 땅에 무슨 인물이 있겠느냐’ 며 혜통을 제자로 거두지 않았다. 물러나지 않고 3년을 더 수련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분기가 탱천한 혜통이 뜨락에 버티고 서서 머리 위에 뜨거운 화로를 이었다. 잠깐 사이에 이마가 터지는 소리가 벼락같이 나자 무외삼장이 와서 치료하고 놀라 제자로 거두어 아꼈다.
이마에 난 상처가 마치 ‘왕’(王)자 무늬 같다 하여 ‘왕화상’이라고 불렸다. 도력이 커져 가히 용을 쫓아 낼 신통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는 당나라 황실의 공주가 못된 이무기의 주술에 걸려 병이 나자 아무도 고치지 못하는 것을 혜통이 도술로 풀어 주었다. 앙심을 품은 이무기는 용으로 변하여 혜통의 조국 신라로 날아가 보복성 못된 짓을 일삼게 된다. 혜통은 신라로 급히 돌아와 이 용을 퇴치하고 타일러 개과천선을 시키게 된다.

불교의 나라 신라와 고려조에 승려는 대중의 영웅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시시하게 살다 어느 날 크게 깨달음을 얻고, 천신만고의 어려움을 겪어 영웅으로 성장하고, 이윽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인물이 되어 찬란하게 세속으로 귀환하는 모티프와 구성은 신화와 전설의 가장 보편적인 얼개다. 영웅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자아에 대한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가장 훌륭한 자기계발의 고전 틀인 것이다.

덧붙여, 이 책의 글쓴이 고운기는 자신의 차별성을 삼국유사에서 찾아내었다. 국문학자였던 그는 어느 날 결심했다. ‘나의 학문은 이 책에서 시작하여 이 책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20년이 넘도록 이 책 하나를 들이 팠고, 그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하여 삼국유사라는 흥미진진한 지적 모험의 길로 우리를 안내할 유능한 안내자가 되었다. 그가 없었다면 대중이 700년의 시간적 간격을 뛰어 넘어 삼국유사 속의 우리 이야기들과 공감하는 기쁨을 얻기는 지극히 난해했을 테다. 이야기의 시대 우리의 이야기의 보고인 삼국유사를 즐겨 보자.
(참고한 책: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지음, 고운기 글, 양진 사진,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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