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August 5,Wednesday

한국의 장마철을 보내기

한국은 지금 긴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지방은 띄엄띄엄 비가 오다 가다를 반복하지만 부산지역과 강원 쪽은 강우로 시달리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중국과 일본은 엄청난 폭우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예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러나 남의 큰 아픔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신경 쓰이듯이 집안을 축축하게 만드는 장마철 습기에 은근한 짜증이 묻어 납니다. 옷장 근처에 제습기를 갖다 두면 두어 시간 만에 5리터 가까운 용기에 물이 가득 채워집니다. 꽤 무겁습니다. 집사람은 신기하다는 듯이 저를 불러다 물을 버려달라고 하며 ‘이렇게 공기 중에 물을 모을 수 있다면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이 제습기를 공급하면 그곳의 물 걱정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혼잣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다 ‘아!, 비가 안 오면 공기 중에 습기도 없어 물이 생기지 않겠네’ 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 아쉬운 한숨을 내 쉽니다. 여전히 축축한 비는 나리고 며칠 만에 만나는 맑은 하늘이 반가워지는 장마철의 한국입니다.

베트남의 우기에도 집안의 습기가 많았지만 별 신경도 쓰지 않았고, 맑은 하늘이 그리워지지도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같은 현상을 바라보지만 그것을 대하는 입장이 왜 다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소유의 문제인 듯합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나의 일인데 반해 베트남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남의 일에 내가 끼어 들어 있는 것 이라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별다른 애착이 생기지 않고 뭔가 잘못되어도 걱정이 덜하게 되는가 봅니다. 인간의 가벼운 심사가 드러납니다. 어쩌면 베트남에서 사는 것이 정신 건강상 유익하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내 것이 아닌 곳에 사니 그만큼 염려가 덜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한국에 온 후로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나라 걱정, 가족들 걱정, 친구나 지인들의 일이나 건강에 대한 우려 등 온통 함께 걱정하고 염려하고 기도해줄 일이 산처럼 쌓입니다. 더구나 출근도 안하고 매일 집에서 지내다 보니 정신을 쓸만한 메인 잡이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신경이 쓰는 것이 바로 일상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사업상의 일로 신경을 쓰는 것도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일상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의 피로도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아마도 베트남에는 없었던 다양한 인간 관계 망에 들어온 탓인가 봅니다. 한국에 들어 온지 벌써 4개월이 넘어갑니다. 지난 30년 동안 이렇게 오래 한국에서 머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최근 깨닫고 이 생활이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이왕 이럴 바에는 그 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을 찾아보자 하며, 고교 시절의 동기생들의 모임에 반세기만에 참여 했습니다. 까까머리 고교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희끗한 장년의 모습에 적이 당황스러워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말을 놔야 할 텐데 낯 모르는 어른에게 함부로 말을 놓기가 거북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들은 그 동안 꾸준히 만나온 탓에 스스럼없이 친구의 말투로 잘 지내는데 나는 좀처럼 말이 편해지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베트남과 달리 부부동반 모임이 주를 이룹니다. 역시 나이가 들어가니 너나 없이 모두 어부인의 파워에 순응하며 사는 모습들입니다.

코로나 덕분에 옛 친구들과의 만남이 생겼으니 그 역시 의미가 있는 일인가 봅니다. 코로나로 한국에 들어와 잡혀 있는 꼴이지만 한국에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 많았습니다. 앞에서 거론한 거의 반세기 동안 사장된 인적 네트웍을 다시 살리는 일 외에, 지난 6월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장인 어른 장례를 함께 할 수 있었고, 올해 백수가 되신 노모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동네 노인 센터에 일주일에 3-4일을 다니시게 하여 무료한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만든 일, 역시 코로나로 인한 성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동안 언젠가 해야지 하고 벼르던 그림도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도 마음껏 보며, 30년만에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생각을 하니, 그런대로 여유있는 생활이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로 발이 묶였다고 투정만 부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코로나 사태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유익을 주는 사안도 많은 듯 합니다. 역시 세상 일에는 음양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재 한국 호찌민 시니어 골프회 모임
지난 호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나왔다가 코로나로 하늘 길이 막혀 베트남에 가지 못하는 교민들이 많은 데, 그 중에 호찌민 시니어 골프회원 몇 분이 지난 7월 17일 제헌절에 종로 3가 인사동 근처의 찻집에서 모였습니다.
모두 5명이 모였는데 그 면면을 보자면, 베트남에서 보일러 관계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이장우 사장, 지난해 베트남 사업을 전부 접고 지내시다 이번 6월에 한국으로 돌아온 강영근 사장, 하노이에 있는 현대 자동차 판매사 부사장으로 발령을 받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웅진 님, 호찌민에서 축산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선재승 사장, 그리고 나 한영민입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 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인사동 작은 칼국수 집에서 파전과 동동주를 한 잔씩 마시며 아쉬운 베트남을 그려봅니다. 3시간 여가 지나는 줄 모르고 환담을 나누다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열흘이 지나서 다시 카톡으로 연락이 닿는 멤버를 불러 모았더니 9명이나 됩니다. 이중에는 이미 오래 전에 들어와 한국에서 터를 잡으신 두분이 계십니다. 두분 다 베트남에 계실 때는 봉제업을 하시던 분인데, 아직 기억하시는 분들을 위해 실명을 밝히자면, 최만근 님과 박준 님입니다. 혹시 이 이름을 기억하시고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에 계시면 일단 저에게 연락을 주시면 연결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보자는 제의를 했는데 호응이 크지 않습니다.
아마도 모여서 뭐하는데? 하며 그냥 얘기를 나누는 정도로 먼 길을 나서는 게 그리 썩 내키지 않는 분위기 입니다. 또한 아직도 코로나로 조심스러운 시국인데 별일 없이 이렇게 모이는 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도 있는 듯 합니다. 그래도 제가 제의한 모임이라 할 수 없이 제가 아이디어를 냅니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있던 분들이니 너나없이 한국의 발전상이나 한국의 문화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 있으리라는 생각에 서울 시내 문화제를 돌아보는 문화제 탐방을 제의했습니다. 문화제를 찾아 공부하며 다니다 보면 시내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고 한국의 변화한 모습도 알게 되겠지요. 골프모임이 객지에 나와서 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는 하지만 이 역시 골프 못지않게 많은 거리를 걷게 되고 동시에 우리 문화를 공부하게 되어 이국에 나가 살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스스로 위로를 해 봅니다. 이 모임이 과연 어떻게 진행될 지 다음에 또 알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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