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21,Monday

시벨리우스 – 핀란드의 ‘혼’을 담다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아픔이 많은 나라이다. 12세기 중엽 십자군 전쟁시 스웨덴의 공국(영지)이 된 이후 거의 17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장장 6세기동안이나 스웨덴의 지배하에 놓였던 핀란드는 1700년 경 스웨덴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또 한번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더니 1차 대전 후에는 독일제국의 제후국이 되어 버렸고, 2차 대전이 끝난 후에야 드디어 완전한 독립국의 이름을 찾게 되었다. 정말로 길고 긴 식민역사가 아닐 수 있다. 그 암울했던 핀란드의 역사 속에서 91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조국을 소재로 한 걸작으로 전 국민의 마음을 결속시켰던 민족 음악가 ‘얀 시벨리우스’. 오늘은 영원한 핀란드의 자랑 ‘얀 시벨리우스’의 대표작들을 만나 본다.

·숨은 속내, ‘저항’ ·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인 교향시 <핀란디아 op.26>는 러시아의 압제가 거세졌던 당시 발표된 작품으로 일종의 ‘애국 찬가’이다. 표면적으로는 핀란드의 자연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숨은 진짜 속내는 “여러분! 깨어나세요! 우리 조국은 반드시 독립을 쟁취할 것입니다!” 라는 애국적인 메세지를 품고 있다. 1899년, 핀란드의 예술인과 언론인들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언론 탄압에 맞서기 위해 비밀 결사단을 조직했다. 그리고 그 해 11월에 독립 자금 모금을 위한 행사를 개최했는데, 행사의 마지막 순서에 연주되었던 시벨리우스의 ‘핀란드여 깨어나라’ 라는 곡이 결사단들의 마음에 뜨거운 에너지로 전달되었고, 이를 간파한 시벨리우스는 이 작품을 교향시의 형식으로 수정해 다음 해 1900년에 열린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핀란디아>라는 제목으로 초연을 하게 되었다.
빼곡한 원시림으로 뒤덮인 웅장한 삼림, 약 20만개의 호수와 섬으로 둘러싸인 조국 핀란드의 풍광이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된 이 교향시는 초연 당시 러시아 정부로부터 연주 금지령을 받고 말았다. 제목 ‘수오미(Suomi)’가 핀란드 모국어로 ‘핀란디아’ 를 의미해 너무 애국적이고 선동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음악가들은 이 곡에 교묘하게 다른 제목을 붙여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대에 올렸다. 이러한 노력은 민중의 대대적인 저항 운동으로 연결이 되었고, 이에 힘입어 <핀란디아>는 결국 연주 금지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웅장하고 극적인 톤의 금관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조국을 잃은 핀란드 국민들의 분노와 울분을 묘사한 듯 비극적인 톤이다. 특히, 뒤이어 목관에 의해 연주되는 핀란드 민요풍의 애달픈 선율은 이후 ‘핀란드 찬가’로 편곡되어 국민들 사이에서 제2의 국가처럼 불리고 있다.
·연주보다는 작곡이 내 운명·

원래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이었던 시벨리우스
완강한 부모의 반대를 뒤로한 채 다니던 법대에 자퇴서를 던지고 도망나온 그는 헬싱키 음악원에 진학해 바이올린을 전공하기 시작했다. 제법 실력이 출중해 학교 정기연주회의 독주자로 뽑히게 되었는데… 협연 무대에 오른 그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첫 소절을 시작하는 순간, 눈 앞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방망이질을 해댔다. ‘헉 !! 그 다음 음이 뭐였지…?’ 협연 내내 사시나무처럼 떨던 그는 정신이 혼미해 땀에 흠뻑 젖은 채 겨우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도망치듯 내려오고 말았다. 어떻게 연주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찔한 무대공포증을 경험한 시벨리우스는 엄청 빠르게 자신의 주제파악을 하게 되었다. 무대 위 연주자의 삶은 절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그 운명적인 날 때문에(덕분에?) 작곡가의 길에 들어선 시벨리우스는 보란듯이 대작들을 발표하며 인기 작곡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교향시 <핀란디아> 의 성공으로 단번에 스타 작곡가가 된 시벨리우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op.47> 을 발표해 국민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바이올린 협주곡 op. 47> 은 시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환상적인 협주곡으로, 19세기를 대표하는 낭만 바이올린 협주곡의 거장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작이다.

·시벨리우스의 <전원 교향곡> ·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일곱 개의 교향곡 중 가장 인기있는<교향곡 제 2번 op.43>이다. ‘전원교향곡’ 이라는 별칭을 가진 이 교향곡은 시벨리우스가 이탈리아의 ‘라팔로’ 지역으로 연주여행을 갔던 1900년에 작곡한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베토벤의 <전원>에 익숙한 분들은 이 작품이 보여주는 후기 낭만주의적 자유로움이 다소 생경할 수 있다. 왜냐면, 이 곡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묘사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어둡고 심각한 음향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따스하고 평화로운 남유럽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도 나라걱정을 지울 수 없었던 시벨리우스의 복잡한 심리가 반영된 것일까? 핀란드 전원의 색채가 작품 곳곳에 농후하게 배여있고, 핀란드 전통민요의 리듬이 많이 등장해 상당히 민족적인 색채를 풍기는 교향곡이다. 구성은 모두 4악장이다.

· 제1악장 – 짙은 안개에 깔린 북극 핀란드의 전원.
· 제2악장 –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숲과 신비롭고 정적인 호수, 눈 내리는 쓸쓸한 들판.
· 제3악장 – 질풍 같은 눈보라.
· 제4악장 – 최후의 승리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왈츠 ·

깊은 밤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지친 아들은 침대 앞에 쓰러져 잠들어 있다.
어디선가 희미한 불빛이 새어들고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는 음악소리에 깨어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몸을 움직인다.
아니, 왈츠를 춘다.
‘뭐가 보이시는 걸까? 어떻게 이런 일이……!’
어머니의 모습에 너무 놀란 아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다.
그 때, 어디선가 어두운 그림자들이 다가와 어머니와 춤을 춘다, 춤은 격렬해진다.
리듬이 절정에 달할 때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리자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고, 환영인지 유령인지 모를 어두운 존재들은 바람같이 사라져 버린다.
어느 새 음악은 중단되었고, 문 앞엔 죽음이 서 있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은 잠에서 깬다.
‘아~~꿈이었구나…’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본다.
어머니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는 밤 사이 하늘나라로 떠나신 것이다.

극작가 ‘야르네펠트’가 쓴 희곡 <쿠올레마(죽음)>을 위해 만든 부수음악 <슬픈 왈츠 op.44>이다. 우수에 젖은 왈츠 선율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무조건 프로페셔널한 바이올린 연주로 들어야 한다.

· 최애작 ‘안단테 페스티보’ ·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던 1938년. 시벨리우스는 뉴욕 타임즈의 음악평론가 ‘올린 다운스’ 로부터 <뉴욕세계박람회>를 기념해 전 세계 라디오로 송출할 음악을 의뢰 받았다. 이미 70을 넘긴 그는 일선에서 은퇴한지 15년이나 지났기에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마침 은퇴 전에 완성해 두었던 <안단테 페스티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원래 ‘현악 4중주곡’ 이었던 이 곡을 좀 더 볼륨감 있는 ‘현악앙상블과 팀파니’를 위한 곡으로 편곡해 발표했다. 이탈리아어로 ‘페스티보(Festivo)’는 ‘축제풍’을 뜻하니까, ‘안단테 페스티보’는 ‘축제풍의 안단테’ 로 해석되겠다. 그런데 이 곡은 기존의 축제들이 가지는 활기차고 들뜬 톤이 전혀 아니다. 그저 언제 숨을 쉬어야할 지 모르게 끝없이 흘러가는 선율들은 애잔한 마음이 들게 한다. 마치 장중한 찬송가처럼 들리는 이 곡을 시벨리우스는 정말로 좋아했다. 지인과 가족들은 그걸 잘 알았기에 그의 장례식 배경음악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한다. 1939년에 시벨리우스 본인이 지휘하고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가 연주한 실황을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80년 전의 레코딩이라 음질이 안 좋지만, 시벨리우스 본인이 73세의 나이로 직접 지휘한 것으로 노장 원작자의 음악적 원숙미를 담은 현존 유일의 음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시벨리우스는< 안단테 페스티보 >를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던 걸까? 그것은 아마도 전쟁과 식민지의 시대를 종결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의 염원이었으리라…

김 지 희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교육학 학사) / 미국 맨하탄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석사) / 한세대학교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박사) / 국립 강원대학교 실기전담 외래교수(2002~2015) / 2001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이태리, 스페인, 중국, 미국, 캐나다, 불가리아, 캄보디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연주활동 중 / ‘대관령 국제 음악제’, 중국 ‘난닝 국제 관악 페스티발’, 이태리 ‘티볼리 국제 피아노 페스티발’, 스페인 ‘라스 팔마스 피아노 페스티발’ 《초청 피아니스트》 E-mail: pianistkim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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