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October 23,Friday

나 그 네 길

코로나바이러스로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동되었다가 지금은 2단계로 조정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사실 2.5단계가 뭔지 2단계가 뭔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베트남에서 올 초에 겪었던 상황보다는 그래도 나은 것이다 싶습니다. 그때 기억을 되살려 보면 병원과 약국, 그리고 마트를 제외한 식당이나 상점, 대중시설들은 모두 문을 닫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대중교통도 멈췄고 회사 내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근무 거리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감염 의심자가 발생한 아파트는 동 단위로 격리를 시켰습니다. 참 어려웠던 때였습니다. 들어보니 2.5단계라는 것이 이런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하는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요. 다들 본인이 겪는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법이니까요. 그런 걸 보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일이 힘 들긴 힘든 일인가 봅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와 함께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매일같이 우울하고 갑갑한 소식만 들려오니 위로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도 잘 참고 있으니 한국에 계신 분들도 잘 참아 내야지 코로나 블루가 뭔가” 하고 짐짓 타박했더니 이 친구, 대답이 자못 철학적이었습니다.

“그건 가진 게 많아서 그래.”

그런데 그게 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 잃을 게 없는 사람들보다 더 불안하고 더 힘들어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인 경우를 여럿 보게 되니까요.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가진 것 없이 왔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 없이 왔으니 또한 가진 것 없이 떠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세상은 엉덩이를 눌러 붙이고 내 집처럼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한 해마다 옮겨 가야하는 임대 아파트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곳과 같습니다. 그렇게 일시적으로 머물다 가는 이를 나그네라고 하지요. ‘나그네’ 하면 기억나는 유명한 가요가 있습니다. 하숙생이라는 노래입니다. 명곡이지요.

고대 이집트 역사에 요셉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총리가 임명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셈족이어서 이집트에서 관직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이었으니까요. 역사학자인 유진 메릴에 의하면 요셉은 B.C. 19세기 말 세소스트리스 2세 때 이집트로 왔으리라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때 이집트에서는 많은 소아시아 또는 가나안 출신의 노예들이나 용병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소스트리스 2세는 힉소스(Hyksos) 족이었습니다. 힉소스 족은 이집트 중왕조를 무너뜨리고 제2중간기를 연 민족입니다. 힉소스 왕조는 이집트 토착민에 의한 왕조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서부 셈족 계열이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이방인이며 셈족이었던 요셉이 같은 이방민족이며 셈족 계열인 힉소스 왕조에서 발탁될 수 있었다는 거지요. 다 이유가 있어 남의 나라에서 총리도 되는 거랍니다.
그 요셉이 목축을 하던 가나안 땅의 가족을 이집트로 옮겨와 살게 합니다. 요셉의 가족을 만난 파라오에게 아버지인 연로한 야곱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입니다. 저는 험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이집트의 절대권력자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총리가 된 그의 아들은 어땠을까요? 그는 죽을 때 자기 친족들에게 이렇게 유언을 남깁니다.
“너희가 이 땅을 떠날 때가 올 것인데 그때에 나의 뼈를 이 곳에서 옮겨서 그리로 가지고 가야 한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제국의 이인자로 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그것이 곧 시들 꽃과 같은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만 나그네일까요? 아무리 잘 나가도 베트남에서 사는 우리 역시 모두 나그네입니다.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가 천년 만년 살 거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끝이 있다는 것, 사람이 죽을 때가 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죽음이 당장은 아니라고, 나만은 비켜 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너무나 공평하고 공정하게 우리를 찾아옵니다. 다만 시간이 다를 뿐이지요.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될까요? 길어야 백 살입니다. 그것도 철들고 건강한 기간만을 따진다면 생각보다 짧을 수 있습니다. 그 세월을 바둥바둥 몸부림 치며 더 가지고 싶어하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야곱처럼 인생길이 험해 지는 거지요.
삼성 같은 재벌이 아니라 삼벌, 사벌이래도 죽을 때 옷 한벌 못 가져 가는 게 인생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죽음을 허락하시므로 그가 인생들에게 얼마나 공평한가를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신이 있음을 알게 하는 관문이며 우리의 겸손을 일깨우는 기회입니다. 그러니 겸손해야 겠습니다. 택시 타면 기사와 잘 다투는 분이 있습니다. 식당에 가면 종업원들에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위압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뭐 합니까? 목소리 크면 도움되나요? 뒤에서 욕만 먹을 뿐입니다. 정상적인 절차로 우리는 이 곳에서 땅 한 평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십년 간 지켜봐서 알겠지만 그들의 발전속도를 나그네인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이 땅이 우리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을 지키고, 규정이 엉성해도 따라주고, 먼저 미소 짓고, 고개를 숙이며, 친절해야 합니다. 속이 타더라도 내가 먼저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나그네의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소식을 보면 가진 힘이 영원무궁할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여럿 됩니다. 권력이 아무리 화려해도 반드시 지는 때가 있다는 것을 정치사를 통해 학습하고 또 학습해 왔는데 겨우 이십년 목표하고자 바둥거리면서 왜 그게 영원한 듯 착각을 하는지. 수없이 당명을 바꿔 대던 이전 정권의 실패를 배웠으면 뭔가 나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마음을 후벼 파는 이 사람들은 또 정체가 무엇인지.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고 바로잡아 가면 될 일을 핑계와 변명과 고집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그들 역시 이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의 나그네임을 깨닫지 못해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과 행동을 가리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인들처럼 베트남에서 진상 떨다 찐따 되지 말고 겸손합시다. 그 땅에 지분이 없음을 아는 것이 나그네의 미덕이고 그 표현이 겸손입니다. 이래야 눈을 들어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도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 나그네 길임을 압시다. 그 지혜가 우리를 주변과 더불어 평안하게 합니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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