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9,Friday

한글축제

한글축제? 우리의 한글, 세상의 큰 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의 날 기념식 표어이냐고요? 땡! 아닙니다. 지난 10월 10일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학교에서 열린 축제의 제목과 금년의 주제 표어입니다. 호찌민시에서는 매년 10월 한글의 날 기념 축제를 열고 남부지역 한국(어)학과 학생들이 모여 연합으로 축하 행사를 갖습니다. 이 행사는 2012년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올해로 9회째가 됩니다. 1회 때의 주제 표어는 ‘한글로 통하다’ 였습니다. 저는 이 첫 행사에 초청된 물빛 홍성란선생님의 개회식 한글서예 퍼포먼스를 보고자 따라
나셨다가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행사의 주제 표어는 다양하고 흥미롭습니다.
한글이 갖는 특성이나 비전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온 세상, 한글로 비추다’, 2017년 행사에서는 ‘마음을 그려내는 빛, 한글’이라는 표어를 선택하였고 2018년에는 ‘한글, 세상을 품다’, 2019년에는 ‘한글, 세상을 열다’ 라는 주제를 내걸었습니다. 참 멋진 표현들입니다. 행사는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됩니다. 이때 눈에 띄는 것이 세종대왕님의 큰 걸개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이 장면을 보았을 때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요! 우리나라 대학교도 아닌 이국의 땅에서 세종대왕의 대형 그림과 한글 사랑을 축제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 본 일이었습니다.
이 멋진 행사는 한국인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트남 학교와 학생들 스스로 만들고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학과 학생들이니 당연한 거 아니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알밤을 먹였을 것입니다. 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님을 몰라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어느 영문학과에서 셰익스피어를 기리기 위해 대학 연합으로 모여 행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어 본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베트남 학교와 학생들은 애정을 가지고 행사에 참여하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행사장에는 참여 대학의 부스, 후원하는 기관, 단체, 기업들의 홍보부스들도 있지만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부스는 야외 마당에 설치된 것들입니다. 여기에는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부스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단군신화와 같이 우리나라의 신화나 전승을 소개하는 코너로부터 부채 만들기, 탈 만들기, 한복을 색종이로 접기 등 문화 소개 외에도 한글서예 체험코너, 심지어 2019년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소녀 상에 대한 소개가 이런 부스에서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먹거리도 빠질 수 없습니다. 윷놀이, 제기차기, 사물놀이도 흥미를 끌지만 역시 젊은 위장엔 음식이 최고입니다. 이 코너에는 잡채, 떡볶이, 파전, 김밥, 김치전 등 베트남 사람에게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음식들이 소개되거나 베트남 청년들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야외마당은 항상 북새통입니다.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도 눈에 띕니다. 개 중에는 한복을 입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짜 축제가 되는 거지요.
놀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후에는 대학별로 한국어 퀴즈대회, 가요경연, 댄스배틀 등 해마다 다채로운 내용들로 준비되고 경쟁 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문화를 즐기고 나아가 사랑해 주는 베트남의 청년들이 고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를 어찌 대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한글을 한국의 대표 콘텐츠로 인식하고 이를 아이콘으로 삼아 다른 한국 문화에 접근하는 베트남 청년들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는 K-팝이니, 춤이니, 드라마니 재미가 우선인 콘텐츠에만 집착해 우리 문화의 정작 위대한 힘의 원천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자부심을 안겨준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왜 한글을 창제하셨을까요? 세종대왕께서 우리의 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 ‘훈민정음’이라 하였습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 이라는 뜻이지요. 그러고 보면 반포 초기에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어 아침나절로 활용할 수 있다하여 쓴 ‘아침 글자’란 말이 세종대왕의 마음에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이란 표현은 주시경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국어연구학회에서 우리의 정신이 담김 우리말을 쓰자는 취지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한글은 ‘하나의 위대한 글’이라 뜻입니다. 당시가 일제의 탄압이 고조되던 때이니 그들이 우리의 글을 한글이라 불렀을 때의 문화적 자부심과 비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우리 글을 창제하신 동기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훈민정음 서문에 나와 있듯이 ‘백성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불쌍히 여겨서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들어 쉽게 익혀 편히 쓰게 하려는 것’ 입니다. 한마디로 그가 백성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군주가 백성을 사랑해야 함을 모든 왕조가 입에 달고 다녔지만 세종대왕은 그 사랑을 직접 보여준 위대한 군주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글은 사랑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그래서 한글은 그 사랑의 마음을 담은 큰 글임이 분명합니다.
글을 못 읽는 게 왜 불쌍한 일일까요? 글을 읽는 것이 권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근대시대까지 위정자들과 권력자들은 백성에게 문자를 가르치기를 꺼려했습니다. 중세 교회가 백성이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했던, 그래서 사제들과 일부 성직자들이 성경을 독점했던 그 시기를 기독교에서 암흑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권력이 지도자들에 들러붙어 교회를 타락시켰기 때문이고 그 역할을 문자가 했습니다. 그러니 세종대왕께서 하신 문자 창제의 결심과 결과는 세계사적으로 칭송 받을 만한 대사건임이 당연합니다. 그것은 절대 권력자가 그 권력의 원천을 내려 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당시 권문세족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 분이 진짜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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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벌어진 한글축제를 보면서 세종대왕께서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싶습니다. 오늘날 백성을 위하고 생각하는 진정한 위정자가 사라진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소중한 글도 반토막 내 씹고 다니는 세대를 바라보며 한숨 지었을 위대한 왕이, 이 곳 이역 땅에서 만 백성을 위해 만든 그 글이 담은 사랑의 큰 뜻이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글축제, 참 고맙습니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현지법인 대표(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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