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September 28,Tuesday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지프 캠벨

조지프 캠벨 | Joseph Campbell (1904-1987) – 2

(참고한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
Joseph Campbell 저, 이윤기 옮김, 민음사, 1995.05.20)

장삼이사가 영웅이 되는 길

오늘도 1군 하이바쯩 거리 건널목엔 사람들이 많다. 7군 SECC 사거리에 쏟아지는 오토바이 행렬도 여지없다. 사람들은 어디서 이렇게 많이 나왔으며 모두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디로 이처럼 바삐 다니는가. 일상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지루하고 시시한 일상은 언제나 남루하다. 그 안에서는 도무지 신화라는 게 생길 리가 없어 보이고 영웅은 더더욱 멀게 느껴진다. 어젯밤 연속극을 보며 내일 아침이면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길 기대하지만 해가 뜨면 초라한 무참함만 남는다. 언감생심이다. 그런 일은 어느 날 푸미대교 아래에서 느닷없이 아이언맨이 솟구쳐 올라 나에게만 윙크하고 우주로 표표히 사라지는 광경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그렇다, 비현실적 이라는 말,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 말에 속아 인류는 오늘에 이르게 됐으니 비현실적이란 말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구박받지만 달리 말하면 비현실은 현실의 가능태며, 마침내 이루어진 비현실은 다시 현실이 되니 현실과 비현실은 어쩌면 한 몸인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기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거리에 보이는 모두가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비현실을 실현시킨 장본인이라는 것과 비현실의 가능태를 품은 영웅이라는 사실이다. 엄연한 이 사실을 인류와 신화, 영웅을 시간적 통사와 공간적 연결로 풀어 낸 책이 바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다. 저자 조지프 캠벨이 말하는 영웅은 잘생긴 마스크로 영적인 힘과 무소불위의 파워를 가진 헐리우드적 영웅이 아니라 오늘도 초라한 시민성에 울고 웃는 우리의 홍심을 겨냥한다.
캠벨은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으로 정의한다. 내가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영웅이라는 것이다. 쉬운 것 같다. 그러나 쉽지 않다. 다음 물음에 답해 보자. 남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노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주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노예인가 주인인가?

우리는 역사의 곳곳에서 영웅들을 만난다. 예수는 로마라는 정치적 힘에 아랑곳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깨달음과 그 깨달음을 실천하는 명령으로 목숨 앞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킨 영웅이었다.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랑을 복원시켜 신의 현현을 꿈꾼 사람이다. 그것은 붓다, 샤카무니의 화엄세계, 그러니까 각자 모두는 자신만의 꽃으로 피고 그 주인으로 살아가는 대자유와 같은 맥을 이룬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영웅적 행적이 아니다. 누구의 명령으로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 자신이 명령하고 스스로 복종하는 영웅(주인)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인가? 를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삶의 영웅, 주인이 될 수 있나? 자기계발 책의 아무 곳이나 펴도 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오늘을 늘 감사하며 살아라’ 류의 메시지는 우리 몸의 혈류에 당황의 피를 수혈하지 못한다. 캠벨은 그대가 바로 영웅이다, 내가 영웅이라는 신화의 발견만이 오로지 그대가 할 일이라 말한다. 그 방법은 ‘여러분의 꿈을 글로 적어 보라.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화다.’ 라는 정언명령을 제시한다. 이렇게 발견한 신화로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여러 난관을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잊지 말아야 할 말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렁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진 않으리라.’ 라고 예언하면서 삶으로부터 겪게 되는 모든 일에 쫄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인간은 늘 밥 너머의 일을 사유했고 그것을 규명하려 애썼다. 자신의 피와 살을 뛰어넘는 정신성을 찾아 헤맸다. 삶을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상정할 수 있는 자기 인생의 의제설정력을 가지고 많은 인간들이 불나방처럼 자신의 꿈을 좇았다. 기꺼이 불행을 찾아 나섰다. 불행으로 떠나는 모험에 힘입어 인류의 역사는 면면히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이어져 왔다. 살기 위해 죽이고 또 죽인 것을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그 지난한 밥숟갈 위에 삶을 반추하고 가끔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자신을 가져다 놓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초라한 과거와 과감하게 이별하고 새로운 삶으로 재편해 나가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았다. 드디어 인간은 자신을 얽어맸던 밥을 죽이고 존재 위에 서게 된다. 유한하고 단명한 인간이 보다 높은 무한의 삶을 지향하는 노력, 죽음의 두려움과 밥의 일상성을 깨뜨리고 더 높은 존재를 향해 나아가려는 일은 멈출 수 없다. 이것이 흔히 ‘꿈’이라 일컬어지고 또 비현실적이라 치부되는 거의 모든 일이다. 이것은 영웅의 여정과 같다. 떠나고, 고난을 만나고, 그것을 극복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깨달음을 품고 떠난 자리로 돌아와 다시 일상을 재편하는 것. 그 시작은 떠남이다.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지금, 여기, 과거를 떠나는 것이다.

캠벨은 마지막으로 쿠마라스 와미의 입을 빌려 말한다.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도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동사를 기꺼이 쓸 수 있는가?

장재용|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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