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September 27,Monday

미래에서 온 남자 ‘에릭 사티’

“예술가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여기 나의 매일 시간표가 있다. 아침 7시 18분에 일어나 10시 23분부터 11시 47분까지 영감을 받고, 12시 11분까지 점심을 먹은 뒤에 12시 14분에 책상을 떠난다. 건강을 위해 오후 1시 19분부터 2시 53분까지 내 땅을 말로 달린다. 오후 3시 12분부터 4시 7분까지 다시 한번 영감을 받고, 5시부터 6시 47분까지 펜싱, 회고, 부동자세 명상, 방문, 수영 등에 매진한다. 저녁은 7시 16분에 시작해 20분에 끝낸다. 밤 8시 9분부터 9시 59분까지 교향곡적 독서 (크게 책 읽기)를 한 후, 밤 10시 37분에는 취침하러 간다. 일주일에 한 번씩(화요일)은 새벽3시 14분에 깬다.”

정신병원 환자의 야심찬 낙서로 보이려나? 이것은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의 회고록에 적혀 있었던 그의 하루 계획표이다. 한 때, ‘문화적 무정부주의자’라는 죄목으로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던 에릭 사티는 19세기 말엽 유럽 음악계를 풍미했던 후기 낭만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의 어느 한 사조에 묶이지 않은 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 대중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작곡가이다. 13살에 학교에서 쫓겨난 후 방황하다가 20대 초반부터 카페에서 샹송을 연주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던 가난한 음악가 에릭 사티는 그 기이한 음악 행보 때문에 철저히 음악계의 아웃사이더로 살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다분히 센세이셔널했던 그의 음악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아니, 완전히 잊혀져 버렸었다. 그런데 누구의 노력이었는지 오늘날 우리는 베토벤, 슈만, 차이코프스키보다 더 자주, 더 많은 장소에서 사티의 음악을 만나고 있다. 쇼핑몰, 카페, 영화관, 레스토랑, 열차, 비행기 등 사람의 발이 닿는 곳에는 어김없이 사티의 음악이 흐른다. 그렇다. 생전의 사티가 시대의 요구에 편승하지 않는 이단아였다면, 현재의 사티는 ‘뉴에이지’와 ‘미니멀리즘’ 음악의 시초로 칭송받고 있다. 심지어 사티의 음악은 그의 사후 100여년이 지난 오늘 만들어진 곡이라고 해도 어울릴만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현대미를 지니고 있다. 시몬스 침대의 CF 광고 배경음악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에릭 사티의 음악, 이제 그의 작품 몇 곡 정도는 제목을 알고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올 연말 크리스마스 와인파티에서 사티 음악으로 주위를 리드하는 매력있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짐노페디 Gymnopedies
몽마르트 언덕의 카바레 ‘검은 고양이(르 샤 누아)’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초기에 완성한 작품이다. 에릭 사티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짐노페디’는 고대 그리스의 리케다이몬(스파르타)의 연중행사인 제전의 명칭으로 나체의 남성들이 합창과 군무로 신을 찬양했던 행사를 의미한다. 사티는 이 고대제전의 모습을 피아노 음악으로 재현했는데, 몽마르트에서 친분을 쌓은 낭만주의 시인 ‘파트리스 콩떼미뉘’의 시
<고대인 Les Antiques>에서 좀 더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비스듬히 그림자를 자르고 명멸하는 회오리
밝게 빛나는 판석 위에 금빛으로 흘러넘치네
호박색 원자들이 서로를 불 속에 비추면서
짐노페디아와 사라방드를 뒤섞어 춤추네

1번 느리고 슬프게(Lent et douloureux), 2번 느리고 슬프게(Lent et triste), 3번 느리고 장중하게(Lent et grave) 이렇게 세 편의 피아노곡으로 되어 있다. 시종일관 반복되는 왼손 베이스와 그 위에 얹어진 멜랑콜리한 선율은 신비로우면서도 회화적이다. 난생 처음 간 나라의 어느 도시를 거닐 때 이런 느낌일까? 정말 진하게 낯설다.

그노시엔느 Gnossiennes
‘그노시엔느’는 그리스 남쪽의 섬, 크레타, 혹은 ‘크레타 사람의 춤’을 의미한다. 짐노페디를 완성한 직후에 작곡된 곡으로 처음 출판했을 때는 <3개의 그노시엔느>였지만, 사티가 사망한 후 전기 작가였던 ‘로베르 카비’가 3곡을 더 출판해 지금은 <6개의 그노시엔느>로 알려져 있다. 동양적인 화성과 음계가 주를 이루는 이 곡에는 조표와 마디줄이 생략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티가 중세시대의 악보 기보법(그레고리안 성가; 음의 높낮이만 그려져 있음)을 모방한 것이다.
짐노페디와 유사한 분위기를 띄는 ‘그노시엔느’에서는 끝없이 반복될 듯한 선율 때문에 연속적인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1곡 Lent(느리게) / 2곡 Avec etonnement(놀라움을 가지고) / 3곡과 4곡 Lent(느리게) / 5곡 Moder(절제해서) / 6곡 Avec conviction et avec une tristesse rigoureuse(확신과 절대적 슬픔을 가지고)

독특한 것은 사티가 각 곡의 중간중간에 써 놓은 연주 지시어들이다. 예를 들면, ‘매우 기름지게’, ‘혀 끝으로’, ‘구멍을 파듯이’, ‘떠나지 마라’, ‘매우 친절하게’, ‘너 자신에게 조언해라’, ‘자랑하지 마라’ ,‘올바로 생각해라’ 이런 지시어들이다. 다분히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색채를 띄는 이 곡에 붙이기엔 엉뚱하고 난해한 요구가 아닐까? 괴짜다운 발상이다.

난 널 원해 Je te veux
에릭 사티가 샹송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던 당시의 몽마르트 언덕은 수많은 거리 예술가들의 환락의 장소였다. 쟁쟁한 화가들(르누아르, 에드가르 드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모델이었던 여인 ‘수잔 발라동’이 어느 날 갑자기 사티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만난 그녀에게 첫 눈에 반해 버린 사티는 남성편력이 대단했던 수잔의 실체를 파악할 새도 없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해 6개월이나 동거했지만 성격 차이로 인해 자주 다툼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수잔이 아파트 난간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한 이후 헤어지게 되고 말았다. 사티는 수잔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저런, 사티는 이후 죽을 때까지 독신이었다. 그의 사망 이후 친구들은
유품 중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 한 묶음을 발견했는데,
수신인이 모두 수잔 발라동이었다. 27세에 만난 단 한번의 사랑을 생의 끝자락까지 간직했던 에릭 사티. 편집증인가 지고지순인가. 그가 수잔 발라동을 생각하며 작곡한 곡이 그 유명한 <난 널 원해>이다.

당신을 원해요.
금빛 천사여, 도취된 열매여, 마력의 눈동자여,
나에게 그대 몸을 맡겨요.
당신을 원해요. 당신은 반드시 내 것이 될 거예요.
나의 여인이여, 어서 와서 내 고독을 봐 주세요.
우리는 최고의 행복을 맞을 거예요.
그런데 그 순간을 기다리기가 힘들군요…

짜증 Vexations
사티의 기이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엽기적인 곡이다.
1분도 안되는 한 장짜리 악보의 첫머리에 이런 지시어가 쓰여 있다.
“주제를 연속적으로 840번 재생하려면 심각한 부동의 상태를 통한 침묵 속에서 사전 준비를 하기 바란다”.
840번 반복이라… 황당하다. 연주를 하라는 걸까 말라는 걸까? 메트로놈 지시대로 정확히 연주하면 대략 14시간이 소요되는 이 곡을 연주한 사람이 과연 지금까지 있었을까? 놀랍게도 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는 1963년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11명의 동료 음악가와 함께 18시간 40분동안 이 곡을 릴레이로 연주했다. 그리고 1970년엔 피아니스트 ‘피터 에반스’가 혼자 완주에 도전했지만, 595번을 반복한 후 중도 포기했다. 혹시나 가장 최근의 연주가 있었는지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난 5월 30일 독일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는 베를린의 한 스튜디오에서 <짜증>을 혼자서 완주했다. 총 16시간이 걸린 처절한 리사이틀이었다고 한다. 레비트는 이 공연을 ‘침묵의 비명’이라 이름 붙였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공연장이 봉쇄되어 직업을
잃게 된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사티의 한 장짜리 악보를 840장 복사해 한 장 한 장 바닥에 던져가며 완주했고, 이 악보는 경매에 부쳐졌다고 한다. 경매 수익금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연주 기회를 잃은 예술인들을 위해 쓴다고 하니, 정말 위대하고 의미있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에릭 사티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인 경향이 있지만, 그의 혁신적인 음악관은 결코 20세기 이전의 유산은 아니었다고 느낀다. 그는 시대를 앞서 간 천재였다.

“난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젊어서 왔다 (Je suis venu au monde tres jeune dans un temps tres vieux)”.
그가 생전에 했던 이 말이 이제야 어렴풋이 와 닿는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그가 시간여행자였을 수도 있겠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 봤다. 다시 말해, 21세기에 살고 있던 에릭 사티가 19세기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 과거인들에게 ‘미래음악의 맛은 이런 거야 ’라는 메시지를 툭 던져주고 온 거라면?? 오늘 하루 종일 틀어 놓은 사티의
음악 때문에 내 마음이 ‘앨리스’가 된 걸까?..

김 지 희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교육학 학사) / 미국 맨하탄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석사) / 한세대학교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박사) / 국립 강원대학교 실기전담 외래교수(2002~2015) / 2001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이태리, 스페인, 중국, 미국, 캐나다, 불가리아, 캄보디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연주활동 중 / ‘대관령 국제 음악제’, 중국 ‘난닝 국제 관악 페스티발’, 이태리 ‘티볼리 국제 피아노 페스티발’, 스페인 ‘라스 팔마스 피아노 페스티발’ 《초청 피아니스트》 E-mail: pianistkim83@gmail.com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Copy Protected by Chetan's WP-Copyprot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