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November 30,Monday

비밀의 숲

글을 시작하려고 하니 드라마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참 재미있었습니다. 얼마전에 종영한 미니드라마 ‘비밀의 숲 2’ 이야기입니다. 이 미니드라마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나리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나리오는 위험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 어렵고 민감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려 할까 궁금했습니다. 용두사미가 될 지도 모르겠다고 짐짓 예상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한편 한편 회를 더해 갈수록 내용은 양념처럼 여겨졌습니다. 주말마다 저를 달뜨게 한 메인 요리는 배우들의 연기와 촬영이었습니다.
참, 배우들의 연기가 어쩜 그리 기가 막히던지요. 맛으로는 쫄깃했고 디테일로는 섬세했습니다. 중심인물로부터 일개 사기꾼 역까지 어떻게 저런 연기꾼들만 모아 놓았는지. 우리나라에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많았는지 새삼 놀랐습니다. 특히 주연배우 두 사람은 입을 열면 대사를 전하고 입을 다물 땐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그저 자리에 서있는 것만으로 어떤 감정인지, 어떤 얘기를 전하는 건지, 그의 생각이 어떠할지 전달되어 왔습니다. 그런 배우와 시청자를 동조하게 한 것은 촬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웰메이드 미드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박진감 넘치고 두근거리게 하고 궁금하게 했습니다.

어떤 때는 오래전 저를 잠 못 자게 한 X파일이 기억 속에서 먼지를 털고 소환되어 왔습니다. 멀더와 스컬리급(級) 캐릭터였습니다. 시나리오는 배우들의 연기와 촬영에 명분을 주는 도구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러니 검찰이 어떻든지, 경찰이 어찌되었든지 관심이 사라졌습니다. 결론도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그냥 매회가 재미있었습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민감한 내용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했던 생각은 이 드라마가 빨리 끝나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으로 옮겨져 갔습니다. 하도 드라마에 감동해서 말이 길어졌습니다. 방영
기간 중에 이 글을 썼다면 방송사에서 뭐 라도 받는 줄 오해 샀을 지도 모르겠네요.
드라마를 보면 별개의 사건들은 개별적이고 사소해 보이지만 연결된 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고리를 통해 비밀을 유대하고 강화해 나갑니다. 그래서 각각으로 보면 독립된 사안으로 각기 모양을 가진 나무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서로 연관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개인의 범죄로 보이는 것이 사회의 구조적 범죄의 일단이 됩니다. 개인의 비밀이 조직화되고 조직의 비밀이 개인들에게 전이되고 강요됩니다. 마치 모자이크 조각그림 맞추기와 같습니다.
물론 세상은 이 드라마처럼 모든 일이 인과적으로 얽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세상을 하나의 압축된 단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렇게 얽힌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세상은 드라마보다 더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비밀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비밀의 숲’은 아닐지라도 ‘비밀의 정원’이나 그게 아니라면 ‘비밀의 서랍’쯤 되는 것이겠지요. ‘난 비밀이 없는 사람이야’ 라는 장담은 실제가 될 수 없습니다. 비밀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남과 다르게 구별하는 것이 정체성이라면 정체성에는 자기가 가진 고유의 경험과 기억을 포함합니다. 밑바닥에서 캐어내어 남과 공유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히 그만의 비밀이 됩니다. 캐어내 보인다 해도 속을 뒤집어 보이지 않는 한 전부를 드러내어 보일 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니 타인이 나를 다 알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입니다. ‘너, 내 맘 알지?’ 묻지만 그렇게 전부를 아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안다고 믿을 뿐이지요. 숲은 깊고 서랍 안은 어두우니까요.

그런데 밑바닥에 숨겨진 자기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제외한다면 타인과의 관계에 얽힌 일로 끝까지 감추어질 비밀이란 게 있을까요? 여기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너만 알고 있어의 진실’이라고 제목을 붙여도 좋을 듯합니다.
그 진실이란 이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너만 알고 있을 바로 너에게 얘기하는 순간 비밀의 봉인이 풀리고 마는 것이니까요. 상황을 과장한다면 너만 알고 있어 말하는 당사자만 모르고 이미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일도 생긴다는 거지요. ‘너 알아? 그거 비밀인데’ 라는 말도 동일합니다. 내가 안 그 순간부터 그 비밀은 비밀이 아닐 확률이 더 큽니다.
중학생 때의 일입니다. 한 친구가 저에게 비밀을 털어 놓았습니다. 비밀이라 할 것도 없는 수준의 얘기인데 그 시절엔 심각했던,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얘기였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 비밀을 잘못 다루었다는데 있습니다. 어느 날 다른 친한 친구와 자리를 했고 거기서 비밀이라며 얘기해 준 친구의 비밀을 얘기했습니다. 당연히 ‘그거 비밀이야,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말아’ 하면서. 그리고 역시나 당연히 그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비밀을 말했던 친구가 나를 찾았습니다.
‘너, 얘기했다며?’ 아, 그날의 화끈거림이란!

그 후의 어느 날엔가 탈무드를 읽던 중에 이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너에게 그가 친구이듯이 그에게도 그만의 친구가
있다.’

비밀에 관한 인간관계의 진실 중 하나를 깨우친 열네살이었습니다.

저의 실수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이의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공유한 그와 내가 더욱 가까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 점입니다. 타인의 비밀을 우리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연결고리로 삼고자 한 거죠. 한심한 십대 때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참 흔하게 벌어집니다. ‘누가 그러던데…’, ‘이건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일인데…,’ 저야 십대 때라고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사십 대, 오십 대에 이러고 있다면 그건 때때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비밀을 열어 보임으로써 소속되고 연결되고자 하는 이런 바램은 작은 ‘우리’를 만들고자 더 큰 ‘우리’라는 공동체를 흔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도 이런 코드들이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찬사를 해 마지않았지만 이 드라마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양념과 밑밥을 너무 많이 깔아 두고 너무 빨리 마쳤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깔아 놓은 복선의 팔십 퍼센트는 해결하고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어야 하는데 제 생각엔 반 밖에 풀어 헤치질 않았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 진짜 비밀의 숲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방송사의 전략 같습니다. /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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