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23,Wednesday

대중국전략, 화전(和戰)양면 1~3차 베 – 몽 전쟁

이번 호에 소개할 내용은 베트남의 빛나는 대몽(원) 항전사다. 이들의 전쟁사는 몽골군의 말굽에 유린당하며 숱한 백성들을 포로로 내준 슬픈 고려의 역사와 대조를 이룬다. 강한 외적에 오히려 강하게 맞서는 베트남인들의 백전불굴의 정신은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200년대, 세계 최강의 제국을 이룬 원나라 쿠빌라이 황제는 모두 세 차례 베트남을 침공했다. 1차(1258년) 3만명, 2차(1284년) 50만명, 3차(1287년) 30만명. 전국의 병사를 다 모아야 20만명에 불과한 소국 베트남을 상대로 몽골족의 원나라는 거침없는 정복욕을 불살랐다. 하지만 세 차례 전쟁의 결과는 모두 원의 패배로 끝났다. 원은 정복군의 숫자가 말하듯, 얕잡아보고 벌인 1차 전쟁의 복수전으로 엄청난 병력을 재차, 삼차 동원했지만 결국 베트남의 저항에 무너졌다. 마지막 3차전 때 베트남군은 현재의 하롱베이 부근 밧당강 전투에서 퇴각하는 몽골군이 다시는 침공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처절한 타격을 가했다. 사서에 의하면 당시 전투가 끝났을때 밧당강에는 10만 구에 달하는 몽골군의 시체가 둥둥 떠다녔다고 기록되어 있다.

1차전- 몽골, 초유의 굴욕(1258년)

1258년 쿠빌라이(Quibilai)는 우량카다이(Uryangquadai)에게 3만 대군을 주어서 베트남을 치도록 했다. 이듬해 1월 몽골군과 쩐(Trần)왕조, 타이똥(Thái Tông) 황제의 베트남군은 까로(Cà Lồ)강 유역 비엣찌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치게 된다. 초기 전투는 세계최강답게 몽골군의 압도적 승리였다. 몽골군은 순식간에 수도 탕롱(Thǎng Long)성을 점령했다.

그러나 당시의 실권자 쩐투도(Trần Thủ Độ-쩐 왕조의 일등공신)와 베트남군은 후퇴하는 중에도 몽골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기 위해 ‘자체 파괴전략’과 유격전, 기후를 활용한 지구전 등을 효과적으로 구사했다. 베트남군은 성곽과 다리, 건물과 도로를 파괴하고 몽골군의 식량이 될 수 있는 모든것들을 전소하는 형태로 완강히 저항했다. 여름엔 습기가 많아 풍토병에 걸리기 쉽고 겨울에는 추운북부 베트남의 기후도 몽골군을 괴롭혔다. 몽골군은 쉽게 수도를 점령했지만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에 시달려 더는 공격을 전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화의를 요청하는처지에 몰렸다. 드디어 베트남군의 반격이 시작됐고 몽골군은 허겁지겁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2차전 – 몽고의 두 번째 굴욕(1284년)

몽골은 1284년과 1287년에 또다시 대규모로 2차와 3차 침입을 단행했으나 더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1284년 원나라의 쿠빌라이칸(Quibilai)은 송나라를 정복(1279)한 후 군세를 정비해 50만 대군을 동원해 베트남을 침공했다. 베트남군은 필사적으로 항전했으나 수비사령관이 전사하고 수도 탕롱성이 함락됐다.
당시 베트남 황제 인종이 몽골에 항복하기로 하자 쩐흥다오(Hưng Đạo Vương;1228~1300) 장군은 왕에게, “폐하 항복하려거든 먼저 제 목을 베소서 (Bệ hạ chém đầu tôi rồi hãy hàng)” 라고 만류했다. 그리고는 군사들에게 ‘격장사’, 즉 힛떵시(Hịch tướng sĩ)란 글을 지어 장수와 병사들에게 왕조의 위급함을 호소 했다.

그 결과 병사들은 결사항전을 외쳤고, 사기가 급격히 오른 베트남군은 수도를 탈환했다. 쩐흥다오 장군은 베트남의 무더위를 전쟁에 활용하고 수군을 활용하는 등 놀라운 전술전략으로 승리를 거뒀다. 당시 베트남군은 팔꿈치에 ‘몽골군을 죽이자.’라는 글까지 써가며 죽을 각오로 저항했다. 그 결과 몽골군은 연전연패하면서 사령관까지 전사하자 후퇴하고 말았다.

3차전 – 밧당강의 치욕, 원제국의 완패(1287년)

이에 격분한 원나라의 쿠빌라이칸은 일본 원정을 포기하고 1287년 다시 아구룩씨(Agurucxi)의 지휘하에 30만명의 수륙군을 동원해 베트남을 침공했다. 2차 전쟁 때 베트남 해군에 당한 빚을 갚아주기 위해 막대한 해군력도 동원했다. 당시 베트남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채 20만명도 되지 않았는데, 쩐 장군은 이 같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유격전술을 써 몽골군의 식량 조달을 막았고, 지속적인 게릴라 전술로 적의 병참선을 마비시켰다. 무더위와 열대병으로 고전하던 원나라군은 식량 조달마저 여의치 않게되자 다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쩐 장군은 후퇴하는 몽골군을 상대로 밧당(Bạch Đằng) 강을 이용해 완패시켰다. 베트남사가들은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는 밧당(Bạch Đằng)강의 밀물과 썰물의 높이 차이가큰 것을 활용해, 먼저 썰물 때 강바닥에 쇠말뚝을 촘촘히 박아두었다. 그러고는 밀물이 되면서 쇠말뚝이 보이지 않게 되자 몽골군을 강 깊숙이 유인한 후, 썰물 때까지 필사적으로 강력하게 저항했다. 이윽고 썰물 때가 되면서 강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배 위에서 베트남을 공격하던 원나라의 전함들이 쇠말뚝에 걸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베트남군은 바로 이때를 노려 불화살과 돌을 날렸다. 베트남군의 맹공격에 사기가 떨어진 몽골군은 무력하게 쓰러졌다. 전투가 끝났을 때 10만 구의 원나라 병사 시체가 밧당(Bạch Đằng)강에 떠다녔다.”

이처럼 베트남은 중국 역대 왕조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평화정책을 채택했지만, 사대주의는 결코 아니었다. 즉,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처럼 중국에 조공을 바쳤지만, 중국이 야욕을 갖고 자국의 영토 내로 쳐들어올 때는 단호히 대처하여 민족의 독립을 지키고 백성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시대별로 살펴보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전쟁들

● 흥브응 Hùng Vương 과 안증왕시대 ( ~ 938년)
진나라 등 역대 중국왕조와의 항쟁기 (기원전 2, 3세기)
비엣 떤 (Việt Tần ) 전투
하이바쯩 Hai Bà Trưng 봉기
바찌우 Bà Triệu 봉기
응오 전투 밧당 Bạch Đằng 강에서
● 중세 봉건시대 (939년~1858년)
송나라와의 1차 항쟁 (981년)
송나라와의 2차 항쟁 (l075~1077년)
몽고-원나라와의1차항쟁 (1258년)
원나라와의 2차 항쟁 (1285년)
원나라와의 3차 항쟁 (1287~1288년) 밧당
Bạch Đằng 전투 (1288년 4월 9일)

명나라와의 항쟁 (1406~1427년)
씸 (Xiêm; 태국)과의 항쟁 (1784~1785년)
베중전쟁 (1858 ~ 1945년)
● 1945~ 현재 (근, 현세)
프랑스 식민주의자와의 항쟁
딩빙푸 (Điện Biên Phủ) 전투1954년 3월 13일~5월7일)
베트남전쟁 (1955년 11월 1일~1975년 4월 30일)
호찌민운동 (1975년 4월 26일 ~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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