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March 9,Tuesday

해가 넘어갔다

It’s so cool !!
작년 이맘때쯤 다음해 숫자가 2020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느낌이다. 2020, 인류 최악의 빈곤한 세월을 살아왔던 우리세대에는 허락할 것 같지 않은 멋진 외형의 숫자, 2020가 내가 살아가는 생을 기록하는 한 숫자로 사용 되었다는 것이 감사할 정도로 멋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새해는 뭔가 괜찮은 일이 일어날 줄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생전 처음 맞는 강제 안식년이란다. 세상이 어느날 자신이 가던 길을 잃은 듯, 또 자신이 하던 일을 망각한 듯, 임자를 놓아버린 시간은 이리저리 널뛰며 세상을 뒤집고 다닌다. 그러던 말던, 여전히 또 한 해가 간다. 이미 바이러스에 함몰된 경자년은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아무도 애석할 것 같지 않은 아쉬움을 삼킨 채 서산으로 넘어간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이다.
신축년(辛丑年)은 여유와 평화를 상징하며, 근면 성실하지만, 깊은 한이 담긴 선하고 슬픈 눈 망울을 지닌 소띠 해이다. 12지 중의 소는 방향으로는 동북, 시간적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 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두 개로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것과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씨앗이 땅 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올해도 또 참고 인내하라는 의미인 듯하다. 그래 이미 지나간 해, 2020은 아쉬움 없이 보내버리고 첫 숫자가 1로 시작하는 2021을 다시 시작점으로 잡고 재 출발을 해보자는, 나이만 많은 철없는 소년의 기대를 새해 아침에 걸어본다.

베트남 한인사회 큰 어른, 차상덕 옹 타계 모든 생명체에 내린 조물주의 유일한 약속, 죽음.
세상 모든 시작과 끝은 늘 조우한다. 시작과 끝이 원래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또 다른 시작이다. 조물주가 모든 생명체에 숨을 불어 넣어주며 약속한 유일한 진실이 죽음이다. 매 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하늘로 보내고 난 후 마지막 달력을 떼어내고, 우리도 역시 주님의 유일한 그 약속을 향해 다가서기 위해 새로운 달력을 건다. 달력이 걸린다는 것 그 자체가 종말, 죽음을 약속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달력에 걸린 모든 기대와 의미가 사라진다. 세상에 죽음을 이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신년이 시작된 지 하루 만에 우리 교민사회에 비보가 들렸다. 호찌민 교민사회의 가장 큰 어른이신 차상덕 옹(1930- 2021)이 1월 2일, 만 92세를 보름 남기고 타계하였다. 슬하의 자녀는 없다. 차 상덕 옹은 베트남 그것도 호찌민 교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분을 모르고 호찌민에서 지내셨다면 그는 진짜 간첩도 못 되는 신세다.

차옹은 1965년에 미국건설회사의 파견근무자로 베트남에 진출하였다, 전쟁 후 1995년 베트남에 재 입국하여 교민사회의 중추돌로 자리 매김한다. 그리고 지난해 지병으로 한국에 들어가신 후 고국에서 영면했다 차옹은 호찌민교민사회의 원로회 노인회장 등을 맡으며 교민사회를 이끌어왔다. 거의 모든 교민사회의 일에 늘 관심을 갖고 조언을 하곤 했다. 호찌민 교민사회에서의 고인의 위상에 대한 설명을 말씀드리면 특별히 어느 단체의 장이라기 보다 한인사회 전반적인 일에 관하여 함께 상의하며 이 교민사회를 이끌어왔던 큰 어른이라는 인식이 가장 어울리는 설명인 듯하다. 연세가 들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점점 관심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인데, 고인은 오히려 연세가 들수록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만사를 제치고 참석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고인은 어떠한 부름도 외면하지 않고, 그 누구의 손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 세상을 적으나마 인간의 사랑으로 채우려 노력해 오신 어른이다. 고인은 1930년 1월 18일 출생, 1965년 미국의 RMK_BRJ 건설회사의 베트남 주재원으로 베트남에 첫 인연을 맺은 후 평생을 베트남과 함께 삶을 나누었다. 그는 그 후로 월남 전이 끝난 후 95년 베트남에 재 입국하여 원로회, 노인회들 여러 교민단체를 이끌면서 호찌민 한인사회를 리드한 진정한 우리의 이웃이자 어른이다. 원래 장례는 한국에 있는 보라매 병원에서 치뤄졌지만 고인이 남긴 베트남에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01월 03일과 04일 양일간 베트남 호찌민 한인회장장으로 치뤄졌다.

현재 한국 집에 100세 노모를 모신 입장이라 늘 심려되는 일이 있는데, 어느 사회나 그 사회의 가장 큰 어른이 사라지고 나면 그 이후는 어떻게 상황이 바뀔 까 하는 것이다. 글쎄, 아무도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가족간의 질서나 위계가 필요한 가정과는 조금 양상이 다를 수 있지만 여전히 큰 어른의 작은 기침 소리에도 느슨하던 긴장의 끈을 당기던 유교 사회에서는 큰 어른의 존재여부에 따라 그 단체의 형상이 달라 보이곤 한다. 이제 젊은이들이 고인의 뜻을 받들 차례다. 부디 베트남에 거주하는 수많은 고인의 후배들이 그의 뜻을 기려 호찌민 교민사회를 더욱 알차게 성장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마도 고인 역시, 요즘 같은 혼란의 시기에 세상을 떠나는 자신보다 바이러스에 갈길 잃은 이승을 염려하며 숨을 거두었으리라 생각된다. 고인에게 다시 한번 작별의 인사를 올린다. 개인적으로 자주 시간을 갖던 고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니 그와의 작별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디 천국의 평화를 누리소서 !

잘 있거라 사랑하는 세상아.

헤르만 헤세

세상이 산산히 부서져 있다.
옛날에는 우리가 그것을 그토록 사랑했었지.
이제는 우리에게 죽음도
그렇게 무서운 것이 되지 못한다.

세상에 대해 너무 실망하지 말라
세상이 너무나 화려하고 기운차다.
태고의 마술이
아직도 그 모습에 어른 거린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의 훌륭한 유회에서 떠나가리라.
그것은 우리에게 쾌락과 고통을 주었고
사랑을 듬뿍 주었다.

잘 있어라 사랑하는 세상아
다시 젊고 멋지게 가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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