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길이 막히면 창밖을 보세요

십년 전에 응우옌흐우까인 거리에 가면 도로가 뻥 뚫렸었습니다. 랜드마크로는 유일하게 마노(The Manor Apartment) 정도 꼽을 수 있었습니다. 사이공대교를 건너 2군으로 가면 더욱 황량했습니다. 투티엠은 습지여서 웬만해서는 가 볼 엄두도 못내었지요. 지금은 MM메가마켓으로 바뀐 메쪼(Metro) 쇼핑센터 만이 그나마 2군 개발지역의 주인처럼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를 이해하는 일이 보다 단순했습니다. 그때는 파하사(Fahasa)에서 큰 지도를 사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도시의 얼개가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의 단짝이었던 SYM의 아띨라(Attila)는 지금은 눈에 띄지 않지만 당시에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2000년대 말에 들어온 저에게 베트남은 오토바이 천국이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 이 곳에 오신 선배들께는 시클로와 자전거가 시야를 채웠다고 합니다. 지금 베트남에 오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자동차가 많은가 할지도 모릅니다.
정말 차가 많아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방통행이 많고 도로 폭이 좁은 이 도시에서 자동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도로가 몸살을 앓습니다. 이제는 막히지 않는 도로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입니다. 게다가 늘어나는 불법주차와 오토바이 택배들이 혼잡한 도로를 더욱 막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전에는 답답하면 차 타고 나가 한바퀴 돌고 오는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차 타고 나서면 답답함을 더 느끼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히는 도로 위에 있을 때는 창 밖을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무어라도 있어? 물으실 지도 모릅니다. 사실
‘무엇’이 있습니다.
도로는, 거리는, 그리고 길은 참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개체입니다. 특히 도시를 이해하는 데는 길이 중요하고 건축이 중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나면 ‘장소성(場所性)’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디엔비엔푸 사거리에 있는 C빌딩 앞에서 만나요 할 때 그곳은 장소입니다. 거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역사성(歷史性)’이 생깁니다. 장소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지요. 공연문화 건축이 세워진 장소가 전쟁의 종식으로 제헌국회가 되고 이제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모두를 위해 열린 장소가 된 오페라하우스를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건축 자체가 가진 디자인의 힘이 있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힘을 뒷받침하는 것은 역사입니다. 그래서 사이공의 오페라하우스는 이야기를 가진 장소가 되어 사랑을 받게 되는 거지요. 이처럼 길은 장소를 만나고 그 장소가 시간을 담으면서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그것이 역사적 건축, 역사적 장소의 매력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의 길에서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다른 나라의 길들에 비해 더욱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이공의 거리를 다닐 때, ‘이 넘의 오토바이가 왜 이리 많은가’, ‘길은 허구한 날 막히네’ 하며 짜증이 날 때 숨을 한껏 들어 마신 후 차창을 내려 밖을 보시기 바랍니다.
건물이 있으면 거기에 쓰인 주소에 집중해 보세요. 거기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베트남을 이해하기에 한 발짝 더 안으로 들어가 보는 효과입니다.

베트남의 도로 이름 안에는 역사와 인물들이 녹아 있습니다. 이것을 탐구하다 보면 도시를 알아가는 재미가 더욱 쏠쏠해집니다. 내가 있는 곳이 역사와 결부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 장소로 다가오는 것이지요. 하이바쯩에서 똥득탕으로 내려가는 길은 하루 종일 막힙니다. 그런데 하이바쯩이 누구지요? 중국 한나라에 대항하여 베트남 최초의 독립국가를 세운 자매 영웅입니다. 그런데 하이바쯩 거리가 똥득탕 거리와 만나는 장소가 있는데 그 곳을 멜린 광장이라고 부릅니다. 멜린이 어딥니까? 하이바쯩 자매의 고향이면서 독립국가가 세워진 곳입니다. 하이바쯩은 두 명의 쯩부인이라는 의미인데 이 하이바쯩이 시작되는 멜린 광장에는 몇 개의 길도 함께 시작됩니다. 그 중 하나가 티삭입니다. 티삭은 하이바쯩 가운데 언니 쯩짝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녀는 한나라에 항거하다 죽은 남편을 따라 항쟁에 뛰어 듭니다.
그러니 멜린 광장에서 하이바쯩 거리와 티삭 거리가 함께 시작되는 것이 합당한 이치이지요.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그럼 멜린 광장에 왜 쩐흥다오 장군 동상이 있을까요? 여기까지 생각하셨다면 대단한 겁니다. 원래 쩐흥다오 동상자리에는 너무나 당연히도 하이바쯩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통일 이후 철거됩니다. 철거된 사연은 숙제로 드릴 테니 직접 알아보세요. 쩐흥다오 동상이 세워진 연유로 동상 앞 사이공강 부두를 박당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멜린 광장과 맞닿은 길이 똥득탕인 것은 뜬금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요. 하지만 하이바쯩이 최초의 외세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영웅이고 똥득탕이 항쟁에서 이기고 세운 통일 베트남의 첫 번째 주석임을 안다면 그 연관성의 이치에 아하! 하며 무릎을 칠 것입니다.

예를 든 것처럼 이 도시 안에는 이런 얘기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추적하는 실마리가 길의 이름입니다. 길을 통해 장소를 발견하고 이것을 뒤집어 숨은 이야기를 발견해 가는 체험의 여정은 길이 막힐 때 스마트폰으로 맛집을 찾는 것보다 재미있습니다. 이런 저런 정보를 확인하며 이유를 추적하다 보면 어느새 차도 앞으로 움직이고 있을 거고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 도시에 대한 이해도 한 뼘쯤 깊어질 것입니다. 어쩌면 내릴 곳을 잊을 만큼 재미에 빠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차를 타고 가다 길이 막히면 창 밖을 보세요. 이 길이 어느 길인지 건너편 상점의 간판을 읽으며 확인해 보세요. 이 거리는 누구의 이름을 딴 것일까? 어떤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이름이지? 그래서 이어지는 도로가 그런 이름을 가졌군 하게 됩니다. 그러면 레러이 옆에 레라이 거리가 놓인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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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 같은 광고를 하자면, 여러분이 보시는 씬짜오베트남에는 길을 통해 도시를 읽고 장소와 역사를 알아가는 기초적이고 유용한 정보들이 담겨있습니다. 저도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도움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면 이 도시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장소성과 역사성을 지닌 건축의 이야기는 물론 역사와 문화까지 도요. 거기서 얻는 맛집 정보와 쉬어 갈 만한 즐길 거리는 또다른 재미가 되겠지요.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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