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9,Friday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

지난 이야기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끝났지만. 요동벌판을 피로 물들이고 지구전 수성전 청야전으로 버틴 고구려는 농토가 황폐화 되고 많은 전사자를 내고 10만이 넘는 고구려 백성들은 노예로 끌려갑니다. 농토와 농부가 없는 고구려는 한동안 정상적인 경작이 불가능하여 향후 몇년간 대기근을 겪게 됩니다. 세계 전쟁 사학자들도 극찬한 대제국 수 당과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는 국력이 소진됩니다. 하지만 건국이래 다시 없는 고구려의 위상을 자랑합니다. 전쟁 승리로 연개소문 정권은 힘을 받아 독재자의 길을 갑니다.

고려의 탄생
고구려가 중국을 상대로 싸울때 백제와 신라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을까요? 한번 살펴봅시다. 먼저 삼국통일 시대보다 조금 과거로 돌아갑시다. 서기 371년 광개토 대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은 평양성 전투에서 근초고왕에게 패하고 전사했는데, 30년 후 국력을 회복한 고구려 광개토 대왕은 백제를 공격하여 철옹성인 관미성과 (강화도) 한강을 점령합니다. 그후 광개토 대왕의 아들 장수왕은 남진을 계속하여 충주까지 영토를 확장 합니다. 고구려는 패배한 백제 개로왕을 죽입니다. 복수가 끝이 없네요. 한강 유역을 점령한 장수왕은 남진을 계속하여 죽령 이북과 내륙지방 중원까지 (현재의 충주) 점령하고 평양으로 천도한 후 국호를 “고려”로 바꿉니다. [역사학계는 왕건이 세운 고려와 혼돈을 피하기 위해 계속 “고구려”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장수왕 이후 국제 문서에는 전부 고려라는 국명이 사용 되었고 고구려가 진출한 중국 영토에도 고려촌 이라는 지명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강력해진 고구려를 상대하기 위하여 서기 433년 백제 비유왕과 신라 눌지왕은 동맹을 맺고 고구려 침략에 공동 대응하기로 약속 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조약인 나제동맹 혹은 공수동맹이라 불리는 국가간 조약이 탄생합니다.
신라는 걸출한 군주 진흥왕으로 급속한 발전을 하던 시절에 백제 성왕과 함께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합니다 백제는 한강 하류를 (서울 인천지역) 차지하고 신라는 한강 상류를 차지 하였는데 신라 진흥왕은 약속을 어기고 백제가 차지했던 한강 하류 지역을 공격하여 점령합니다. 그후 신라는 대중국 교역 및 외교 루트를 확보하여 삼국통일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원교근공” 백제의 전략
한편 진흥왕에게 배신 당한 백제의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입니다. 분노한 백제 성왕은 120년간 지속되던 나제동맹의 파기를 선언하고 서기 553년 관산성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고 있던 신라군의 역습으로 3만의 백제군은 전멸하고 성왕도 전사합니다. 그이후 백제는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갑니다. 성왕의 아들 위덕왕은 45년 재위기간 동안 국력을 비축하고 군대를 양성하며 복수 기회를 노립니다. 혜왕 법왕을 거쳐 50년을 기다린 후 백제 30대 무왕은 고구려 중국 왜 등 주변국과 외교를 맺고 신라와 치열한 전쟁을 치릅니다. 즉 “원교근공” 입니다.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을 죽인 신라 무력 장군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셋째 왕자이며, 김유신의 할아버지) 신라에서 입지를 굳히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이후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진흥왕의 친동생 숙흘종의 사위가 되는데 김서현은 숙흘종의 딸 만명과 결혼전에 관계를 가져 김유신을 잉태 했습니다. 아버지 숙흘종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친 만명은 부모 몰래 도둑 결혼을 하고 김유신을 출산합니다. 성골 출신의 여인을 아내로 맞은 김서현은 출세가도를 달립니다. 김유신은 할아버지 아버지 2대에 걸쳐 딲은 토대를 딛고 발전합니다. 신라는 관산성 전투후 가야를 병합하고 강원도 및 함경도 일부까지 진출하여 영토를 확장합니다. 그러나 진흥왕 사후 왕위 계승 문제로 분열되어 혼란을 겪고 정체기를 거칩니다.

신라의 요충지 대야성 함락
서기 641년 백제의 마지막 국왕 의자왕이 즉위하자 주변국들과 외교를 다지고 성왕 전사 후 강해진 귀족들의 권한을 축소 시킵니다. 또한 지략의 귀재 성충과 전쟁의 달인 윤충 형제를 중용하는데 [원래 이름은 부여 성충과 부여 윤충인데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 성충과 윤충으로 표시 하겠습니다] 이들 형제는 신라의 김춘추 김유신 조합에 비교될 정도의 인재들 입니다. 의자왕 즉위 이듬해 고구려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백제와 신라는 큰 전환점이 되는 대야성 함락 사건이 터집니다. 신라의 요충지 대야성 함락에는 슬픈 사연이 있는데요 한번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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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 (지금의 경남 합천) 성주 김품석은 신라의 권력자 김춘추의 사위가 된 덕분에 대야성주가 됩니다. 그러나 김품석은 행실이 개차반이라 예쁜 여자를 보면 반드시 꺾어야 직성이 풀리는 개 망나니 입니다. 대야성의 젊은 장군 검일은 소문난 미녀와 결혼 했는데 김품석은 검일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검일을 출장 보낸 후 김품석은 검일의 아내를 겁탈하고 검일을 감옥에 가두고 협박합니다. “만약 네가 나의 첩이 되지 않으면 네 남편을 죽이겠다” 검일의 처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승락 했지만 곧 독살 됩니다. 자결인지 김품석의 아내 고타소가 독살한 것인지 확실 하지는 않습니다. 이에 검일은 반감을 품고 백제의 윤충 장군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연과 함께 백제에 투항 하겠다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후 윤충이 거느린 백제군 1만이 대야성을 공격할 때 윤충의 지시대로 검일은 식량 창고에 불을 지르고 성문을 열어 대야성은 백제에게 함락 당하고 김품석 부부는 참수 됩니다.
대야성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복수를 다짐 하지만 당장 김춘추에게 불똥이 떨어집니다. 사위라는 이유로 능력도 없고 행실도 엉망인 김품석을 대야성 성주로 임명한 책임 추궁을 당합니다.
김춘추는 고구려와 당나라 양대 강대국의 지원을 받아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려고 외교 사절을 자원합니다. 김춘추는 먼저 고구려를 찾아갑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가 수나라와 전쟁을 할때 신라는 고구려 남쪽을 공격하여 영토를 뺏은 과거를 거론하면서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주면 신라를 지원 하겠다” 라고 대답 합니다. 고구려의 속내를 파악한 김춘추는 당 태종 이세민을 찾아가서 당과 신라가 힘을 합쳐 삼국통일을 하면 대동강으로 국경을 정하자는 제의를 합니다. 우리역사에 처음으로 삼국통일 용어가 등장합니다.

신라의 최고 권력, 김춘추와 김유신
당과 동맹을 맺은 신라는 644년 고구려 남쪽 변경을 공격했으나 연개소문의 반격으로 철군 합니다. 이듬해 645년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 했을 때에도 신라는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고구려의 동맹국인 백제의 견제로 실패합니다. 과거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도움을 받았던 신라는 수 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할 때도 고구려를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시킨 전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간의 은혜는 개인과 달라서 “현재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 라는 점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될때가 많아서 신라의 경우 고구려를 배신한 것인지 정당한 판단 인지는 필자도 알 수 없습니다. 고 당 전쟁 2년 후 서기 647년 신라는 내분이 발생하는데 상대등 비담의 반란 사건 입니다. 비담의 반란 사유는 여자가 왕위를 계승하여 신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김유신의 활약으로 반란은 평정되고 김춘추와 김유신은 신라의 최고 권력을 회득합니다.
망국 금관가야의 왕족인 김유신 집안은 신분 상승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가문 입니다. 할아버지 무력 장군은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킨 전쟁 영웅이며, 아버지 김서현은 신라의 금기를 깨고 성골인 만명공주와 결혼하여 김유신을 낳았습니다. 김유신의 증조부 구형왕은 전쟁 없이 자진하여 금관가야를 신라에 귀속시킨 금관가야 마지막 왕 입니다. 망국의 왕족이나 귀족이 진골로 편입된 경우는 김유신 집안이 처음이자 마지막 입니다. 하지만 가야계 진골이라 신라 정통 명문 진골보다 많은 차별을 받아서 성골과 혼인할 수 없는 진골이었고 명문 진골 집안보다 승진에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김무력과 아버지 김서현이 노력했던 것 처럼 김유신도 승부수를 띄웁니다.

성골에서 진골로 강등된 김춘추를 주목한 김유신은 여동생 문희와 김춘추를 계략으로 결혼 시킵니다. 그후 문희는 삼국통일을 완성시킨 문무왕 김법민을 출산하게 됩니다. 이렇게 결합된 김춘추 김유신 조합은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고 김유신 집안은 신라 최고 명문가로 변합니다.
생존 게임으로 변한 삼국의 투쟁이 종착역을 향해 갈때,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사망하고 후계 문제로 남생과 남산 형제는 치열한 내전을 벌입니다.
백제는 현명한 군주 의자왕이 암군으로 변해 사치와 향락에 빠집니다. 상좌평 성충과 좌평 흥수를 하옥 시키고 성충의 동생 윤충을 배척 합니다. 백제의 세 충신이 모두 의자왕의 버림을 받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진흥왕 이후 정체기를 벗어나 도약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다음 이야기
삼국통일의 기회를 잡은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이어 내분으로 혼란해진 고구려까지 멸망시킵니다. 이어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군을 회유하여 연합군을 형성하고 한반도를 삼키려는 당나라를 몰아냅니다. 민족 개념이 형성되는 삼국통일의 완성. 다음 시간에 살펴봅시다

전 종 길
영남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前 (주)대은영상 대표,
現 아마추어 사학가 활동,(주)하나로 축산 대표
Kakao talk ID : jeonjongkil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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