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0,Saturday

스파이더맨

나는 스파이더맨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별딱지에 그려진 스파이더맨 때문에 치지도 않는 딱지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슉, 슉, 입으로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손바닥을 뒤집어 거미줄 발사하는 시늉을 하며 사촌동생들과 함께 동네 골목을 누비기도 했습니다. 물론 단지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사촌동생들이 빌런 역할을 해야 했음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만일 그때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가 스파이더맨과 어벤저스로 한 팀을 이룰 수 있음을 알았다면 그들도 멋진 역할 한자리쯤 꿰어 찰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제일 많은 수로 한 팀을 이룬 것이 ‘사이보그 009’와 ‘독수리 5형제’였는데 우리는 아홉도, 다섯도 아닌 불과 셋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유로 2002년, 대한민국이 월드컵 열기로 잔뜩 흥분되었던 그 해에 스파이더맨이 실사영화로 나왔다는 또 하나의 이유로 흥분하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릴 적 시내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건네 준 잡지 새소년을 받아 펼쳤을 때 풍겨 나오던 새 책 특유의 기름냄새, 건강에는 분명 좋지 않았을 그 냄새를 콧구멍을 넓혀 킁킁거리며 한껏 빨아들인 후 행복해했던 그 때처럼 실사영화가 되어 돌아온 스파이더맨은 예고편만으로도 그의 부착력 강한 거미줄로 내 마음을 꽁꽁 동여매어 버렸습니다.
그 시절 나는 이미 삼십 대 중반을 훌쩍 넘겼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두었음에도 아이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 들어서던 우리는 같은 정신연령대를 누리던 행복한 부자지간이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빌딩 숲을 거미줄을 타며 종횡무진 헤쳐가는 도시의 영웅. 몸을 뒤로 한껏 젖혀 그 반탄력으로 다음 거미줄을 잡아채는 그의 동작은 어느 체조선수보다 힘 있었고 유려했으며 아름다웠습니다. 허리가 두 동강 나지 않는 한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도심 활공은 최고였고 압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세차게 날아가서 유리벽에 붙을 때는 사뿐! 너무 멋져서 기가 막힐 정도였습니다. 주연이었던 토비 맥과이어도 감독인 샘 레이미도 훌륭했습니다. 물론 원작 스토리를 꿰고 있던 내게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엠제이가 그웬 대신 먼저 연인으로 출연한 부분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정도는 영화 스킨에 살짝 난 흠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 정도로 스파이더맨 1편의 감동은 대단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노트북 바탕화면을 스파이더맨으로 도배하고 다녔을까요.
피터 파커가 슈퍼 영웅으로 각성하는 데에는 벤 삼촌의 영향이 컷습니다. 그는 죽기 전 조카에게 이런 멋진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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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힘에 대한 책임이란 그것을 다해야 하는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힘이란 특별한 책임을 느끼며 사용하게 될 때 특별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힘은 힘으로써의 역할과 책임을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최근 어떤 일로 인허가 진행에 직접 참여하면서 새삼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허가를 신청하는 내용이 법정 규정을 준수하고 절차를 지켰다면 사실 두려울 게 없어야 합니다. 책임을 다했으므로 마땅한 권리가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허가 서명을 받기까지 정한 일자에 행정진행이 안되어도 마음이 두렵고 머리가 조아려지는 것은 민원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연에 대한 책망도 우리의 몫입니다. 힘을 가진 주체가 우리가 아니므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한국도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권한을 가진 이는 군림하고 싶어하고 목을 꽃꽂이 세우기를 원합니다. 거리에서 인사 받고 싶어하고 많은 이들이 그가 힘이 있음을 알아봐 줌에 흐뭇해 합니다. 더 나아가 가진 힘을 부리고 상대에게 위협의 냄새를 풍겨 그들이 조아리는 것을 즐기는 이도 있습니다. 소위 ‘위력(威力)’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권력형 성폭력에 등장하는 이 단어도 알고 보면 힘이 풍기는 냄새에 질려 두려움을 가진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어디 그런 심각한 상황 뿐일까요. 선거철 반짝 겸손하고 힘을 가지면 국민에 대한 책임감이란 무거운 짐은 어디에 팽개쳤는지 찾을 수 없는 이들, 그들이 대의민주주의 시대에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책임은 자신들의 극렬지지자들과 속한 정당과 개인의 명예와 이익에 대한 책임이기만 할까요.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정당의 목적이 오로지 정권을 갖기 위함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절대로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기대를 걸만 한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책임은 내팽개친 채 귀를 닫고 변명과 자화자찬만 늘어놓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위정자만 그러할까요? 기업의 경영주라면 어떠할까요? 자산가라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의 공무원도,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지식인들은 어떤가요?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들,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들, 이런 대상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잘라 말하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가족관계에서도 타당한 진리입니다. 가장이 가진 힘의 크기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동등합니다. 그러므로 힘은 갖고 휘두르고는 싶은데 그에 따른 책임은 묻어두고 싶어하는 요즘 세상에 벤 삼촌의 말은 더욱 옳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힘에는 그에 맞는 책임이 따릅니다.
베트남에서, 또 교민사회에서 내 손에는 어떤 힘이 주어져 있나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힘은 누구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주어진 것일까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어깨에 얹힌 책임의 무게를 통감한다면 그에 걸맞게 행동하면 됩니다. 그러나 혹여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손에 꽉 거머 쥔 힘을 차라리 풀어 놓을 일입니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행복의 길입니다. 진짜 영웅의 길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 노트북의 바탕화면을 장식하는 이미지는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배트맨입니다.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배트맨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감동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베일은 배트맨 비긴즈를 시작으로 기존 캐릭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장중한 단조의 음계를 가진 클래시컬한 이미지의 배트맨을 창조했습니다. 아니, 배트맨이 진짜 누구인지를 이전의 모든 이미지로부터 해체하여 그 본질을 끌어내 재구축했습니다.
배트맨 짱입니다!
스파이더맨 미안해. 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 이해해 주리라 믿어.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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