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August 5,Thursday

함께 맞는 비

몇 년 전에 한국에서 한때는 대권후보로 나섰던 적이 있는 유명 정치인이 베트남을 개인적으로 방문했을 때 함께 저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양반은 베트남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던 터라 저같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얘기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분과 그를 수행하는 몇몇 분들과 함께 베트남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마지막에 그분이 하는 말씀이 “이제 우리는 베트남에 잘 해주어야 합니다” 라고 합니다.

얼핏 들으면 당연하고 좋은 말이긴 한데, 묘하게 저는 그 말이 조금 거슬렸습니다.
뭐 까탈스럽게 말꼬리를 잡는 듯하여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혹시 이 말이 아무렇지 않게 들리는 사람은 그 대상을 우리보다 잘난 국가로 바꿔서, 즉 “이제 우리가 미국에 잘 해 주어야 합니다” 라고 말을 해보면 그
뉘앙스의 차이를 느낄 것입니다. 미국을 상대로 그렇게 말 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결코 그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말에 내재된 사고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그 말에서 보이는 화자의 사고에서는 ‘우리’ 라는 자리가 잘 해 주어야 할 대상보다 상위에 있다는 느낌입니다. 즉, 평등한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친구의 기본 조건이 평등과 호혜라면 스스로 차별을 두는 마음으로는 진정한 우정을 기대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해 준다는 말을, 여유 있는 쪽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도와준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것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움을 주는 쪽의 평등한 마음 자세를 말한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은 위로는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위로의 대상이라는 것은 확인시켜 주기 때문에 진정한 도움이나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움 역시 평등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평등한 눈높이로 접근해야만 진정한 도움도 이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도움이지, 같이 비를 맞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 하는 반문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말의 핵심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물질만이 아니라 받는 측의 마음도 고려하는 도움이야 말로 진정한 봉사이자 나눔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봉사활동을 ‘나눔’이라고 표현한다면 함께 비를 맞는다는 말을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점차 물리적 혜택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고 정신적 보상에 대한 의미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시대적 변화를 감지한다면 봉사활동에 임하는 자세가 어때야 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호 씬짜오베트남에는 호찌민 해병대 전우회 회장과 대담을 나눈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그 해병 전우회에서는 예전에 청룡부대가 주둔하던 베트남 중부의 꽝남성 소재 몇 학교에 장학금과 학습기자재를 연례적으로 기증하는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 그 지역 주민들의 자세는 별로 달가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준다니까 받기는 하지만 별로 기뻐하는 모습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 활동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10여년
이상을 해오다 보니 진심이 통했는지 지금은 대대적인
환영으로 해병 전우회를 맞아 준다고 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초기에 그들은 해병 전우회의 조건 없는 지원에 대하여 애매한 자세를 취했을까요?

물론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던 점도 있겠지만, 결국은 진심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돕겠다는 사람들의 행위에 어떤 마음이 담겨있는 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같은 눈높이로 나눔을 실천하고 싶은 것이지, 그저 과시용 우산을 던져주고 싶은 것인지 말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10년 이상 지속하니 과시용으로 처리되는 일회성 활동은 아니라는 것은 인식하고 마음을 열어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다 함께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넘치는 물질이 아니라 낮은 자세로 임하는 나눔의 마음입니다.

잡지를 운영하다 보니 많은 단체의 봉사활동에 관한 소식을 자주 접할 기회가 생깁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일부 단체에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홍보의 수단으로 봉사활동을 활용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 활동일 수록 행사가 요란합니다. 그리고 그 활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관계없는 인사들도 멋진 미소로 사진을 찍으며 증거를 남기기 위해 열심입니다.
이런 식의 행사에는 대체로 봉사활동으로 들어가는 비용보다 행사비용이 더 많이 지불됩니다. 요즘 신조어로, 봉사의 대상에 마음이 가지 않는 노룩 봉사입니다. 우산을 펴지만 마음은 접습니다. 마음은 우산 위에 인쇄된 자신들의 이름을 보는 세간의 시야를 따라갑니다.

현실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단체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봉사활동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홍보의 기대에서 자유로운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봉사활동을 가볍게 접근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도 그저 홍보의 수단으로 폄하되는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니, 먼저 자신의 자세를 돌아봐야 합니다. 진정으로 평등한 자세로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또한 고양이 손 만한 봉사를 준비하면서 황소 같은 소문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 지도 자문해 봐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서 말씀을 실천할 생각이 있는지도 함께 말입니다.

친구들이 액수에 관계없이 주머니를 털어 모두 함께 먹는 식사처럼 생색도, 내색도 하지 않는 평등한 나눔이 바로 함께 맞는 비의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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