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고전에서 길어 올린 ‘깊은 인생’: 스승을 찾아서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어야 할 숙명을 타고난 자들이다. 뛰어넘기 위해 뛰어넘기 힘든 사람을 곁에 두고 지켜보며 배우는 것이 제자 된 자의 몫이다. 스승이 자신의 삶에 등장하는 건 순전히 우연에 기대어 있다. 그 우연을 설명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준비된 자, 간절한 자가 스승을 만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아무도 가지 마라는 그 길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스승은 나타난다. 왜냐하면 스승이란 사람들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위험하다고 말할 때, 바로 그 길이 네가 유일함으로 가는 길이라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流水之爲物也 不盈過不行, 채우지 않고는 흐르지 않는다. 맹자(孟子) 에 나오는 말이다. 물은 웅덩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채우고 나면 다른 웅덩이를 찾아 흐른다. 모자라면 채우고, 채운 뒤엔 반드시 또 다른 질문을 찾아 흐른다. 이 때, 비로소 우리가 흘러갈 때, 스승은 홀연히 나타난다.

우리는 평범하다. 지독하게 평범하다. 그런 우리를 두고 스승은 그대의 평범이 위대함으로 가는 길이라 말한다. 스승은 꿈이라는 것을 손에 쥐어 주는 사람이다. 나 자신의 미래에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 미래의 설계도를 그릴 수 있는 윈도우 최신버전을 내 정신에 깔아 준다. 30대, 우리는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길 위에 있다. 꿈이 하나 있는데 꿈을 좇는다면 당장 생존을 고민해야 하고 꿈을 좇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후회하며 살 것 같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늘 말해왔다. ‘네 자신의 오지로 들어서라.’

사람들이 가지 않은 오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 길로 들어서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자신의 길로 선택한 평범한 사람은 먼저 자신의 문제를 풀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자기라는 오지를 풀어 가는 첫 번째 출발지다. 나라는 오지, 나라는 수수께끼, ‘나’ 라는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나’ 라는 사람이 걸어 간 오지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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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실현해 나가는 길은 칼날 같은 천 길 낭떠러지를 등반하는 일과 같다. 누구든 그 길에서 종국으로 떠밀리는 느낌을 받는다. 거기서 나를 갈가리 찢는 데는 한 입자의 바람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인류가 힘을 모두 합치더라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스승은 내 등 뒤에 버티고 선 인류다.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삶은 황홀하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한 번도 다른 배역을 맡아 보지 못하고 한 곳에서 하나의 배역에 그치고 말 때, 그것은 항구를 떠나 본 적 없는 배와 같다. 스승은 배를 진수進水 시킨다. 항해를 위해 뱃고동을 울리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항해할 수 있도록 육지에서 지그시 바라보는 사람이다.
스승은 먼데 있지 않다. 주위를 샅샅이 수색하면 나에게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직장을 다니며 없는 시간을 쪼개 마음에 두었던 공부를 하며 스승과 동료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쉽지 않다. 우린 한 달 살림조차 빠듯한 월급쟁이 아닌가.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쌓인 업무를 치우고 스승 찾는다고 냅다 달아날 수가 없다. 사람은 만나야 맛이다.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느끼며 알아가는 재미와 성취가 사람에겐 가장 커서 스승의 존재가 사람이면 가장 좋지만 격리와 제한의 시대에 스승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렇지만 위기지학(爲己之學), 의젓한 한 인간으로서 인격적 완성을 위한 것이 배움이라면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책이다. 책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을 활자로 품고 있다. 인류가 세대를 이어오며 검증에 검증을 거쳐 살아남은 오래된 책을 집어 들자.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가장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저자를 찾아내고 그들의 생각을 진득하게 읽어 내리자. 죽은 지 족히 백 년은 넘은 저자를 고르면 좋을 것 같다. 그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어떻게 예견했는지, 그들이 살던 시대를 그들은 어떻게 파악했는지, 과거와는 또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 인간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래서 자신을 어떻게 알아 갔는지를 참조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책을 고르진 말자. 위대한 스승은 어렵게 얘기하지 않는다. 또한 글을 쓴 저자들은 죄다 죽은 자들이라는 걸 명심하자. 대대손손 찬양 받았던 사람이더라도 그들은 죽었다. 그들의 생각과 사유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살아 있는 우리가 갑이다. 그들은 죽었으므로 가능성이 없고 우리는 살아 있다는 자체로 그들을 밟고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생각을 차용하되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반드시 연결시켜야 한다. 그들이 하는 말을 받아 “그래서 나는?”하며 물어야 한다. 그리하면 그들은 우리의 좋은 스승이 되고 우리는 인류의 저작들을 토대로 나만을 위한
‘스승 line up’을 만들어 언제 어디서든 내 앞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된다. 30대에 인생의 스승을 만난다면, 다음 30년은 분명 그 스승을 넘어서게 되리라.

장재용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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