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가슴에 묻어 둔 이야기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초기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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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누군가를 위해 좋은 것을 만들어주고, 그리고 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더 나은 것을 만들어 줄 때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사는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 누군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나 환경에 있다면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은 주위의 격려가 아닌가 싶다.

11-5나는 최근 홍지청 하노이 한국학교 초대 행정실장 겸 이사회 사무국장께서 그간 2년간의 위암 투병 끝에 지난 2월 지리산 자락에서 홀로 쓸쓸히 사망하여 유골이 어딘가에 뿌려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슬픔과 공허함과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고, 그간 가슴에 묻어두었던 고인과 하노이 한국학교 초기 설립이야기를 처음 소개한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내가 2004년 8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주베트남대사관에서 교육업무를 담당했는데, 하노이에 부임했을 당시에는 형편상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못하는 하노이 거주 학부모들이 사과나무 학교라는 이름으로 홈스쿨을 운영하고 있었다.

평소 안면이 있는 박선종 선교사가 어느 날 나를 찾아와서,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을 계기로 여러 차례 나의 안내를 받아 학부모님들을 중심으로 설립 추진위원회를 2004년 5월 결성하여 10만 불의 설립자금을 모은 후, 나에게 호치민 한국학교 설립의 노하우를 하노이에서도 펼쳐줄 것을 간절히 요청하였다. 하지만 나는 학교설립과 운영이 얼마나 힘든지 이미 호치민 한국학교 설립경험을 통해 알기에 선뜻 나서기를 망설였지만, 박선종 선교사의 열정과 학부모들의 강한 의지에 탄복하여 결국 당시교민 자녀의 교육에 관심이 높았던 김의기 주베트남대사(현 부영건설 대표)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사관 명의로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나는 또 다른 험난한 여정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두려움도 앞섰지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을 위한 첫 준비작업을 위해 김정인 하노이 한인회장을 비롯 한인사회 각계 각층 대표를 이사로 영입하여 이사회(2005.12)를 구성하였고, 2006년 베트남 교육부와 우리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하노이 신도시(Tu Liem) 내 베트남 사립 초등학교 건물 4층을 임차하여 2006년 학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하노이 한국학교가 베트남정부(베트남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기까지 과정이 호치민 한국학교 설립과 비교해서 훨씬 어려움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98년 주호치민 총영사관 부속 호치민 한국학교 설립 당시에는 “외교기관이 운영하는 외국인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아 호
치민 인민위원회(시청)와 외무성 남부사무소의 외교적 판단으로 복잡한 절차 없이 호치민시 인민위원회의 허가가 나올 수 있었지만”, 하노인 한국학교는 관련법이 정비된 상태에서 일반 국제학교의 설립허가에 따르는 절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상적인 국제학교 허가 시 요구하는 막대한 자본금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법인 하노이 한국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차례 끈질긴 외교 교섭 끝에 사과나무 학교 학부모들이 모은 10만 불의 자본금과 대사관의 보증 공문, 그리고 교육부 파견 교장을 학교 대표로 하는 방대한 양의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허가 신청서를 작성하였으며, 이와 함께 대사관이 추인(Endorse)하는 방식으로 하노이 한국학교 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다.

허가과정에서부터 힘들게 출발한 하노이 한국학교가 2006년 4월 비좁은 임차건물에서 첫 수업을 개시하던 날(공식 개교식 전), 나는 학부모님들 앞에서 대사관을 대표하여 인사말을 했는데, 무미건조한 인사말보다는 학교 비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이 비좁고 열악한 임차 건물에서 수업을 감내하고 있는데, 만약 신축건물에 대한 학교 미래 비전이 없다면 학부모들이 얼마나 실망하실까 생각하니 나 자신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2~3개월 안에 학교건축기금 2백만 불 모으겠다고 약속을 하고 말았고, 그 약속으로 인해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모금만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 쏟았을 수 밖에 없었다.

하노이 한국학교 건축기금 마련에 있어서 초기 200만 불의 모금달성은 학교부지 조기확보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건축설계 등 실질적인 학교건축을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낼 수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하노이 한국학교는 한인 단체 중심모금의 구심점이 약했기 때문에 대사관이 나서서 신축모금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98년 IMF 위기 중에서 소액기부로 출발해 2년간 40만 불의 호치민 한국학교 건축모금 경우와 달리 하노이 한국학교 건축기금 모금은 전혀 다른 전략, 즉 대기업 위주의 모금방식의 속도전을 전개하였으며, 특히 김의기 대사님은 신한은행장 등 개인 친분이 있으신 분과 베트남방문 대기업 대표들을 적극 설득하였다.

반면 나는 SK텔레콤, 신한은행 하노이 지점장 등 하노이 주재 대기업 법인장들에게 각각 50만 불, 30만 불 등 각 기업의 사정에 맞게 기부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거의 매일 기업들에게 읍소하면서 수개월 만에 200만 불을 모을 수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5천 평의 토지 매입과 건축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2007년 귀국 후 여러 사정으로 수년간 한국학교 건축이 담보상태로 있었지만, 결국 하노이 교민사회와 대사관이 하나가 되어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감내하면서 학교의 명맥을 유지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또 다른 우리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지 않았나 생각하며, 이 지면을 빌려 하노이 한국학교 초기 선생님들과 학부모,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참고로, 호치민 한국학교 설립의 시발점이 된 것은 70여 명의 학부모들이 총영사관에 학교 설립을 요청하는 연대서명과 한국 언론 호소 등으로 호치민 한국학교 설립의 절실함을 안 서건이 총영사의 특단으로 설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당시 호치민 상사협의회 신상호(코오롱 상사 호치민 지사장, 총영사관 부속 토요한글학교 이사장)회장을 호치민 한국학교 이사장으로 영입했고, 이에 따라 손영일 코오롱상사 과장(현 OKTA 호치민 지회장)도 한국학교 이사회 사무국장으로 영입되어 나와 함께 협력하여 호치민 학교설립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물론 자원봉사자인 이사진들과 한인사회 각계각층이 일치단결 하였기에 98년 IMF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및 일부 중소기업의 기부금을 포함하여 2년간 40만 불 모금이 가능했다.

박선종 선교사가 학교설립 시발점을 제공한 일등공신으로서 학교설립 초기 이사회 업무지원과 학교행정업무를 담당하면서 나와 긴밀히 보조를 맞추었지만, 내가 요구하는 수준의 행정보조를 맞추기에는 벅차했으며, 나도 점점 지쳐가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당시 나는 경제동향 수집 업무와 유학비자 업무, 문화 등 각종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 및 운영, 기금모금 업무는 엄청난 부담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도 사라지고 있을 때쯤이었다.

바로 그때 한국 교육부에서 20년간 근무하시고 조기 은퇴하셔서 하노이에서 생활하고 있는 홍지청 전 교육부 공무원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극 섭외하여, 한국학교 초대 행정실장 겸 이사회 사무국장으로 영입할 수 있었다. 이는 마치 98년 호치민 한국학교 설립 시 내가 손영일 이사회 사무국장을 만난 것과 같은 행운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환상의 콤비였던 것이다.

홍지청 행정실장님은 우리 교육부 내 인맥을 충분히 활용하여 교육부 관련 학교건축전문 설계 전문가 3명을 모셨고,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무료로 현재의 하노이 한국학교 기초설계를 맡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셨다. 가장 쾌적한 교육환경에 부합하는 하노이 한국학교 설계가 이렇게 완성된 것이다.
홍실장님은 늘 나를 앞에서 이끄시면서 근무시간 이후에도 수시로 나를 불러내셔서 하노이 한국학교의 비전과 방향을 역설하셨으며, 현재의 하노이 한국학교 부지 물색을 위해 나와 함께 하노이시 토지국을 방문하여 하노이시 지도를 펼쳐서 현재의 택지개발지구(TU LIEM 신도시 옆)의 학교부지(5천 평)를 찾아냈다.

나는 학교 부지를 찾아낸 후, 이미 그 부지가 베트남학교부지로 내정이 되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어서 불안도 했기 때문에 서둘러 하노이시 자원환경국에 찜 해놓은 부지를 구입한다는 내용의 대사관 공문(보증 Letter)을 송부하였으나, 당시에는 아직 모금이 초기 단계여서 나는 홍실장님과 마음을 졸이면서 거의 매일 하노이시 자원환경국에 드나든 기억이 생생하다. 마침 하늘이 도우려고 했는지 하노이시 자원환경국 직원이 홍실장님의 친한 지인이어서 하노이시 자원환경국도 우호적으로 나왔고, 그렇게 해서 대사관을 대표하여 교육담당인 나와 교장선생님이 공동 사인해서 하노이시 자원환경국과 토지 매입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할 수 있었다. 긴박했던 모든 일들이 다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토지매입 의향서 체결에 앞서 한인사회의 동의를 얻기 위해 대사님을 비롯하여 한인단체장, 이사 및 학교 관계자들과 함께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현재의 하노이 한국학교 부지를 방문하였을 때의 벅찬 감정은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돌이켜 보면, 나로 하여금 호치민 한국학교에 이어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에 다시 한 번 열정을 갖게 한 사람이 박선종 선교사라고 한다면, 한국학교 부지 확보 및 신축 관련 기초 그리고 행정시스템 구축기초를 다진 분은 바로 얼마 전 고인이 되신 홍지청 초대 한국학교 행정실장님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과거를 가끔 잊고 살기도 한다. 나 또한 과거를 잊고 너무 현재와 미래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나는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 당시의 이야기를 외부에 별로 한 적이 없다. 아니 잠시 잊고 살았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있는 곳은 호치민이고, 이제 와서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 초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며, 자칫 자기 자랑으로 비춰질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웠던 게사실이다.

특히, 지금의 하노이 한국학교 발전은 2005년 설립을 위해 애쓰던 분들은 물론 현재까지 10년에 걸쳐 많은 기관과 기업 그리고 개인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이룩되어 진 것으로 그러한 수고 또한 먼저 언급되고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지청 행정실장님의 안타깝고 쓸쓸한 사망소식을 접하고 나서, 그분께서 하노이 한국학교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셨고 애쓰셨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그분의 성품으로 보아 자신의 일을 드러내지 않고 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너무나 잘 알기에 내가 먼저 알려 조금이나마 기억되어지고 평가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더욱이 하노이 한국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이 하노이 한국학교설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애썼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바라건대, 이를 계기로 우리 청소년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사회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위해 좋은 것을 만들어주고, 그리고 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더 나은 것을 만들어 줄 때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사는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 누군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나 환경에 있다면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은 주위의 격려가 아닌가 싶다.

홍지청 선배님의 조용한 죽음을 통해 내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 초기에 홍 선배님을 포함 하노이 교민 여러분들 및 기업대표들과 함께했던 과거의 기억이 이제 다시 생생히 살아나고 있다.

비록 홍 선배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시지 않지만, 그분이 남기고 가신 열정의 소산인 하노이 한국학교가 나날이 발전해 나가고 있고 많은 분들이 지금도 하노이 한국학교 발전과 우리 아이들의 민족교육을 위해 애쓰시고 계시는 한, 홍선배님은 저 하늘나라에서 기분 좋게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시지 않을까?

글 : 주호치민 총영사관 영사 김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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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한국국제학교 HANOI KOREAN INTERNATIONAL SCHOOL

W. www.hanoischool.net
A. Duong Le Duc Tho noi dai, Mai Dich, Cau Giay, Ha Noi
T. 초등학교 04. 7301 5337, 070 8248 2555 / 중등학교 04. 7301 5338, 070 8249 2555 / 행정실 04. 7301 5339, 070 8247 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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