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한주필칼럼-과정을 중시하는 방법

2개월 전 집사람이 한국으로 귀국을 한 후 어쩔 수 없이 혼자 식사를 해결하며 삽니다. 유튜브를 보면서 기억한 레시피를 되 뇌이며 열심히 요리를 하고 나서 냉동실에 얼려둔 밥을 전자렌지에 넣어 녹이고, 냉장고에 있는 김치와 몇 가지 밑반찬을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는 그대로 꺼내서 의자에 앉지도 않고 식탁에 서서 식사를 시작합니다. 첫 숟가락을 뜨며 음, 맛있네 잘 만들었어 하며 자화자찬을 하고 티비 프로에 눈을 보내며 먹다 보니 곧 그릇이 빕니다. 잘 먹었다. 말은 하지만 사실 뭘 먹었는지, 그 맛이 어떠했는지 이미 기억이 안납니다. 아무튼 이제 먹었으니 해야할 일, 귀찮은 설거지를 후다닥 해치웁니다. 그리고 아, 한끼 떼웠다 하며 소파에 길게 늘어집니다. 무슨 과업을 마친 듯한 기분입니다.

죽마고우가 언젠가 저 하고 식사를 하면서 하던 말이 기억납니다. “자네는 참 멋없이 식사를 하는 것 같아” 늘 음식을 마치 일하듯이 후다닥 먹어 치우고 나서 허리는 펴는 저를 보고 한 표현입니다.

오늘 아침, 찬장 안에 먼지가 쌓인 커피도구를 꺼내어 정성스럽게 닦고 깔때기처럼 생긴 통에 커피를 조심스럽게 담아 넣고 그 밑에 물을 채운 다음 전원을 연결하고 커피를 우려냅니다. 열 받은 수중기로 우려낸 커피물을 투명한 잔에 부어 커피의 색을 바라봅니다. 커피 색이 이리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껴봅니다. 그리고 천천히 한모금 마셔봅니다. 목으로 흐르는 커피의 향을 의식적으로 감지하며 넘기니 온화한 커피 내음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맛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미소가 피어납니다

예전 같으면 커피를 내리고 나서 기구를 치우는 게 귀찮았는데 오늘은 기쁜 마음으로 기구를 정성껏 씻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딱아 재조립 한 후 찬장 안에 곱게 올려 놓습니다. 찬장 안 무질서한 다른 그릇들도 예쁘게 다시 정열합니다.

user image

그리고 어제 밤, 밥을 먹고 그냥 둔 싱크대에 남아있는 몇 가지 그릇과 냄비를 씻어봅니다. 스폰지에 퐁퐁을 잔뜩 묻혀 찬찬히 냄비의 구석구석을 닦습니다. 수년째 써왔던 냄비의 브랜드가 Tefal 이고 사기그릇 브랜드가 행남자기 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딴 생각을 하며 설거지를 하느라 관심조차 안주던 사안입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라는 말을 항상 되뇌이며 살았지만, 사실 한번도 실감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어떻게 하는 것이 과정을 중시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조금 깨달은 듯합니다.

그동안 설거지는 귀찮고,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지우고 씻는 일 자체에 관심을 두고 집중을 하니 그 일을 하는 것도 즐거움이 됩니다.

모르고 지나치던 사실도 알게되니 설거지조차 무용한 일이 아니라는 깨닫게 됩니다.

과정 그 자체를 결과라고 생각하면 과정에 자동으로 집중을 하게 되는 듯합니다.

밥 먹는 일도, 열심히 요리한 만큼 멋들어지게 상을 차려서 맛있게 음미하며 먹어야 하는데 티비에 신경을 쓰면서 서서 먹으니 맛도 못 느끼고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도 못하고 힘들여 요리한 노력의 대가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밥 먹는게 귀찮은 일이 됩니다.

현재하는 일에 집중하는 법을 조금 알아가는 듯합니다.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그동안 관성적으로,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일들을 의도를 갖고 의식적으로 행하다 보면 모든 행위의 가치가 훨씬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지루하게 늘어졌던 시간들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Copy Protected by Chetan's WP-Copyprot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