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한주필 칼럼-불면(不眠) 다음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능한 생각을 안 하려합니다. 만약 우연이라도 떠오르는 사고가 연이 나뭇가지에 걸리듯이 뇌리에 걸리면 그 밤은 밤새 불면증과 씨름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머리만 대면 어디에서나 30초 안에 잠을 자던 그 무신경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숙면의 행복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달갑지 않은 사고에 걸린 不眠의 밤을 보내고 반려묘, ‘펄’이 문을 긁어대는 소리에 아침을 맞으면 무거워진 몸만큼이나 삶의 고단함을 밀려옵니다. 샤워장 앞에 쭈그려 앉아 집사가 샤워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냥이를 보고 이 녀석 사료가 다 떨어졌다는 사실이 기억합니다. 옷을 갈아입고 아파트 앞에 자리한 Annam Gourmet에 들러 냥이 사료와 식품 몇 개를 챙겨봅니다. 이 상점은 비싼 가격을 마케팅 방법으로 활용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싸고 좋은 물건을 콧대 높게 판다는 정책, 아주 유능한 마케팅 팀을 두고 있는 셈입니다.

자신의 먹이를 사 들고 온 집사를 격하게 맞이하는 냥이에게 사료를 그릇에 담아주고 물도 바꿔줍니다. 문 앞까지 따라와 집사의 발등에 몸을 비벼대며 나가지 말고 자기와 놀아 달라는 냥이를 달래고 가방을 챙겨 출근을 위해 문을 나섭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보니 마스크를 안 쓴 것을 깨닫습니다. 서둘러 다시 집으로 돌아가 문 안에 걸린 마스크를 빼앗듯이 꺼내 들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펄에게 손을 흔들고, 엘리베이터 자리로 달려갑니다. 이미 누른 버튼의 효과가 사라지면 큰일이라도 생기는 것처럼.

아침 일과 중에 예정에 없던 슈퍼를 한번 다녀온 것뿐인데 뭔가 유난히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 듯한 기분에 숨이 차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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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잠시 숨을 돌립니다. 아직 거리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오지는 않은 듯합니다. 여전히 도로는 한가하고 사람들 얼굴에 분주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도시는 깨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늘 깨어 있으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납니다. 늘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깨어 있어야 하나요? 늘 그렇게 피곤한 상황을 자청해야 잘 사는 것인가요? 그렇게 살면 너무 삶이 피곤하지 않은가요? 고작 깨어 있으라는 소리에 이렇게 반발이 일어나는 심리는 무엇인가요? 너무 애쓰면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저 있는대로, 생긴대로 살면 되는데, 더 잘 보이고 더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며 졸린 눈을 치켜 뜨는 자신이 애처롭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모양입니다. 하긴 이젠 지칠 만도 합니다. 너무 오래 깨어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주님이 노하실 불량한 심사입니다.

차가 사무실 앞마당에 도착합니다. 인생의 리셋 스위치를 눌러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까 하는 망상을 차 안에 남겨두고 빌딩의 뒷문에서 열을 체크 당하고 엘리베이터에 오릅니다. 크고 화려한 정문은 위급시에는 무용지물이랍니다. 어쩌면 애초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굿모닝 소리를 크게 하고 사무실을 들어섭니다. 고작 출근을 다시 한 지 3일째인데, 벌써 의례적으로 들리는 인사말입니다. 새로움이 이리 쉽게 지워지는 건 나이 탓인가요?

책상에 앉아 컴퓨터에 담겨있는 세상을 펼칩니다. 모자란 잠에 쓸데없는 사고로 무거워진 뇌가 피곤함을 부릅니다. 오늘 밤에는 좀 늦은 저녁을 배불리 먹고 바로 잠을 청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장 쉽게 잠에 빠지는 방법 중에 하나 죠. 비록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때로는 이렇게 생각없이 사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억지 자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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