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May 27,Friday

그 너머

직원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개발회사의 주요 파트너가 회사를 옮긴다고 합니다. COVID-19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업의 발굴이 어렵다 보니 눈치가 보이고 기회가 생기니 하루라도 빨리 이직을 하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허나 회사로는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어렵게 일궈낸 현지 비즈니스 파트너가 떠난 다니요. 이제야 한두 프로젝트를 성사시켰고 거래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는데 말입니다. 문이 닫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호찌민시에 총리령 16호가 발효되었습니다.

강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재개된 이후로 씬짜오베트남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쇄소의 가동 일정을 예측할 수 없었고 배포처로써 중요한 매개가 되던 교민사업장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도 교민정보지로서의 역할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우편과 온라인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던 배포방식은 코참의 회원사, 개인 회원 등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최근에는 뉴스레터 형식을 빌어 매일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교회가 처음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예루살렘에만 모였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사회에서 칭찬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문제는 유대인의 전통과 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여파가 자신들에게 미칠까 두려웠습니다. 그들 앞에 열렸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들 중 여럿은 서둘러 도시를 떠나 몸을 피했습니다.

앞에서 든 세 가지 사례는 개별적이나 같은 맥락 안에 있습니다. 먼저 역사 속의 1세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핍박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공동체의 흩어짐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꽁꽁 묶여 있던 복음이 족쇄를 풀고 로마세계의 다른 이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리고 시공을 넘어 저 같은 사람도 복음을 듣게 되었던 거지요. 그러므로 예루살렘 공동체가 당한 두려운 사건은 복음 전파의 촉매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파트너들의 이동은 어려움을 준 동시에 현지시장의 확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도시의 봉쇄는 기업을 접대가 아닌 전문성과 역량, 그리고 평판에 의해 평가되도록 했고 흩어진 파트너들은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의 신뢰할 만한 기회 매개체로 역할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에 비추어 본다면 씬짜오베트남에서 택한 고객접촉방식의 변화가 향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단할 수 없습니다만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동일할 것입니다. 다만 시장의 변화에 대한 바른 판단과 적응, 그리고 시도의 실패로 주저앉지 않을 맷집이 필요하겠지요.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작금의 ‘위기’가 어떤 여파를 몰고 올 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COVID-19 이후의 경제전망에 관심을 두거나 변화에 대한 석학들의 저서와 칼럼들을 뒤져 보는 이유가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혹스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겪는 이 일들의 영향에 대해 예측할 시각을 빌려오려는 거지요. 그 눈을 ‘통찰력 (洞察力)’이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통찰력은 있는 상황을 상황으로만 보지 않게 하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그 힘은 놀라운 능력입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세상이 온갖 이야기로 출렁일 때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은 당장의 현상만을 보는 근시안의 안질을 앓기 때문입니다. 리처드 윌버(Richard Wilbur)의 이행시에 이 병이 나타나 있습니다.

‘내 눈은 결코 메마르는 병을 알지 못하리 눈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는 그 병을.’

 

이 병에 걸리면 통찰력의 안목, 즉 부분이 아닌 전체와 속성을 헤아리는 시각을 잃게 됩니다. 이 병은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사라지게 하고, 그것을 감지하는 기술은 더더욱 개발하기 어렵게 합니다. ‘데몬’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토스카 리 저작의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거기에 실린 한 대목입니다.
“비범한 분별력이 있는 사람, 잠시 엿보는 정도라 해도 세상을 볼 줄 아는 재능이 있는 사람, 천사에 가까운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가끔 나타나지. 불안한 일이야. 그건 그림자들이 가득한 방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과 같으니까.” 악마 루션이 주인공인 클레이에게 한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비록 시효가 있을지라도 세상에서의 권세를 쥔 악마도 그 너머를 보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바깥 세계의 본질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가 희망을 품고 있다면야! 그러므로 상황 너머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크리스천이므로 제가 믿는 믿음에 근거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상황 너머로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도시봉쇄 기간 동안 몇몇 단톡방에 머물러 있었는데 사건마다 일희일비하며 욕하고 투덜거리는 분들을 간혹 봅니다. 오죽 답답하면 그리할까요. 하지만 잠시의 화풀이는 될지 언정 해답은 얻지 못합니다. 이 몇 달 간의 경험으로도 여전히 경제논리와 여기에 덧붙인 찌라시 수준의 지식으로만 베트남을 이해하려 한다면 또 닥쳐올 위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손을 놓는 것 외에 없습니다. 메마르는 병의 눈으로는 현상에 매몰되어 너머에 있는 베트남 사회의 속성을 헤아릴 수 없으니까요. 소득수준과 시스템, 정치체제가 다른 것이 차이를 인식하는 눈을 가립니다. 이들의 체제와 법 정신과 저변의 의식에 대한 몰이해가 장벽이 되어 있습니다. 언론과 미디어들은 도표와 인터뷰를 끌어 대며 외국인들이 떠난다고, 시장이 무너진다고 외치지만 편협한 외국인 시각일 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극단적으로 외부를 통제하거나 즉시로 개방할 수 있는 결단과 수용력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충격의 여파가 큰 결정을 단숨에 할 수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해 풀뿌리처럼 얽히고 설켜 상호작용하는 밑바닥의 과정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효과성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한정되니 이해가 안 될 뿐입니다.

우리가 걸린 안질은 통찰력을 상실케 하는 병입니다. COVID-19로 인한 변화는 베트남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양상은 보다 ‘베트남적(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편견을 버리고 탐구하는 마음으로 속성과 전체를 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재의 위기가 품은 위험 그 너머에 숨은 기회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사 개월 동안 어지러운 소식들로 더께가 낀 눈을 씻으며 이 자리를 다시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동남아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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