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0,Saturday

한주필 칼럼 – 포용의 시간

나이가 들면 거울을 보면서 나이를 인식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게 그리 환영할 만한 이벤트가 아니다. 나이가 드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얼굴을 비치는 거울 만은 아니다. 이웃은 또 다른 거울 노릇을 한다

이웃의 모습을 보며 내 나이를 확인하고 늙어감을 느낀다. 예전보다 자주 들려오는 상갓집 소식이 그렇고, 친구들 사진에 함께 올라오는 손자 손녀들의 모습이 그렇다.

아마도 이웃 역시 내 모습에서 자신의 세월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웃, 친구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서로를 확인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끔 만나는 친구나 지인들의 모습이 예전과는 달리 정겨워 보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며, 이 친구도 늙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 순간 내 모습 역시 늙었음을 깨닫고 함께 늙어가는 동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런 자각은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친구보다 잘 되어야 한다는 경쟁심이 사라지며 경계도 무너진다. 그래 좀 잘 살면 어떻고, 좀 부족하면 어떠리, 지금까지 함께 지내온 것만으로도 동질감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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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나이가 들어 감을 거부하는 중년의 신사를 본다. 하지만 그도 조금 더 나이가 들어 그 나이를 부정할 방법이 없는 시기가 되면 그 역시 많은 것을 내려 놓고 평안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정신적 자유와 평안이다

이제는 나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가진 대로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사고를 좀 일찍, 젊어서 알았다면 인생이 훨씬 편해졌을 것이라는 데 아쉬움을 느끼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늙음의 미학이다

늙음의 미학은 용서와 포용으로 나타난다.

과거의 무모했던 반항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함에 분노한 자신을 용서한다. 원래 내 운명이 그렇고, 내 그릇이 고만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모자람을 포용한다. 이제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원래 그릇은 항상 그대로인 것을 깨닫는다.

내가 아무리 똑똑해도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 아들이 같은 핏줄을 받았지만 나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아무리 잘해줘도 외면하는 사람이 있고, 항상 친절해도 이권 앞에서는 표정을 바꾸는 친구도 있는 것을 보며, 타인은 결코 내 마음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록 남들처럼 빛나는 명예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만의 성안에서 이만큼 살아온 게 어디냐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동안 우리 가족 삼시세끼 굶지 않는 생활을 누렸고, 작은 회사나마 직원들 급료 미루지 않고 꾸려왔고, 개인적으로 이 나이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오늘 밤은 편안히 잠이 들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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