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January 18,Tuesday

원칙은 지속의 힘

어떤 분이 제게 왜 씬짜오베트남에 글을 쓰는지 물었습니다. 아마 기고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생각하신 듯합니다. 물론 계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 일을 계속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작용했습니다. 이 험한 강호와 같은 무가교민지 시장에서 그나마 씬짜오베트남이 원칙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원칙은 경기의 룰과 같습니다. 그런데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베트남 사회에서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일은 때로 자해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일하는 한국계 건설시장에서는 무원칙의 예가 흔하다 못해 관례 같아졌습니다. 원칙은 사라지고 정글게임이 정상인 듯 여겨져 갑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기 얼마전 인근 성의 한 건설현장에서 공사 중이던 벽이 무너졌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다치거나 생명을 잃은 사고였습니다. 사건이 위중한지라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가 오랫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관계된 회사들은 자기들의 과오가 아님을 호소하였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촉급한 일정일 수도, 시공 절차 준수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고 미흡한 안전교육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감리 감독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었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들이 특별한 경우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사고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곳에서도 있어 왔으며 앞으로도 벌어질 충분한 개연성이 있습니다. 사고의 원인이 원칙의 부재(不在)에 기인했기 때문입니다.

건설은 고위험도의 직업군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고는 생명과 직결됩니다. 숫자로는 얼마 안 되는데 하는 인식은 위험합니다. 한 사람이 생명을 잃는 것이 전체 산업군 내에서의 비율로는 낮을지 모르나 당사자에게는 모든 것입니다. 그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라면 여파는 말할 수 없이 커집니다. 그런데도 안전화가 아닌 슬리퍼를 신고, 안전모가 아닌 운동모를 쓰고, 안전장비 없이 고소 작업을 하는 모습이 여전한 곳이 여기 현장의 실태입니다. 나날이 개선되고 있고 안전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지만 눈을 돌려 살피면 언제든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고 잠재 환경에서 사고의 확률을 높이는 근본 원인이 바로 원칙의 부재입니다. 백 원이 들어가는 일을 팔십 원에 하자는 것, 백 일이 걸리는 일을 팔십 일에 마치려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건축주는 보다 비용을 절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최저가 업체만을 찾습니다. 업체의 평판과 역량은 두번째입니다. 기간은 무조건 제품의 생산 기간에 맞춰져야 합니다. 공사의 안전성을 고민할 틈을 지워버립니다. 돌관공사가 정상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런 조건에서 설계사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입찰을 합니다. 백 원이 들어가는 설계를 육십 원에 하려면 시간과 인원을 덜 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딴짓을 해야 합니다. 시공사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니 VE(Value Engineering)를 요청합니다. 원래 VE라는 것은 기술과 합리성을 목적으로 한 요구였는데 언제부터 인지 이곳 현장에서는 시공사의 저가 입찰견적을 맞춰 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줄다 보니 현장에서 도서, 자재 및 규정의 적합성을 확인해야할 감리마저도 이름만 올라있는 속칭 ‘서류 감리’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 용어가 베트남에 있는 한국인들의 건설환경 내에서는 공공연히 사용됩니다. 예전 한국의 출장감리란 편법만도 못합니다. 그래도 건축주 내에 이를 관리할 조직이나 능력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문제는 그런 경우가 몇 안 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니 위의 사례 중에 어느 것이라도 통용된 현장이라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을 안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작으나 크냐 또는 터지냐 불발이냐 정도의 차이만 있습니다. 이 모두가 원칙에 대한 문제입니다. 백 원의 건물에 백 원이 들어 감은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것을 낮추는 것이 기술과 역량입니다만 그렇다 해서 구십 원도 아닌 육십 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사는 세계가 무원칙의 정글이기에 가능한 얘기입니다.

 

심화된 정글화는 부메랑이 되어 다가올 어느 날에 우리 모두를 정글에 가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곳 시장에서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하나의 무리로 여겨질 것이므로 이 판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면 우리 모두는 함께 시장을 잃어 가겠지요. 그러므로 정글화의 조짐은 시장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에게 발송된 경고로 읽어야 합니다. 탈출할 수 있을 때에 거기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고 비정상적인 경쟁을 하는 업체들은 퇴출되어야 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시장에는 경쟁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이 가능합니다. 경쟁자 없는 시장에서는 독식할 수 있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잘못된 원리로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장에서나 가능합니다. 시장이 그것을 깨달을 때 잘못 이가 맞은 기어는 탈락되어 기계 자체가 고장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함께 뛸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수들의 생명이 지속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여러 산업분야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데 건설과 같이 한국 투자자와의 관계가 필수적인 산업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생존하겠다고 정글에 뛰어드는 일은 오히려 전체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상식을 바탕으로 원칙을 지키는 경기장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업의 관계자들이 함께 투자와 실행의 적정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본을 쥔 투자자는 용역사들이 정글의 유혹에 빠지도록 부축이지 말아야 합니다. 용역사들은 경쟁에도 상식이 있어야 함을 새겨야 합니다. 신용카드 돌려 막기와 같은 수주방식은 위험합니다. 경쟁은 정글이 아닌 경기장에서 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칼럼의 내용이 몹시 못마땅할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의 영업에는 피가 없다고 항변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업의 경쟁도 사람을 위해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베트남 시장에 혼자로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서로 간에 상식을 담보로 한 각자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막혔던 일들이 재개될 때, 과연 이전보다 시장이 건전해질까요?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어렵더라도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종국에는 이 땅의 험난한 파고 속에서 외국인으로서의 한계를 가진 우리를 지키고 무엇보다 우리가 속한 시장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것이 단지 교민지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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