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25,Friday

친구 3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친원파’가 파 놓은 함정은 깊숙했고 깊숙한 함정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적의 칼 또한 보이지 않고 깊숙하게 들어 왔다. ‘친명파’ 인 ‘삼봉은’ 그의 나이 35살에 친원파의 보이지 않는 칼을 깊숙하게 받고 전남 나주에 있는 거평 부곡에 버려져 눈과 바람만 바라 보았고 눈과 바람만 바라보고 있는 그를 구한 것은 그의 둘도 없는 친구이지만 조직이 다른 ‘친원파’의 ‘달가’였다. 달가는 경북 영천의 어느 뽀대나는 관직의 집안에서 600여년 전에 태어났고 삼봉은 경북 영주에서 뼈대있는 어느 관료 집안의 맏아들로 600여 년 전에 태어났다.

그들의 고향은 달랐지만, 서로가 명석하였고 총명하여 개경에 있는 가장 유명한 학교에서 동기 동창으로 만났으며 그들은 서로의 총명함을 서로가 알았기에 서로를 칭송하며 빠르게 친구가 되었다. 그들의 선생은 ‘묵은’ 이었고 묵은은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였기에 몇 십 년 후 고려의 멸망과 조선 건국의 주역이며 또한 스승인 그의 목줄마저 따버리게 될 이들에게 성리학의 근본인 ‘민본사상’을 주입시켰다.
민본사상을 전수받은 그들의 출사는 빨랐고 빠른 출사는 그들을 조직의 중심에 빨리 올려놓았지만 정작 그들을 갈라놓기 시작한것은 삼봉이.

친원파의 깊숙한 칼을 맞고 전남 나주에서 바람과 눈만 쳐다볼 때 달가가 던져주고 간 ‘맹자’라는 책이 시발이 되었다.
친명파인 삼봉은 이 책으로 인하여 민본정치의 시작은 실천임을 깨달았고 조선건국을 위한 ‘태조’의 살아있는 칼이 필요했기에 그의 나이 42살 때부터 태조를 보스로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명파인 삼봉이 태조를 보스로 두었을 때 달가는 이미 태조의 적인 ‘공양’을 보스로 두고 있었고 공양은 이미 태조의 적이었기에 공양의 친구인 달가는 태조의 적이었고 달가가 태조의 적 이었기에 태조를 보스로 두고 있는 삼봉은 달가의 적이 되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적에게 죽는 것이 조직의 세계이기에 삼봉은 달가의 명줄을 끊을 칼을 품고 다녔고 달가는 삼봉의 멱을 따기위한 칼을 품고 다녔다.
하지만 삼봉의 친구인 태조의 칼은 살아 있어 빨랐고 달가의 조직인 친원파의 칼은 무디고 느렸기에 달가가 선죽교 다리를 꺼꾸로 앉아 넘어갈 때 삼봉의 보스 아들 방원이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란 시를 읊으며 칼로서 달가의 목통을 깊숙이 베어올 때 달가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는 시 한 수를 남기며 선죽교에서 죽어갔다.

삼봉은 달가를 죽이고 조선을 건국하였지만, 조직의 세계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했고 권력은 또한 영원하지 않다고도 했기에 몇 년 뒤 칼이 살아있지 못한 삼봉 또한 달가를 죽인 보스의 다섯 번째 아들 방원이 칼이 그의 목을 여러 번 베어 올 때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라는 말을 남기며 죽어갔다.

번개가 몇 번이나 지나갔지만,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천둥이 오지 않은 것인지 왔는데 내가 듣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하늘은 말라만 가고 땅들은 오토바이 발통에 부서져 가기만 한다. 번개가 지났다고 천둥이 소리를 질러야 하고 천둥이 소리친다 하여 비가 꼭 와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지만 비가 오지 않는 베트남의 5월은 메마른 천둥소리마저 인민들을 짜증스럽게 만드는가 보다.

4월 고국에 놀란 슬픔이 수습도 되기 전에 베트남인민의 분노가 교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무리가 지나간 흔적을 본 적은 없지만, 불안한 소문은 전화기 속의 카톡을 타고 TV 속의 뉴스를 타면서 말에 또 다른 말들을 붙여가며 교민 사회를 돌아 다닌다. 그들의 말을 모르기에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그들의 마음을 모르기에 오늘의 내가 그들의 적인지 그들의 친구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그들의 적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는 것은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고국이 그들의 적과 친구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적이 되어 있을 것이고 우리의 고국이 그들의 적과 적이 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나라에서 그들의 국적도 없이 살고 있기에 고국의 적과 친구에 따라 우리는 그들의 친구일 수도 있고 그들의 적일 수도 있다.
50년 전 고국의 친구나라가 이 나라와 적이었기에 우리와는 아무관련도 없는 이 나라의 적이 되어 적이 되어 있는 그들을 죽여가야 했고 이 나라와 또한 우리를 알지 못했지만, 적의 친구이기 때문에 적이 되어 죽여 오는 우리를 죽여 가야만 했다.
하지만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것이 외교이기에 우리의 친구가 이 나라의 친구가 되어갈 때 우리도 친구가 되어 갔기에 우리는 이 나라 인민의 친구가 되어 교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수교 20년이 흐른 지금 확실한 친구가 되어버린 이 나라의 적이지만 우리의 적일 수도 있고 적이 아닐 수도 있는 대국의 교묘한 땅따먹기가 동북아와 동남아를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이미 친구가 되어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적이며 우리 주적의 친구 나라 이기에 우리의 고국은 마땅히 그들을 적으로 두어야 하지만 그들의 커져 버린 덩치 때문에 그들을 적으로도 둘수 없고 친구로도 둘 수 없기에 이 나라의 적을 확실한 적으로 두지 못하며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은 불안해진다.
하지만 우리의 영원한 적일 수도 있고 영원한 친구일 수도 있는 일본은 이 나라의 적이 되어 있는 그들을 확실한 적으로 두었기에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그들의 교민은 대국의 땅 따먹기 때문에 베트남에 흐르고 있는 인민의 분노와 음침한 광기를 불안의 눈초리로 바라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나라의 적이지만 우리는 적으로만 둘 수 없는 나라의 보스인 시진핑이 우리의 고국을 방문한다고 TV가 발표하였다. 우리의 보스와 이 나라의 적의 보스가 만나서 무슨 대화를 할 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이 나라의 적인 대국과 확실한 친구가 되는 순간 적의 친구는 적이 되어 가기에 교민은 또한 번 불안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겠지만 우리의 보스가 우리가 교민으로 살고 있으며 이제 확실하게 친구가 된 이 나라의 적인 대국의 보스를 만났을 때
“땅 마이 무따 아이가 인자 고마 무라” 라고 한마디만 해준다면 교민들은 이 땅에 흘러다니고 있는 분노를 피해갈 수 도 있을것 같기도 하다.

작성자 : 최 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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