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8,Thursday

고향의 내음, 향수

오늘 뉴스를 보니 베트남 국회의장과 부총리가 내한하여 한국 인사들과 만나며 양국간의 교류에 필요한 논의를 깊이 있게 나누었다는 것과 사회보장 협정을 조인했다는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이제 양국은 슬슬 교류에 필요한 행정 인프라도 갖추어 지는 모양입니다. 20세기 말, 처음 베트남에 들어올 때 느끼던 황당함과 이유 모를 두려움이 떠오릅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천지개벽이지요. 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 오래 고향을 떠나 있었다는 것이 새삼 떠오릅니다. 아침에 무심코 틀어놓은 유튜브에서 흘러나온 향수라는 노래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그 노래를 성악가 박인수 교수와 함께 부른 가수 이동원씨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더욱 그 노래가 가슴에 닿습니다. 생각난 김에 그 노래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요.

이 노래는 참으로 한국인들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명곡입니다. 대중가요 작곡가인 김희갑씨가 시인 정지용님의 시 향수에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가수 이동원씨의 부탁으로 작곡을 했다는데 개인적으로 김희갑씨의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가요계가 갖는 이 노래의 의미는 상당합니다. 대중가요 가수와 클래식 성악가가 함께 노래한 최초의 곡이라고 하는데, 이 노래로 인해 대중가요와 클래식 음악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시도가 시작됩니다. 당시에는 그런 시도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감히 생각도 못하던 도전입니다. 그런 현실을 감안했는지, 노래에는 클래식에 더 많은 배려를 한 흔적이 스치듯이 드러납니다. 이 노래가 장안의 화제가 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또 한가지 있는데, 당시 정지용 시인이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금기시되던 그의 시가 재 평가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즉 향수라는 노래는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이유로 잊혀진 시인으로 인식되던 불운한 운명의 정지용을 다시 우리만의 시인으로 재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그가 쓴 시 향수는, 한국인이기에 쓸 수 있는 위대한 국민 시로 기록됩니다. 그 누구도 우리말 향수가 주는 한국인의 슬프도록 온화한, 그 오묘한 감성을 다른 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문학평론가 김용희씨는 “시가 대중에 가까워지려면 노래와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며 그 둘의 하모니를 찬양합니다.
가수 이동원의 이 위험한 시도는 예상 밖의 대박을 터뜨립니다. 이동원씨는 엄청난 돈 방석에 앉았지만 그 돈으로 정지용시인을 위한 기념건물을 정시인의 고향, 공주에 건축하려다가 뭔가 잘못되어 가진 돈을 다 털립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사는 항상 꽃 길만 있는 것이 아니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잘 돌아갈 때가 가장 위험할 때라는 말이 있지요. 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준비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동원씨는 암으로 7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이동원 가수에게 꿈과 동시에 좌절을 함께 안겨줬지만, 이 불똥은 박인수 교수에게도 미칩니다. 당시 국립오페라단의 차기 단장으로 거론되던 박인수 교수는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제명을 당합니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이렇게 고정관념은 무섭습니다. 고작 30년 전 일입니다. 세상 정말 달라졌지요. 그러나 박인수 교수는 나중에 그 노래를 한 것을 후회 않는다며,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다며, 그 노래가 준 충격을 생각하면 자신이 치룬 댓가는 오히려 미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선각자들의 희생을 감수한 도전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이제 “꿈엔들 잊힐리야” 그곳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고향 베트남, 늘 제 주위 어딘가를 맴 돌고 있을 테지요.
차가운 겨울 바람 속, 문득 묻히는 흰 눈송이의 시린 외로움 같이 말입니다.
한 곳도 아닌 두 곳의 고향을 둔 사내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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