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산의 영혼

산의 영혼이라는 책을 읽었다. 등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발견’의 문제고 언어로 풀어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기꺼이 최선을 다해 설명하겠다고 머리말에 새겨 놓은 저자의 다짐. 왜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에는 살짝 비켜서면서도 등산이라는 오름 짓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인간의 능력을 창조주와 같은 위치에까지 상승시킨다는 20세기 초의 오만한 근대 유럽인의 사고가 엿보였는데, 등산을 최종적이고 필연적인 인간 활동의 계기로 본 것에서 헤겔의 향기도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20세기 초 영국사람이다. 나라를 대표해 국제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를 경쟁적으로 ‘정복’하던 일이 민족과 국가의 외교적 힘이라 생각하던 때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등반을 둘러싼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일갈하며 나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고 우려한다. 1, 2차 세계 대전을 목도하며 등산마저 싸움터로 바뀌는 세태에 ‘기록경신이나 경쟁심 외에는 다른 동기가 전혀 없이 서둘러 히말라야를 오르는 행위’를 살인에 버금가는 위험이라 경고하며 온전한 정신을 되찾기를 저자는 바랐던 것이다.

‘산에는 분석을 거부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그것이 산의 영혼이다.’ 20세기 초 등산의 경향은 ‘정복’이었다. 한 번도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봉우리를 서로 먼저 오르겠노라 나서면서 산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손쉽게 등반하기 위해 ‘오르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도 했던 시기에 그는 산을 정복해 나가는 유럽인이기를 거부했다. 대신 ‘고생스럽고 멋진 하루의 모험, 언덕을 뛰어내려오면 다시 꽃에 둘러싸인 캠프,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적란운들 사이로 웅덩이처럼 나타나는 새파란 하늘, 초원의 꽃들로 쏟아지는 햇빛’을 사랑한 소박한 등산가로 남기를 원했다. 책의 마지막에 유언처럼 새긴 문장에 나는 죽은 지 70년이 넘은 한 남자가 내 옆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얼굴은 엄숙한 한 사람, 히말라야 등반을 마치고 갓 돌아와 까매진 입술에 너덜너덜해진 저고리 밑에서 성실함 용감한 자의 마음이 고동치는 전진하는 자, 동지애와 모험심으로 둘러싸인 한 인격이 내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고 말했다.

“나는 터벅터벅 산으로 걸어가기에
충분할 만큼의 기운밖에는 요구하지 않겠다.
나는 높은 산 밑에서 물끄러미 올려다볼 수 있는 계곡 정도에서
스스로 만족해야만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소나무에서는 늘 맡았던 향기가 날 것이고
꽃들은 전처럼 신선하고 화려할 것이며
개울은 변함없이 같은 노래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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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지난 날 산행을 떠올린다. 불안한 날, 배낭을 들쳐 메고 산에 오르면 방금까지 내 배후에 있던 무대장치는 무너진다. 나를 부르는 이름들이 빠지직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세계 하나가 붕괴하고 붕괴된 그 자리에서 새로운 내가 다시 태어난다. 나와 세계는 부조리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대치하다 나의 일방적인 산으로의 도피 선언에 허무하게 승부가 갈린다. 이제 오로지 ‘나’만 남게 되고 두 발로 가는 길만이 나의 길이 된다. 지난 날, 산을 홀로 올랐던 날이 많았다.

홀로 산을 오르는 사태는 세계 안에서 부조리와 섞여 들어가는 나를 빼내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불리어지던 나로부터 이름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관계는 이름을 만들어낸다. 관계는 체제를 만들고 관계 속의 나는 관계가 만들어낸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름만큼 관계가 존재하고 그 관계는 모두 닮아 있다. 이때 다른 사람들이 사는 대로 살지 않게 되는 건 차라리 형벌이다. 이 세계가 만든 관계와 무관한 존재로
단절된 나를 알게 되는 건 오히려 무서운 것이다.

자아를 발견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아를 발견했을까? 자신을 찾아 나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찾았을까? 그 무섭고, 힘들고, 사나운 삶을 거침없이 살아라 말하는 자들은 무엇에 기댄 자신감일까? 나와 이 세계의 관계가 깨어지고 홀로 암흑 속을 전진할 때는 처절한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자신의 두 발의 자유를 얻는 대신 모든 조건은 바닥이어야 한다. 자유로운 결정은 무섭고 외롭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롭지 않게 사는 법을 택한다. 누군가 시킨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부디 나이 먹었다고 영리하고 지혜로운 척하지 말자. 생긴 대로 사는 것은 지혜롭게 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사사로운 소확행 류의 자유가 아니라 삶 전체가 몰락할 수도 있음에도 기꺼이 대자유를 택하는 자의 현실이라는 ‘무대장치’를 소거한 거친 삶에 언제나 경배를. 집 따까리에 재산 쏟아 붇지 말고 두 발로 공부하고 여행하는 삶에 쏟아 붓기를. 홀로 걷는 산에 나와 별빛 사이에 아무것도 없기를. 온전한 나를 나 스스로 견딜 수 있기를. ‘산의 영혼’이 내 영혼을 깨운 어느 날에 쓴다.

 

장재용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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