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작심 3일, 30일, 3개월

베트남에 산 날이 오래될수록 피하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오래 계셨네요. 그럼 베트남어를 잘하시겠네요?”

“….”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던 질문,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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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베트남 학생들을 보면 공부한 지 불과 3, 4년 임에도 정말 한국어를 잘합니다. 그 학생들이 똑똑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한국어가 워낙 탁월하여 배우고익히기에 쉬워서 일까요?

저도 베트남어를 무지무지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한 때’ 였지만요. 베트남에서 맺은 첫 노동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 전이였음에도 일을 하려면 말을 먼저 익혀야겠다는 당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에 다른 나라에서 근무할 때 겪은 소홀함의 후회가 겹겹이 쌓였던 터라 체재 기간이 어찌 되든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딱 6개월이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남보다 일찍 출근해 연습하고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을 펴 들었습니다. 독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은 사라진 반타인(Văn Thánh) 시장에서 좌판 아줌마를 선생님으로 삼아 실전연습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 길을 잃거나 밥을 굶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것은 그 때 쌓아 둔 곳간의 지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뒷걸음질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사정은 있습니다만 돌아보니 변명만 될 뿐입니다.

베트남의 교민들도 처음엔 의욕에 넘쳐서 베트남어를시작합니다. 하지만 성조에 걸리고 발음에 넘어져 상처받고 나면 해야 되나 고민이 시작됩니다.

게다가 베트남어가 더뎌도 알아서 이해하고 들어주는 분위기이니 애써 공부할필요가 있나 주춤거리게 됩니다. 베트남어와 한국말을 짬뽕으로 해도 대충 통하고 거기에 제3국에서만 통용되는 콩글리쉬를 더하면 제법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게 되니까요. 비즈니스라면 똘똘한 한국어 전공의 통역이 있으니 불편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럼 자기도 모르게 멈춥니다. 제게도 그런 세월이 수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나무를 감고 오르는 덩굴이 되어 칭칭 사로잡습니다.

베트남 생활이 십 수년인데 깊은 대화를나눌 친구 하나 없다면 그 역시 성공이라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결심했습니다. 새로 시작하자! 마침 설날인 뗏을 맞았으니 최고의 새해 결심이 된 셈입니다.그런데 여기에 큰 암초가 한 덩어리 놓여 있습니다. 마음먹는 것도 계획하는것도 좋은데 하루하루 걷기가 마냥 쉬운 게 아니라는 거지요. 그래서 작심 3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생겼나 봅니다.

첫날은 의지에 불탑니다. 다음날은 좀 피곤하고 귀찮지만 참고 견딥니다. 사흘째는? 모진 갈등에 괴롭습니다. 이걸 꼭 해야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요란을 떨며 계획한 일인데 불과 며칠 만에 그만 둔 일이 허다합니다. 계획 세우기는 도사가 되는데 실천하기는 가물에 콩 나듯 합니다. 결심이 사흘도 채 못 가는 데는 눅진하게 걷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제 마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 이 연약한 인생이여.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란 시절 유성룡이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있을 때였습니다. 각 고을에 보낼 공문이 있어서역리(驛吏)에게 주어 전하게 했습니다. 갑자기 사흘 뒤에 공문을 고칠 일이 생겨 회수하도록 지시했는데 역리가 듣자마자 가져왔다고 합니다.

연유를 물으니 공문을 발송도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고스란히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유성룡이 꾸짖자 역리가대답했습니다.“소인의 소견으로는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란 말이 있어 사흘 후 다시 고칠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조선공사삼일’이 뜻하는 바가 일관성이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것을 이르는 말이라 했습니다. 일은 거창하게 벌여 놓고 끝마무리가 제대로되지 못 함이니 어떤 의미로는 작심삼일과 끝이 하나쯤 닿아 있는 듯합니다.물론 조선공사 사흘 못 간다 함은 나랏일의 추진에 대한 것이고 작심삼일이야 개인의 결심을 가지고 말하는 거지만 결국 다를 바 없는 얘기입니다. 정책이든개인의 계획이든 실천해야 할 그 일을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피할 수없는 이유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러 고보니 제가 관계하는 건설 현장에서도진행하면서 벌어지는 수많은 변경이 조선공사삼일과 유사한 맥락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핑계가 곁가지로 나갔네요.

베트남 학생들이 한국어를 잘하는 데는그런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관심’ 입니다. 재미있어 알고 싶고 그래서 공부합니다. 재미의 근원은 K-팝, K-드라마 같은 한류 문화입니다. 여기에는 한국어가 문자로 읽고 익히기 쉽다는 점도 한몫 합니다. 그런데 문자가 쉽다고 언어가 쉬운 건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도 한글 맞춤법 때문에 고민하신 분이 한 둘이 아닐 것입니다. 띄어쓰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존비어, 수많은형용사, 외래어…, 행간의 의미까지 있습니다. Trời ơi!

언어를 전공한 제 후배가 자기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정말 다행이라며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하기 위해 드는 노력이면 다른 나라 말 두어 개는 더 할 수있었을 거란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이렇게 어려운 한국말임에도 관심을둘 이유가 있으니 밤을 새워 노력합니다. 저도 베트남어에 관심을 두는 일이 생활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인지, 아님재미를 위해 선택할 일인가부터 따져 보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십년 전 처음 베트남어를 공부했을 때의 이유가 머리를쳤습니다. 베트남 땅에서, 베트남 사람과 어울리며, 그들의 소산을 공유해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의라 생각했었는데 배가 좀 불러지니 저도 모르게고개가 섰던 것 같습니다.

산같이 쌓이는 핑계를 물리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거리에는 바이러스가 득시글거릴 테니 일찍 집에 돌아 올 이유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사흘을 넘어 한 달을 채웠습니다. 사흘의 열 배이니 작심 30일입니다! 그럼 앞으로 세 달, 아니 일년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성취를 논하지는 맙시다. 공부했다고 바로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십년 전보다 기억력도 떨어지고 반응도 느려졌지만 보고 들은 풍월이 쌓인 지라 이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되는 부분도 꽤 있습니다. 그러니 내내 졸리고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꼬물거려도 기왕시작한 것, 그냥 걸어 가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쥐어 틀던 코로나바이러스의손아귀도 헐겁게 느껴질 것이고 그 사이까이나이라 까이지 말고도 할 수 있는 베트남어가 몇은 더 늘어 있을 겝니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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