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7,Saturday

한주필 칼럼 – 세한도(歲寒圖), 진정한 친구

 

2020년 8월인가 봅니다.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최고 걸작인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가 국민의 품으로 왔다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좀 뜬금없어 보이긴하지만, 그 세한도에 대한 얘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가시담장에 쌓여 집 밖 출입마저 제한되고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은 가혹한 세월을 보낼 때, 늘 자신을 잊지 않고 귀한 책을 구해 보내주던 제자인 역관 이상적에게 고맙다는 글에 함께 그려 보낸 그림입니다. 추사가 글만 잘쓰는 줄 알았는데 그림도 잘 그렸군요.
이 그림은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이 작품을 받은 이상적은 이것을 중국에 가져가 대가들에게 보여주며 대가들의 찬탄문을 줄줄이 받았다고 합니다. 전시회에 가보면 그 대가들의 찬탄문으로도 또 다른 작품이 된다고 합니다.
이 세한도는 추사의 굴곡진 인생 여정답게 제자리를 찾아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올 때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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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소장자인 역관 이상적이 세상을 떠난 뒤 ‘세한도’는 몇차례 주인이 바뀐 후 추사 연구에 일가를 이뤘던 일본인 경성제대 교수 후지스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 소유가 되어 일본으로 갑니다.
그 작품을 되찾기 위해 서예가이자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컬렉터였던 소전 손재형이 거금을 들고 일본으로 후지스카의 집으로 찾아가 100일간 문안하며 ‘세한도’를 넘겨달라고 간청했답니다. 감복한 후지스카는 결국 그에게 ‘세한도’를 건넸는데, 석 달 뒤 후지스카 집은 미군의 폭격을 맞아 그가 소장한 상당수 책과 자료가 불타 버렸다고 합니다. ‘세한도’는 극적으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일본에서 세한도를 찾아온 손재형씨가 정치에 입문하고 자금 조달을 위해 개성 갑부인 손세기씨에게 세한도를 넘깁니다. 그리고 그 아들 손창근(91)씨가 이번에 나라에 기증을 한 것입니다.
시가가 얼마가 되는지 측정할 수 없지만 100억은 넘을 것이라 합니다. 손 옹은 그것만 기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차례에 걸쳐 싯가 1000억에 달하는 200만평의 산림과 건물, 304점의 귀중한 문화 소장품을 다 기증하고 세한도만 지니고 있다가 이번에 그 세한도마저 국가에 기증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입니다.
‘세한도’ 라는 그림의 제목이 의미하는 유래가 있습니다.
세한歲寒은 공자의 말씀 중에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 한겨울 추운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게된다. 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 차가운 세월이라는 의미입니다.
추사는 워낙 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유아독존식 행동으로 주변의 거부감을 샀다고 합니다. 그러던 추사가 유배를 가자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다 떠났지만 제자 이상적 만이 늘 귀한 책을 일부러 구해서 보내주니, 감회가 남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느끼는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제목입니다. 

살다보면 때로는 어려운 때가 옵니다. 그래도 그 어려움이 힘들고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만사 다 음양이 있습니다. 내가 불의의 사건으로 어렵고 힘들 때, 가진 것을 다 잃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될 때, 그때도 변함없이 옆에서 마음을 나눠주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그때 겪는 어려움은 충분한 가치를 갖습니다.
며칠 전 대한민국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공자님의 그 글귀가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을 듯합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그 시절에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섰던 친구들이 자신이 권좌에서 내려올 때 몇 명이나 자신의 옆을 지켜줄런지 궁금할 듯합니다. 

부디 모두들 좋은 친구를 만나 귀한 인생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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