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December 5,Saturday

은자 누나

추석 연휴가 끝나는 날 동네 앞에는 보따리 같은 가방이 하나 있었고 어린 은자 누나 만큼이나 큰 네모난 가방도 하나 있었다. 은자 누나는 길태의 손을 잡고 소리 없이 울었고 길태는 은자 누나의 손을 잡고 소리 나게 울었고 길태 엄마는 소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게 울었다. 자전거 위에 짐을 실어놓은 길태 아버지는 울지 않았지만 입에 물고 있는 담배 연기가 대신 울고 있었다. 그렇게 어린 은자 누나는 울면서 동네의 또 다른 누나를 따라서 동네를 떠나 버렸고 그날 이후로 길태와 나의 유년기 추억 속에 은자 누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은자 누나는 옆집에 사는 친구 길태의 세 살 많은 누나였고 그녀가 길태의 누나였기에 그녀 또한 나의 바로 옆집에 살았다.
놀잇감이라고는 동네 앞에 있는 개울과 개울 속에 있는 피래미 새끼 밖에 없는 촌구석이라 길태는 나의 유년기 시절의 모든 추억을 같이 만들어 갔고 은자 누나는 그때까지 우리의 보호자로서 또 친구이며 누나로서 모든 추억 속에 같이 있었다.

은자 누나 위로 네 명의 오빠가 있었지만 나는 은자 누나의 오빠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의 오빠들은 내가 내 삶을 기억할 수도 없는 어린 나이에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3명은 서울로 1명은 대구로 가버렸기에 그녀의 오빠들을 본 것은 명절 때 잠깐이 전부인 것 같다. 네 명의 어린 오빠들이 일찍부터 돈을 벌어 집에 도움을 주었는지 아니면 그들은 세끼도 연명하기 어려웠는지 알 수 없지만 논밭 때기 하나 없는 길태 집안의 궁핍한 살림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네 명이나 되는 오빠들을 잘못 만난 것인지 아니면 무능력한 길태의 아버지가 은자 누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은자 누나는 중학교 3학년인 그 해 중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추석연휴가 끝 나는 날 부산의 어느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또래의 윗마실 누나를 따라 네모난 큰 가방과 함께 길태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실려 그렇게 울면서 동네를 떠나갔다.

울면서 떠난 은자 누나는 공기보다 실 먼지가 많은 부산 대신동의 어느 방직공장에서 희뿌연 실 먼지를 마스크도 없이 하루 10시간 이상 마시고도 20만 원도 되지 않는 돈을 받았지만 그녀는 네 명의 그녀 오빠와 달리 실 먼지가 뿌옇게 묻어 있는 돈을 길태의 학비로 꼬박꼬박 보내 주었기에 길태는 대구에 있는 공장에 가지 않고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나는 길태와 달리 논밭 때기가 있는 아버지를 만났고 그 논밭 때기 때문에 대구로 가서 공부할 수 있었고 누나의 실 먼지 때문에 대구에서 공부하고 있는 길태를 가끔 만나 실 먼지 묻어 있는 은자 누나의 돈과 아버지의 논밭 때기 때문에 생긴 돈으로 침산동의 어느 싸구려 영화관에서 한번에 두편 하는 영화도 보았으며 가끔은 동성로 뒷골목에 있는 다락방 식당에서 소텐(소주와 써니텐)을 마시기도 하며 그렇게 고등학교를 보낸 것 같다.

집안의 막내인 내가 대학을 갈 때쯤 형과 누나들의 학비 때문에 우리 집 논밭 때기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팔 수 있는 논밭 때기가 있었고 길태는 은자 누나가 그때까지도 실 먼지를 하루 10시간 이상 마시고 있었기에 나와 길태는 같은 해에 대학을 입학 할 수 있었다.
길태의 입학식 날 대학생이 되어 있는 남동생의 대견스런 모습을 보기 위해 대구에 온 은자 누나를 길태와 가끔 만나 소텐을 먹던 동성로 뒷골목 식당에서 오래 전 그렇게 시골을 떠난 그때 이후 처음 만났다.
어리게 울며 떠난 은자 누나는 예쁜 어른이 되어 있었지만 내가 보아온 다른 아가씨와 달리 세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세련되어 있지 않은 예쁜 은자 누나가 길태와 내가 실 먼지 붙은 돈으로 가끔 마셔온 소텐을 처음 먹어 본다고도 했고 아직도 영화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도 했고 책을 끼고 학교에 가는 대학생이 제일 부러웠는데 길태가 대학생이 되어 너무 기쁘다고 하기에 길태는 은자 누나의 손을 잡고 소리 내어 울었고 은자 누나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고 나는 눈물이 보일까 봐 술잔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호찌민에는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또 다른 은자 누나가 내리고 있다. 호찌민의 은자 누나는 벤세빈둥에서도 내리고 벤세벤탄에서도 내리고 멀리 있는 빈호아 공단 앞에도 내린다.
그 어린 아가씨는 고향에서 그 누구의 누나였으며 그 누구의 딸이었기에 싸구려 여행용 가방이 터질까 봐 노끈으로 묶어 고향을 떠나 올 때 그 어린 누나 보다 어린 남동생은 누나의 손을 잡고 소리 내어 울었을 것이고 그녀의 엄마는 소리 없이 울었을 것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놓고 담배연기 속에 눈물을 감추며 울었을 것이다.

호찌민의 어린 은자 누나는 나의 사무실에도 있고 내가 가르치는 학교에도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메이드들 중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고향에는 베트남의 또 다른 길태가 그녀가 보내준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을 것이고 베트남의 길태는 어린 누나의 한 많은 삶을 댓가로 대학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국립대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은 3백만 동 정도이며 사립대학교 등록금은 4백만 동 정도이다. 학교의 종류와 정원은 고무줄 같아 입학시즌이 되면 대부분의 학교와 학과에서 학생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베트남의 실업률은 통계상 제로이기에 호찌민에 올라온 어린 은자 누나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월 4백만 동 수준의 일자리는 언제나 구할 수 있다. 따라서 베트남의 은자 누나는 본인의 의지가 전제하고 고향의 부모나 동생을 위하여 송금해야 할 처지만 아니라면 누구나 고등교육과 대학교육을 받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베트남의 대학 진학률은 30%가 조금 넘는 정도의 수준이다. 우리 주위의 대부분 근로자는 그들의 동생과 그들 부모의 행복을 위하여 월급의 대부분을 고향으로 보내고 있다. 두려운 것은 그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끼니 때마다 갈 수 있는 KFC를 한번도 가지 못했을 수도 있고 우리는 시간이 없어 못 가는 영화관을 베트남의 은자 누나는 그녀의 동생들 때문에 한번도 가보지 못하고 늙은 아가씨가 되어 길태를 만났을 때 또 다른 은자 누나는 소리 없이 울 수도 있을 것이고 베트남의 또 다른 길태는 소리 내어 울 수 있을 것이다.
혹여 베트남의 길태가 싸가지 있게 성장하여 늙어간 은자 누나의 청춘을 보상한답시고 치킨가게를 통째로 사준다 한들 늙어가서 먹는 치킨이 젊은 청춘 시절에 먹는 치킨과 같을 수 없을 것이고 늙어서 때가 지난 영화를 본다 한들 바람만 스쳐도 눈물이 나는 청춘의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어린 은자 누나들과 어린 형들의 추억을 젊었을 때 만들어 주기 위해 이번 달 직원 회식을 1군에 있는 제일 뽀대나는 건물에서 왼쪽 손에는 식칼을 들고 오른쪽 손에는 포크를 드는 식사를 하기로 했고 그 건물에 있는 영화관으로 떼거지로 몰려 가기로 했다.

작성자 : 최 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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