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한주필 칼럼 – 봄은 왔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마도 자신의 생이 너무 힘들었다는 자기 연민에서 나온 감성이긴 할 테지만 큰 위로가 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이렇게 차오르면 문득 이제는 그만, 하는 감정이 때때로 밀려옵니다. 이제는 정말 아무 염려 없이 평화로운 마음을 음미하며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요. 너무 큰 기대를 품은 듯합니다. 그래도 매번 잠이 들 때마다 의식 없는 깊은 잠에 빠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이제 그만 안 일어나도 좋을만한  깊은 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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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날 색 바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문뜩 곰돌이처럼 동면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한 3개월 푹 잠자고 일어나서 새싹이 움트는 새 세상을 만나기를 꿈꾸었습니다.  

특히 이번 겨우내 그렇게 깊이 잠들고 싶었습니다. 

백 년의 세월을 견디시는 모친의 수발을 들고 있는 아들은 그런 마음이 불손하게 여겨집니다. 모친도 스스로 편히 쉬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겠지요. 늘 이승의 종말을 곁에 두고 지내시는 모친의 시간이 아파서 소리 내 외쳐봅니다.  

신이여, 무엇을 더 바라나이까? 

 

자리에 누운 이들에게는 잔인하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옵니다.  

뒷마당에 자리한 매화와 산수유는 벌써 그 수줍은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 뜨락에서 15년이 넘도록 자란 제법 큰 목련 나무에는 가지 가지마다 큼직한 봉우리들이 개화를 준비합니다. 봄꽃이 수줍게 보이는 이유는 잎도 없이 꽃이 먼저 피기 때문인가 봅니다. 시종이 나갈 채비를 마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봄볕 맞이 나온 성급한 어린 공주와 같은 자태입니다.  

찬 서리에 하얗게 덮여 겨울을 보낸 대지에는, 서리 녹은 생명수로 깨어난 푸름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봄이 옵니다. 

겨우내 쌓은 어두운 시름을 따뜻한 봄볕으로 녹여 주소서. 

 

베트남에 있으면 이런 맛을 모르지요. 봄이라며 말은 하지만 피부를 자극하는 봄바람은 없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봄 풍경을 그리는 게 독자들과 괜한 괴리감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고국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리한 베트남의 풍경을 가끔 씻어 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유의미한 일이 될 듯합니다. 

 

이 봄에는 꿈을 꾸세요. 

귀를 열고 대지의 숨 소리를 들어보세요. 

눈을 감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향기를 느껴보세요. 

발을 벗고 수줍게 감싸도는 어린 풀의 애무를 즐겨보세요. 

 

봄에는 꿈이 피어납니다. 

겨우내 품었던 푸르른 희망의 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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