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May 27,Friday

한주필 칼럼 – 成人의 자격

 

 

일본에는 1월 두번째 주 월요일을 성인成人의 날이라고 정하고 국가 공휴일로 즐기고 있다. 어른이 되는 날을 의미한다. 왜 일본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성인의 날이라는 공휴일을 만들었는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성인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을 만 하지만 공휴일로 격상시켜 기념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여 하는 말이다. 

이런 기념일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함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굳이 공휴일로 지정하여 성대히 치루는 것은, 역설적으로 성인이 되어도 성인의 역할을 하는 이가 적은 탓에 잔치를 벌여서라도 그 분위기를 잡아 보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이야 말로 결혼도 않고 늦도록 부모와 함께 지내는 자녀가 많은 사회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져있다. 그런데 과연 일본만 그런가? 한국은 더 하지 않은가? 

오늘은 한국에서 비혼을 대세로 여기며 자녀는 갖지 않고, 늙은 부모에게 부양의 의무를 당당히 요구하며 살아가는 용감한 한국의 젊은 세대에 대한 얘기를 좀 할 생각이다. 부모로서 말이다. 

이런 자녀들로 인한 고민은 한국에서는 너 나 할 일이 아니다. 우리 친구들 모두 마찬가지다. 결혼한 자식들보다 안 한 자식이 훨씬 많다. 그렇다고 나이가 젊은 것도 아니다. 전부 나이가 30대 중반이 넘어 40줄이 가까운 아이들이 결혼도 안하고 독립도 안하고 부모들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의 신세대들, 신세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은, 덜 성인세대들, 그들은 진짜 똑똑해서 지 앞가림도 잘하고, 조금만 의견이 갈리면, 상대가 어른이고 말고 상관없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밝히며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권리를 주장 한다. 하긴 그럴만도 한 나이긴 하다. 그들이 얼마나 당당한지 그 모습을 보면 눈이 부실 정도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이미 나이가 성인이 된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나이만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무언가 좀 발란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안하시나? 

IT, 인터넷 지식이 부모보다 더 많다고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성인의 조건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려면 나이만 먹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생활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생활의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깨닫고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줄 아는 사람이 성인이다. 아직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했다면 유감스럽게도 그대는 아직 배워야 할 것도, 익혀야 할 것도, 갖춰야 할 것도 많은 미성숙한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 

또한, 성인은 자신을 객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독자적으로 책임있게 수행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제대로 된 성인이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지원이나 응원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면 이는 진정한 성인이 아니다. 아이와 다른 성인은 자신의 일을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마무리짓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그대들 세대는 늦게까지 부모님에 의존하며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반면에 그대들을 늦게까지 책임져 준 부모들이 경제적 능력이 사라지고, 육체적 기능이 약화되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과연 그대들이 부모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으로서 부모를 보살피는 부양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되는가? 

사실 우리 부모세대도 기대하지 않지만, 그대들 역시 그런 부담을 질 생각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렇게 받기만 하고 갚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세태는 무엇으로 설명이 되는가. 설마 받기만 하고 시치미 땔 생각은 아닐텐데 말이다. 

요즘 우리부부는 100세를 넘은 모친을 돌보며 지내고 있다. 노모가 기력이 쇄잔하여 스스로 대소변을 못가리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지 가끔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 무엇하는가’ 하며 자신을 탄식하시곤 한다. 그러나 노모는 그렇게 사셔도 된다. 숨이 붙어 계시는 한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사실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노모는 전쟁의 폐허속에서도 자식 7남매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벽히 키우셨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삶이기에 그 노고에 대한 보답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자격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대들이 부모로부터 무한대로 받은 사랑 역시, 부모들이 그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그대에게 갚은 것이다. 요즘 그대들의 생각처럼 결혼도 안하고, 자녀도 안 키우고 온전히 자신의 삶만 알뜰히 챙기겠다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되면 그대들이 부모에게 받은 사랑은 누구에게 갚을 생각인지 한번 돌아보아라. 

자신이 받는 무한한 사랑을 철없이 즐기기만 하는 상태를 성인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은가? 그동안 그대들이 부모와 이웃에게서 조건없는 사랑을 받았듯이, 그 은혜를 다른 이에게 되돌려주는 사회적 소명이 그대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행동할 때, 비로소 성인의 자격을 갖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독립된 성인으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얘기가 우리 젊은 세대에 제대로 전달이라도 될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대들의 행동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 세상 인심을 이룬다는 사실도 염두에 둔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쓴 글이다.   

채근담에 보면,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않은 삶은 백년을 살아도 하루도 살지 않음과 같다”고 했다.  한번 돌아볼 만한 문구는 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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