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0,Saturday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세대차이 vs 세대갈등

 

“부장님, 부장님 생각에는 IMF 때가 힘들었던것 같아요? Corona 때가 힘든것 같아요?”
회식때 신입사원이 던진 뜬금없는 질문에 김부장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2020년 말에 호치민 푸미흥의 어느 고깃집에서 대한민국 국적의 평범한 40대와 20대의 ‘전국 불행 자랑’ 배틀이 시작되었습니다. 김부장도 22년전 그때에는 ‘대리님’이 하늘 같아 보이던 파릇파릇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솔직히 IMF 구제금융이라는 말이 뉴스에 지속적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던 그때에도 IMF가 뭔지, 경제 위기라는 것이 뭔지 정확히 몰랐죠. 신혼 여행갔던 바로 위 선배가 신혼여행지에서 퇴사 통보를 받았던 일, 회사가 ‘화의 신청’중이라고 월급이 밀리던 일, 팀별로 인원 감축 목표가 내려와 실제로 그렇게 집행이 되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김수습 사원의 회사는 뼈를 깍는 구조조정 끝에 부도를 면했고, 세월이 흘러 김수습 사원은 지금의 김부장이 되었습니다. 본인도 왜 수습 사원인 자신이 그 상황에서 살아 남을수 있었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질문을 던진 신입사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 위기 직전인 2019년말에 입사한 박사원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습니다. 영어도 유창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데도 거침이 없습니다. 속으로 조금 민망하지만 이런 대단한 친구가 왜 우리회사에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김부장은 가끔 생각합니다. 이 친구를 통해 들어본 한국 20대 젊은이들의 삶은 조금 팍팍합니다. 박사원 본인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결국 해외취업 경로를 통해 베트남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대학교 4학년이 취업을 통한 사회 진출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런건 김부장도 뉴스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만 결혼을 하고 싶은데, 집 없으면 좋은 직장이 있어도 결혼이 어렵다는 얘기, 대학교 앞에서 코인노래방을 열어 대박을 쳤다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쪽박을 차고 있는 친구 얘기를 하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니, 왜 이십대들이 부동산 폭등에 분노하고, 결혼을 미루고 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일단 연장자로서 신입사원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 김부장은 당황한 와중에도 최선을 다해 IMF와 코로나를 비교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IMF 때,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은행,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이후 많은 가정에서 대규모 실업자가 탄생하며, 가족 구성원 개인들의 인생 계획이 갑자기 뒤바뀌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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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외환 부족으로 인한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을 했고, 결국 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지속적으로 달러를 확보함으로써 대한민국은 IMF 사태를 극복 하였지만 이후에도 저성장에 따른 채용감소라는 후유증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2020년 말 기준으로 100년만의 초대형 전염병으로 미국, 중국, 유럽 시장 모두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그전의 경제 위기들처럼 수출을 통한 경제 위기 극복이 불가능했고 , 또한 국가간 사람의 이동이 불가능해진 상태라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베트남이 코로나 대처를 손꼽히게 잘하고 있었으므로 이 어려운 시기에 베트남에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행운이라는 위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김부장과 박사원이 대결한 ‘전국 불행 자랑’의 우승자는 IMF사태도, 코로나 경제 위기도 아닌 ‘내 세대가 제일 힘들다’ 였습니다.

80세라는 기본적인 수명이 있고, 사람들의 기억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커다란 위기가 닥쳤을때 단군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을 즐겨씁니다. 20년전 IMF 위기를 거론할때 특히 많이 쓰였고, 이후에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지금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얘기할때도 ‘단군 이래 최대 위기’ 라는 말을 쓰고 싶은 유혹에 자주 빠집니다. 그러나 IMF 사태 이전 100년만 돌아 봐도 70년대에
2차례의 오일 쇼크, 50년대 6.25 전쟁, 1,2차 세계 대전, 국권을 빼았겼던 경술국치일(1910)까지 굵직굵직한 위기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조금만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내 세대가 사회진출시기에 IMF를 겪었다고 감히 내가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말하기는 어려움이 있을것 같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6.25 전쟁을 겪으며 ‘생존’의 문제를 고민하셨던 70대 어르신들이 계시고, 끼니 걱정은 없지만 ‘결혼’ 걱정을 하며 살고 있는 20, 30대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대간의 차이는 가족, 일터,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합니다.
지금의 20~30대는 MZ세대라 불리우며 몇천년 전부터 존재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요즘것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균형)이 MZ세대의 특징이며, IMF 세대의 덕목이었던 조기 출근과 야근을 당당히 거부하고, 전세대들처럼 직장에 대한 충성심이 높지 않습니다. 작년초 비트 코인이 급등했을때 투자에 성공했던 몇몇 20대들이 뒤도 안돌아보고 직장을 떠났던 이야기들이 MZ 세대의 한 단면입니다. 궁금한 것을 몇번을 고민하다 과장님에게 물어보기 보다는 네이버와 구글에서 바로 확인하고, 할일을 마쳤으면 당연히 집에 가야하고, 회식은 선택사항인 MZ세대에 대해서는 2018년도에 출간된 <90년대 생이 온다> 라는 베스트셀러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공간 자작에서도 이책을 갖고 독서 모임을 했었는데, 당시 한 40대 회원이 자기는 ‘오늘에서야 내가 꼰대인 것을 알았다’고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꼰대가 즐겨 쓰는 3대 표현 (1) 나때는 말이야 (2)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3) 주말에 뭐했니 가 모두 자신이 자주 쓰는 표현이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금은 꼰대라 불리우는 아저씨, 아줌마들도 한세대 전에는 X세대라 불리우며 당시 경직되고 획일화 되었던 사회,문화계에 반기를 들어 현재 K-Pop, K-Drama, K-Movie 등이 탄생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을 만든 신인류들이었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대체했듯이 지금의 MZ 세대들도 X세대를 일시적으로 대체한 세대임을 안다면 본인들의 미래를 알기 위해 굳이 델포이 신전을 찾아 신탁을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세대간의 차이는 각세대가 처했던 시대적 과제에 대한 다른 대응일뿐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 인정한다면 세대 갈등은 세대 차이로 인정될 것입니다. 문화적 자유를 선사해준 X세대 이전에는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해준 ‘민주화’ 운동 세대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우리에게 끼니 걱정을 잊게 해준 ‘산업화’ 세대가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자신이 올림푸스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요즘것들’이 전세대 모두를 뭉뚱구려서 ‘꼰대’라 부르는 과오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트남 호치민에는 푸미흥이라는 신기한 공간이 있습니다. 푸미흥에서도 가장 번화가라 일컬어지는 스카이 가든 앞 식당가를 지나가다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아들 딸 3세대가 함께 술을 마시고 노는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나가면서 계산하는데, 이미 계산이 되었다고 하여 주위를 돌아보니 내가 앉았던 테이블 뒷자리에서 사장님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계시는 섬짓한 상황도 발생합니다. 순간 술이 확깨며 내가 2시간동안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하드 디스크 복구 모드 돌입). 한국에서는 20대 홍대 입구, 30대 강남역, 40대 역삼동, 50대 신사역 등 세대별로 모이는 공간이 있고, 왠만하면 세대간에 잘 안만나게 되는 공간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홍대앞 헌팅포차에서 신입사원이 사장님을 우연히 만나는 일은 호치민 푸미흥, 하노이 미딩 만큼 쉽게 일어나지 않죠. 베트남에서 살면서 얻는 여러가지 이점과 단점이 있는데, 그 이점중 하나가 다양한 세대가 한공간에서 어울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취미 모임, 동문 모임, 직종 모임 등에서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범위의 띠동갑들이 만납니다. 언론에서 부추기는 세대 갈등에 휘쓸려 서로를 안타까워 하기보다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서로가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다 보면 다양한 세대간의 만남이 주는 이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 자작 추천 서적
1. 90년대생이 온다. (임홍택 저, 2018) – 80년대생이 쓴 90년대생 해설집
2. 키르케 (매들린 밀러 저, 2020) – 마녀 입장에서 다시쓴 그리스 로마 신화

 

 

 


저자 –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이번에 본 칼럼을 시작한 독서 모임 공간 자작은 회원수 xx명 규모의 2018년 말 시작하여, 한달에 한번씩 평균 2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고, 주제를 논하는 독서 모임이다. 이들의 칼럼은 ‘공간 자작’ 대표측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발표할 예정이며, 2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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